조선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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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 KPA, Korean People's Army)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인민군은 로동당 규약 제46조에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 이라고 규정하여 당소속하에 있는 당의 군대·혁명의 군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조선인민군은 육군, 해군, 공군을 인민군 총참모장이 지휘하는 단일종합군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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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개요
애초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었으나 2003년의 대기근 이후 병역자원이 모자라지자 징병제로 전환하였다. 통상 중학교 졸업생(17세)을 대상으로 징집하며, 전문학교 진학자는 졸업시, 공장·기업소 취업자는 25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병력 충원시 수시로 징집하고 있다. 복무연한은 종래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 였으나 2001년 복무연한을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까지로 각 3년씩 단축하였다.[1]
대한민국에의 침공 시에는 열세한 장비를 방대한 병력과 포병력과 특수부대로 보완하여 대한민국 영내에 전방과 후방에 대한 전격적 침공(속도전, 速度戰)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측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주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력의 70%를 평양-원산선 이남의 전방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여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전의 수행이 불가능할 만큼 낙후된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인민군은 장비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립된 경제적·외교적 상황으로 인해 통상전력으로 대한민국과 대등한 군비경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탄도미사일, 핵무기, 화학 · 생물학 무기, 잠수함 등의 비대칭 전력에 집중하고 있다.
군인을 국가의 근간으로 한다는 "선군령도(先軍領導)"에 기반하여 인민군에 대한 대우는 한결 나아졌다. 정치, 경제,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조선인민군은 우선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군인은 각 영역에 세력을 서서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군인들이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에 많이 진출하여 정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 자원의 1/3을 인민군과 군수 사업에 투자하고있다.
[편집] 역사
[편집] 창설
1945년 10월 12일, 평양 주둔 소련 25군 사령부는 한반도 북부의 모든 무장조직의 해산을 명령하였고, 이어 10월 21일 소련군 출신 조선인을 중심으로 보안대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인민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 출신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철도경비를 담당하는 철도보안대를 1946년 1월 11일에 창설하였다. 또한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학원(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48년 12월제1 군관학교로 개편) 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9월에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로 개칭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7개월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7년 부터 전쟁 전까지의 소련의 무기 원조와 1949년 7월 동북의용군 소속의 조선인으로 구성된 164사, 166사, 독립 15사가 귀국하여 조선인민군 5, 6, 12사단을 편성함으로써 조선인민군의 전력은 크게 증강되었다.
[편집] 한국전쟁
-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이 전전선에 걸쳐 전격적으로 남침함으로써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초 인민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재빨리 서울을 점령하고 유엔군을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으나 인천상륙작전으로 압록강까지 몰리게 되었다. 조선인민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1953년의 휴전시까지 보조적 역할에 머물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은 전사 21만, 부상 30만의 피해를 입었다.
[편집] 전후
종래 1948년 2월 8일을 창군일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해오다가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 투쟁전통과 연결" 한다는 명분하에 김일성이 중국에서 항일 유격대를 창설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로 창군일을 변경하였다.[2]
[편집] 현재
현재 대한민국의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유류나 각종 군수품의 보급 부족으로 제대로 훈련을 실시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식량 또한 부족해 상당수의 병사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상태이다. 이로인해 군기강이 문란해져 병사들의 탈영과 민간에 대한 약탈이 빈번해 지고 있고, 군관들은 그나마 보급된 자원을 횡령 · 착복하고 있어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편집] 규모
조선인민군은 정규군 약 119만명, 예비전력 약 770만명으로 세계 3위의 병력규모을 보유하고 있고[3], 군인의 숫자에서는 세계 5위로 평가된다.
[편집] 지휘 체계
조선인민군의 최상위 지휘기구는 국방위원회이다. 국방위원회는 전반적인 국방정책을 관장하는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1992년의 헌법 개정에 의해 헌법기관이 되었다.
국방위원회 소속에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가 있다. 총정치국은 군의 정치사상 과업을 관장하고, 군령권을 가지는 총참모부는 육·해·공군의 작전을 지휘·통솔한다. 헌법개정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의 수평적 지휘체제가 됨으로써 인민무력부의 위상과 기능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인민무력부는 여전히 군의 대표기관으로서 군수, 재정 등의 군정권을 행사한다. 보위사령부는 군내의 방첩활동을 관장한다.
