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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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 8월 25일
→ 1957년

선출의석: 572
과반의석: 287
투표율 99.97%
  제1당 제2당 제3당
  Kim Il-sung 1946.JPG Choi yongkun1940.JPG 천도교 김달현.JPG
지도자 김일성
비서
최용건
중앙위원장
김달현
당수
정당 북조선로동당 북조선민주당 북조선천도교청우당
지도자 취임 1946년
8월 31일
1946년
2월 24일
1946년
2월 8일
획득한 의석수 157석 35석 35석
의석 증감 +157석 +35석 +35석

의장 당선자

허헌
남조선로동당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48년 8월 25일에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1] 대의원 572명을 선출하였다.

배경[편집]

1948년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해주에서 열린 제2차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는 먼저 1차 협상의 성과를 재확인했다. 그에 따라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남북조선 대표자들로 조선 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북에서는 총선거를 통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에서는 공개선거가 불가능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중 비밀 지하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선거[편집]

이북 선거[편집]

북쪽에서는 8월 25일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오전 6시에 시작한 투표는 여섯시간만인 오후 12시에 마감되었다. 투표율은 99.97%였다. 선거구 212개에 후보는 모두 1217명이었다. 그중 227명이 북조선로동당을 비롯한 주요정당들의 연합체인 북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의 공동후보였다. 단일 후보로 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15개 지역에서 복수 후보가 출마했다. 투표는 흑백함에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지는 찬반 투표였다. 유권자들은 212명의 공동 후보에게 98.49%의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이북지역의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12명이 당선되었다

이남 선거[편집]

이남에서는 공개선거가 불가능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중 비밀 지하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해 7월 중순부터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할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예비선거'에 돌입했다. 선거관리는 남쪽의 남조선로동당과 중도파 정당들이 연합하여 만든 '조선최고인민회의 남조선대의원선거지도위원회'에서 담당했다. 선거방식은 선거운동원들이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다니며 찬성하는 사람들의 도장이나 손도장을 받는 것이었다. 선거가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공정성이나 대표성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남조선 대표자' 1080명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해주에 모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위한 남조선 인민 대표자대회' 본회의를 개최했다. 대회 마지막날 북측의 8.25 총선에 맞춰 대표자들은 대의원 360명을 선출했다. 남과 북에서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572명이 선출된 것이다[2]

선거 결과[편집]

정당 의석 수[3]
북조선로동당 157석
북조선민주당 35석
북조선천도교청우당 35석
민주독립당 20석
근로인민당 20석
인민공화당 20석
기타 정당 171석
무소속 114석
합계 572석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Carter Malkasian. 《North Korea election 1948》. Fitzroy Dearborn. ISBN 1-57958-364-4
  2. 역사문제연구소, 북한 현대사, p.51~53
  3. Nohlen, D, Grotz, F & Hartmann, C. 《Elections in Asia and the Pacific: a data handbook, Volume II》. ISBN 0-19-9249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