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르 야노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 이름은 헝가리 이름으로, 성은 ‘카다르’입니다.
János Kádár (fototeca.iiccr.ro).jpg

카다르 야노시(헝가리어: Kádár János, 1912년 5월 26일 ~ 1989년 7월 6일)은 헝가리의 정치인이다. 1956년 ~ 1988년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당 제1서기(총서기)로 재직하며,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실질적인 국가 수반을 지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피우메(크로아티아리예카)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조반니였다. 헝가리 출신의 슬로바키아인인 모친을 따라 부다페스트 부근에서 성장하였다. 가난한 기계 실습공이었으며, 1931년 불법이던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공산주의 활동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지하에서 공산당 활동을 계속했으며, 전쟁 후 공산 정권이 들어선 후 1949년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스탈린 지지파와 티토 지지파간의 대립 속에 당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스탈린파와 대립, 1951년 당에서 축출되고 수감되었다. 1954년 복권되어 너지 임레 정부의 각료로 임명되었다.

1956년 10월 23일 폭동이 일어난 가운데, 카다르는 공산당이 개편된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당의 제1서기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32년간이나 그 직에 있었다. 이와 함께 민주화를 약속한 너지가 다시 총리가 되었으나, 카다르는 모스크바로 건너가 소련 지도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공산주의 정권을 유지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 잔존을 약속하였다. 11월 4일, 소련군이 부다페스트에 침공하여 폭동을 진압한 후 카다르는 정권을 장악, 총리가 되었고, 너지는 체포되어 후에 처형되었다. 당서기장과 총리직을 겸하며 그는 신정부의 15개 중점사항을 제시하고 개혁을 단행했으나, 폭동을 막기 위해 억압적인 조치를 동원했다. 1958년 함께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뮈니치 페렌츠에게 총리직을 물려주었다가 1961년 ~ 1965년 다시 총리를 지냈다.

이후로는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폭넓은 개혁을 인정했으며, 부분적인 자본주의 도입으로 경제 발전을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헝가리는 중앙유럽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가장 경제적 번영을 누린 나라에 속하게 되었으며, 서방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그러나 과도한 경제개혁에 대한 당 지도부와의 대립으로 1975년 포크 예뇌 총리가 해임되었고, 이후 경제적 개혁 속도가 늦춰졌으며, 1980년대에는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경제 정책 실패에 따른 반발과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결국 그는 1988년 5월 총서기직에서 해임되어 그의 체제는 붕괴되었고, 이후 헝가리는 급속한 정치개혁을 맞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그 다음해 5월 당 서기장과 중앙위원에서도 물러났으며, 6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헝가리의 공산정권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해 10월 붕괴되었다.


전 임
제뢰 에르뇌
헝가리 공산당 총서기
1956년 ~ 1988년
후 임
그로스 카롤리
전 임
너지 임레
헝가리의 총리
1956년 ~ 1958년
후 임
뮈니치 페렌츠
전 임
뮈니치 페렌츠
헝가리의 총리
1961년 ~ 1965년
후 임
칼러이 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