[편집] 편성
[편집] 조선인민군 육군
-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 육군입니다.
조선인민군 육군은 총 102만여의 병력 규모로 9개의 전 · 후방 군단, 2개의 기계화 군단, 평양방어사령부, 국경경비사령부, 미사일지도국, 경보지도국의 총 15개의 군단급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군단이하의 제대는 86개의 사단과 59개의 기동여단, 10개의 교도여단으로 편성되어 있다.[3]
전차 3,900여 대, 장갑차 2,100여 대, 자행포/야포 8,500여 문, 방사포 5,100여문을 보유하고 있다.[3]
평양-원산선 이남에 총전력의 70%를 배치하고 있으며, 170mm자행포 및 240mm방사포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지역을 기습 선제 타격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육군은 이라크전쟁의 전훈을 받아들여 특수전전력의 확충과 갱도 건설과 기만기 개발로 후방지역의 생존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편집] 조선인민군 해군
-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 해군입니다.
조선인민군 해군은 총 6만여의 병력 규모로 해군사령부 예하에 동해와 서해의 2개의 함대 사령부와 13개 전대 및 2개의 해상저격여단으로 구성되어있다.[3]
해군은 420여 척의 수상 전투함과 70여 척의 잠수함, 260여 척의 상륙함, 30여 척의 소해정 및 30여 척의 기타 지원함을 보유하고 있고, 전력의 약 60%가 전진배치되어 있다.[3]
조선인민군 해군은 특수전 전력과 연계한 병력의 침투 · 상륙 수단의 확충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다. 해군에서 가장 큰 전력인 잠수함 전력은 특수부대의 침투지원, 기뢰 부설, 수상함 공격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빈약한 수상전력을 보조하기 위해 지대함 미사일과 신형 어뢰의 개발, 해안포대의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
[편집] 조선인민군 공군
-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 공군입니다.
조선인민군 공군은 총 11만여 명의 병력 규모로 공군사령부의 지휘 아래 4개 비행사단과 2개 전술수송여단, 2개 공군저격여단, 지상방공부대로 구성되어 있다.[3]
공군은 전술기 840여 대, 감시통제기 30여 대, 공중기동기 330여 대, 헬기 310여 대, 훈련기 180여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약 40%가 평양-원산선 이남에 배치되어 있다.[3]
노후된 구형 장비들이 대다수인 전술기들은 기습공격이 가능하도록 전진배치하고 있으나, 극심한 경제난으로 훈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실제비행훈련은 1년에 8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전쟁의 전훈으로 조선인민군은 방공망의 확충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공부대는 장거리 고고도 유도 체계인 S-200 동 · 서부에 배치하고, S-75 · S-125를 비무장지대와 동·서 해안과 평양 부근에 밀집배치하고 있다. 또한, 종래의 고정식 진지에 이동식 발사장비를 추가 배치하는 추세이다. 방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자동화된 방공통제체계를 구축중이다.
[편집] 미사일 지도국
2004년 신설한 군단급 부대로 편제상 육군에 소속되어 있다. 미사일 지도국은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작전배치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4] 예하에 4개의 미사일 공장과 12개의 발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1993년 5월 로동 1호 미사일,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백두산 1호) 미사일,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백두산 2호 혹은 목성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바 있으며, 2009년 4월 5일 은하 2호 위성발사 로켓을 발사한 바 있다.
[편집] 예비 전력
조선인민군의 예비전력은 약 60만명의 교도대, 약 570만명의 로농적위대, 약 100만명의 붉은 청년 근위대와 합계 약 40만명 가량의 호위사령부, 인민보안성 등 치안기구와 군수동원지도국, 속도전 청년 돌격대등의 준군사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3]
[편집] 군사 칭호
조선인민군의 군사칭호는 1952년 12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최초로 제정되었다. 군관계급은 소련과 같이 4단계로 구별되어 있고, 당초 사병계급은 전사, 상등병으로 단순화되어 있었으나 1998년의 군제개혁으로 현재와 같이 4단계로 나뉘게 되었다.
