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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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또는 조선인민혁명군(朝鮮人民革命軍)은 1936년 중국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투쟁을 주도한 군사조직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등의 민족통일전선 성격을 띠었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유격부대를 공산당의 주도로 통합한 군사조직이다. 당시 만주에 있던 수많은 항일계열 군사조직중에 제일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1939년 만주군 간도특설대의 대대적인 공세에 의해 1942년 소멸되었다. 김일성, 김책, 최현 등 한국 독립 무장 투쟁에 참여했던 한국인들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였다.

창설[편집]

동북항일연군은 만주국의 각 지방에 존재한 중국공산당 지도하의 반일 유격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다. 193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통일 인민전선의 결성이 호소되자, 중국공산당도 8월 모든 항일운동을 중국 공산당 지도하에 정리해 통일전선을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다음 1936년부터 만주 각지의 동북 인민 혁명군의 재편성이 시작되어, 동북항일연군이 성립했다.

편성[편집]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제1군으로부터 제11군까지 존재했으며, 제1군, 제2군이 남만주에서, 제4, 5, 7, 8, 10군이 동만주, 제3, 6, 9, 11군이 북만주에서 활동하였다. 후에 남만주의 군은 제1로군에, 동만주의 군은 제2로군에, 북만주의 군은 제3로군으로 재편성되었다.

활동[편집]

1937년에 제1로군 제 2군 제 6사(사장은 김일성)가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함경남도(현재는 양강도) 보천보를 습격하였다. 이 전투로 김일성은 조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항일 의병장으로서 유명하게 되어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권력을 독점할 때에 유력한 기반이 된다.

제1로군이 활동하고 있던 남만주는 조선과의 국경지대였고 전투가 잦았기 때문에, 제1로군의 활동은 조선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보천보 전투 이전부터 제1군의 김일성이나 최현( 제1로군 제 4사의 단장으로, 후의 북한 인민 무력 부장)의 이름은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등을 통해 조선에 알려져 있었다. 일본은 김일성이나 최현에 현상금을 걸었다. 이들 신문에서는 그들을 도적떼로 비난해, 피해를 받은 주민에게 동정하는 논조가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의 조선에서는 언론은 일본 정부에 의하여 검열을 받았으므로 항일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 후도 만주국이나 조선 총독부를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실시했기 때문에, 일본은 이를 식민지 지배·만주국 통치를 가로막는 장해물로 간주하여 철저한 탄압을 하였다. 일본은 만주국의 경찰·군대나 관동군 등을 동원해 게릴라의 거점이나 협력하는 촌락 등을 섬멸하고, 이것과 병행하여 집단 부락을 건설하여 그들의 활동을 고립시키고, 귀순 공작 등의 수법을 이용해 동북항일연군을 탄압했다. 특히 집단 부락의 건설로 동북항일연군은 물자의 공급이 곤란해져 두메 산골에서의 게릴라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북항일연군은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물자의 보급을 받았고 그 외에 만주국 내부에서도 동북항일연군에 비밀리에 협력하였고, 무기를 공여하는 사람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무기를 밀매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자 보급을 위해서 자주 일본인, 조선인, 현지인을 구별하지 않고 강탈, 몸값 목적의 유괴 등 폭력적인 약탈 행위도 하였다. 또 몸값 목적외, 인원을 보급하기 위해서도 주민을 납치해,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여 전력을 보강하였다. 물자나 인원의 보급 수단으로 볼 때에는 비합법 게릴라와 큰 차이 없다고 하는 연구자도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전성기에는 참여인원이 1만명이 넘어 일본제국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다. 동북항일 연군은 한반도 내로 진공작전을 펼치기도 해,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도 위협으로 작용했다. 1939년부터 관동군과 만주국군의 마지막 특설대 등에 의한 대규모 소탕 작전을 전개하여 동북항일연군은 양정우, 리홍광 등 많은 전사자를 내었고 전광 등이 일본에 귀순하였다. 1940년 일제는 관동군을 76만명으로 늘려 항일연군 토벌을 강화했다. 주보중, 최용건, 김책, 김일성 등 남은 사람들도 물자가 부족하여 활동의 지속하기 어려워져 소련으로 탈출했다. 항일연군 1~3로군의 지도부와 잔여 병력들의 상당수는 1941년까지 소련 영내로 이동했다. [1] 1942년까지, 전사·귀순하고 있지 않는 구성원은 소련에 탈출하였으므로 동북항일연군은 소멸했다.

소련 망명 후[편집]

소련에 망명한 구성원은, 제88 특별 여단(교도 여단)에 편입되었다. 여단장은 주보중으로 러시아인도 참가하고 있는 것 이외는 그 성원이나 직책 등, 대체로 동북항일연군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련 망명 후에도 그들은 때때로 만주국에 잠입하여 작전을 수행하였다.

1945년에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이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되자 그들은 조선에 귀환하여 당이나 군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 후 남로당, 연안파, 갑산파(보천보의 싸움 등에서 동북항일연군과 함께 싸우다가 조선으로 잠복한 사람), 소련파(동북항일연군과는 별도로 소련으로부터 파견된 사람)를 숙청하여 북조선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