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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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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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1947. 12. 1.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속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병과 보병 · 포병 · 통신 등
역할 수색 · 경계 등
규모 사단
명령 체계 3군단
본부 강원도 양구군
별명 노도
적색 · 청색 · 백색
군가 2사단가
참전 한국전쟁
지휘관
제46대 사단장 이종섭 소장 (2013.4~ )

제2보병사단 "노도"(한자第二步兵師團, The 2nd Infantry Division)은 휴전선 중동부 전선을 맡고 있는 사단이다. 17 연대가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다.

임무[편집]

주된 임무는 양구 전방지역 일대를 수색 및 경계하며 남침에 대비한다.

역사[편집]

한국 전쟁[편집]

1947년 12월 1일 대전에서 조선경비대 예속 2여단으로 창설되어 1949년 5월 12일 제2 보병 사단으로 증편되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신임 사단장 이형근이 임명(1950년 6월 18일)되어 대전으로 부임(6월 20일)하였으나, 아직 예속 부대의 순시를 마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1] 이때, 2사단에는 제5 · 16 · 25연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대전에 있는 제5연대(장, 대리 박기성 중령 : 연대장 백남권 대령은 일본에 건너갔음)는 시흥에 있는 보병학교의 교도대로 파견된 제3대대(장, 김병화 소령)를 제외한 2개 대대 병력이 대전에 있었으나 대부분이 외출하여 대전비행장을 경비중인 제2대대(장, 車甲俊 소령)밖에 없는 실정이었으며, 청주에 위치한 제16연대(장, 문용채 대령)는 제1대대(장, 유의준 중령)가 충주에, 제2대대(장, 김헌 중령)와 제3대대(장, 강태봉 중령)는 청주에 각각 있었으나, 역시 1/3 병력 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통합지휘하라는 제25연대[2](장, 김병휘 중령)는 안동에 나간 제1대대(장, 임익순 소령)를 제외한 연대의 주력이 온양에 있었으나, 마침 단비가 내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의 이앙(移秧) 작업을 돕고자 분산되어 노력봉사 중에 있는 실정이었다. [3]제2사단장은 전쟁 발발 소식을 개전 당일 8시, 김백일 육군본부 작전참무부장으로부터 들었다. 김 대령은 이 사단장에게 채병덕 참모총장의 “후방 부대들에게 의정부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4]이에 따라, 제2사단장은 우선 오후 2시경 제5연대의 1개 대대를 인솔하여 기차편으로 서울을 향했다. 오후 6시에 용산역에 도착하고, 다시 기차편으로 의정부에 도착했다. [5] 26일 01시경, 2사단은 총참모장 채병덕으로부터 의정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때, 2사단의 가용병력은 제5연대 제2대대 뿐이었다. 3시, 제5연대 제2대대는 포천 탈환을 위한 반격을 개시하여 축석령으로 향하였다. 한편, 사단 참모장 최창언(崔昌彦) 중령이 인솔한 제5연대[6] 제1대대도 이날 새벽에 의정부 금오리에 도착하였다. 그 즉시, 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출격하였다. 그러나 제1연대 및 제2연대 모두 북한군의 공격에 분산되고 말았다.[7] (상세한 전투 경과는 의정부 전투 참조) 1950년 7월 25일 대구지구 방어사령부 편입되었다.

휴전 이후[편집]

1953년 3군단에 예속되었다. 1959년 8월 28일에 양구지역으로 이동하여 현재 에 배속된 이후로도 까지 주둔하고 있다.

주요 참가 전투[편집]

  • 1948년 10월 : 여수, 순천 반란군 진압작전
  • 1949년 9월 : 태백산 지구 공비토벌 작전
  • 1950년 6월 : 의정부 지구 전투
  • 1951년 5월 : 북한강 지구 전투
  • 1951년 9월 : 인천상륙작전(육군 유일 참가 : 17연대)
  • 1952년 1월 : 금화지구, 저격능선 전투
  • 1968년 11월 : 울진ㆍ삼척지구 대침투 작전
  • 1996년 9월 : 강릉 대침투 작전

예하 부대[편집]

  • 17 보병 연대
  • 31 보병 연대
  • 32 보병 연대
  • 포병 연대
  • 직할대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6ㆍ25를 회고한다-이형근", 《동아일보》, 1975년 6월 25일 작성.
  2. 1950년 6월 13일 육본 작전명령 제79호에 의거하여 6월 15일부로 제2사단 제25연대가 제7사단에 편입되었으나, 주둔지 미비로 아직 온양이 있었던 것이다.
  3. 韓國戰爭史 第1卷(改訂版) 北傀의 南侵과 緖戰期》 〈第3章 北傀의 全面南侵 4. 抱川-東豆川-議政府地區 戰鬪〉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1977, 개정판) 356쪽.
  4. 韓國戰爭史 第1卷(改訂版) 北傀의 南侵과 緖戰期》 〈第3章 北傀의 全面南侵 4. 抱川-東豆川-議政府地區 戰鬪〉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1977, 개정판) 356쪽.
  5. "6ㆍ25를 회고한다-이형근", 《동아일보》, 1975년 6월 25일 작성.
  6. 연대장 대리 박기성(朴基成) 중령은 부산(釜山)에서 아직 귀대치 못하였음
  7. 韓國戰爭史 第1卷(改訂版) 北傀의 南侵과 緖戰期》 〈第3章 北傀의 全面南侵 4. 抱川-東豆川-議政府地區 戰鬪〉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1977, 개정판) 3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