원수는 한국전쟁 당시 최고인민회의 결정에 의해 김일성이 최초로 원수 칭호를 부여받았고 1992년 4월 김정일, 오진우가 당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공동 결정으로 수여받은데 이어 1995년 10월 최광, 이을설에게도 주어졌으나 현재 오진우와 최광의 사망으로 인해 원수계급 수여자는 김정일과 이을설이 남아있다. 하지만 원수계급도 김정일은 '조선 민주주의공화국 원수' 이며 이을설은 '조선인민군 원수' 라고 구분하고 있다.
한편 대원수 계급은 1992년 4월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공동 결정으로 김일성을 대원수로 추대함으로써 최초로 등장한 계급이다. 김일성 사후 대원수 계급을 부여받은 인물은 없다.[6]
- 군관(軍官)
- 원수급 : 대원수, 원수, 차수
- 장령급 : 대장, 상장, 중장, 소장
- 상급군관 : 대좌, 상좌, 중좌, 소좌
- 하급군관 : 대위, 상위, 중위, 소위
- 하전사(下戰士)
- 사관 : 특무상사, 상사, 중사, 하사
- 병사 : 상급병사, 중급병사, 초급병사, 병사
- 정치지도원 : 대한민국 국군에는 없는 직책으로 가장 비슷한 직책이 편제상으로는 중대 운영장교가, 임무상으로는 감찰장교가 이에 해당된다. 주로 중위가 맡게 되는데 중대장이 중대를 제대로 통솔하는지의 여부와 중대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대대급 이상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하전사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임무특성상 중대내에서 오히려 중대장보다 파급효과가 크며 심지어는 정치지도원의 보고 내용에 따라 중대장을 포함하여 중대 내부의 어떤 간부든 다른 간부로 교체되기도 한다.[7][8]
- 사관장 : 대한민국 국군의 행정보급관에 해당하는 역할로, 주로 특무상사가 맡게 된다. 하전사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하달할 수 있으며, 군관들이 지휘하는 교육훈련과 작업시간을 제외한 일과에서 하전사들의 관리, 중대의 군관·하전사들의 양식·피복공급 및 관리, 각종 근무조직과 근무 인원들의 관리, 중대 건물의 관리, 일체 내무생활의 지휘·관장, 중대 기록문건의 유지·보관, 취사장 및 식당의 관리, 무기의 보관·관리, 과외작업 및 잡무의 지휘관장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편집] 장비
-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의 무기 목록입니다.
조선인민군의 장비는 자국제와 소비에트 연방제, 중화인민공화국제가 많고, 1950-1960년대에 개발된 구식 장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MiG-29 등 비교적 새로운 병기도 일부 배치되고 있지만, 극히 소수에 머물고 있다. 장비는 독자 개량 또는 개조를 실시한 것으로 추정되나 상세 불명인 것이 많다. 구식 장비는 부품 조달이 곤란한 것도 많아 운용 및 유지에 필요한 부품 조달도 어려워 실제 가동 전력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한국전쟁때 위용을 떨치던 T-34/85를 개조하여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으며(해군순양함에 T-34/85의 포탑을 장착하는 등)특히 공군은 훈련 및 전력 유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품이나 연료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군 공수부대는 헬기를 이용한 강하훈련은 하지 못하고 강하탑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강하훈련을 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편집] 주석
- ↑ 국정원, 북한의 군 징병제도
- ↑ 국정원, 북한의 군 창건 과정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2008 국방백서》, 대한민국 국방부, 2009년 1월 19일
- ↑ 대포동 발사, 김정일 직접 지시 중앙일보, 2006.07.08 04:59
- ↑ 〈北미사일 발사〉 北,800기 미사일 보유…발사 기지 12개 넘어, 2006.07.05 18:02
- ↑ 국정원, 북한의 군 계급 체계
- ↑ free_board
- ↑ 김정일, 군 대대장. 대대 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 만나 :: 네이버 뉴스
[편집] 같이 보기
- 인민무력부
- 국가안전보위부
- 한국 전쟁
- 휴전선
- 판문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대한민국의 군사
- 주한미군(USFK)
- 일본 자위대(JSDF)
- 주일미군(USFJ)
- 미국의 군사
- 한미연합사령부(ROK-US CFC)
- 중국인민해방군
- 중화민국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