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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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보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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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국 | |||
| 동북항일연군, 조국광복회 | |||
| 지휘관 | |||
| 김일성, 박달, 박금철 | |||
| 병력 | |||
| 100명 | |||
| 피해 규모 | |||
| 불명 | 불명 | ||
보천보 전투(普天堡 戰鬪)는 1937년 6월 4일 만주에서 활약하던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김일성 부대와 박달, 박금철의 조국광복회 등이 조선으로 진공하여 보천보(당시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 현재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퇴각한 사건이다.
목차 |
[편집] 개요
동북항일연군 제1군 제6사는 백두산지구 유격구를 건설하고, 박달·박금철 등이 이끄는 갑산군 내 ‘조국광복회’소속 조직원들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혜산진에서 20㎞ 떨어진 보천보에 습격하여 경찰주재소·면사무소·우체국 등의 관공서와 산림보호구 등을 공격하고 ‘조선민중에게 알린다, 조국광복회 10대 강령’ 등의 포고문과 격문을 살포하고 물자를 노획하였다.
일경 7명이 죽었으며 여러 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는 설, 일본인 요리사와 유탄에 맞은 갓난 아이가 사망했다는 설이 있는데 결과 여부는 확실하지는 않다. 동북항일연군 소속 김일성은 이 습격 사건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편집] 기타
조선인민군 부총참모장 이상조는 보천보 전투 이후 중공군으로부터 도와주라는 지시받고 찾아갔으나 김일성을 찾지못했다고 하며 일제가 김일성을 잡기위해 신화적인물은 북한 1인체제를 위한 날조라고 말했다.[1]
[편집] 주석
- ↑ "北韓(북한)은 金日成(김일성)의 개인兵營(병영) 경향신문 1989년 09월 12일 3면"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외부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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