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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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苦難-行軍)(또는 북한대기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3만 명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들이 아사하자[1][2] 김일성의 항일 활동 시기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시켜 위기를 극복하려고 채택한 구호이다. 1938년 말 ~ 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자가 200~300만명이라는 주장도 제기 되었지만,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수는 33만여 명이다.[2]

목차

배경 [편집]

1989년에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어 자본주의체제로 전환되었고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붕괴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고립되었다. 동구권의 붕괴로 고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파탄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1995년 대홍수로 인한 최악의 대흉작으로 배급제가 붕괴되며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1996년 1월 1일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등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모자라는 식량을 함께 나눠먹으며 일본군에 맞서 투쟁한 항일빨치산의 눈물겨운 고난과 불굴의 정신력'을 상기하자며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익측(翼側)도 후방도 없이 걸어온 간고한 행군길'에 관한 항일빨치산 1세대들의 증언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서정시 〈끝나지 않는 행군길〉, 가요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아버지 어머니의 청춘시절〉 등과 영화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부는 1998년에 경제 건설을 위한 '사회주의 강행군'을 제시했고 2000년 1월 1일 〈노동신문〉은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우리 인민의 투쟁으로 여러 해째 계속된 어려운 행군이 마침내 '구보(驅步) 행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실제에 근접한 사망자 수 [편집]

2000년대 초중반까지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일부 대한민국 언론으로부터 고난의 행군 동안 사망자가 3백만 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에는 33만여 명이 사망했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1994~2005년)간 식량난으로 61만 명의 인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2]

기초자료는 유엔의 지원 아래 인구센서스를 실시한 1993년과 2008년의 통계. 통계청은 93년 통계를 나이와 사망률, 탈북인구, 연령별 출산율을 고려한 뒤 2008년 통계와 비교·분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추계한 만큼 이번에 발표한 숫자가 실제와 가장 근접할 것”이라고 말했다.[2]

주석 [편집]

  1. 북한주민 기대수명 남한보다 11세 낮아
  2. 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