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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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Flag of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svg
해병대 상징 깃발
활동 기간 1949년 4월 15일 ~ 1973년 10월 10일
1987년 11월 1일 ~ 현재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속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군
종류 해병대
역할 국가 전략 기동군
규모 약 28,000명 (2011년 12월 기준)
명령 체계 Naval Jack of South Korea.svg 해군 본부
Flag of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svg 해병대 사령부
본부 경기도 화성시
별명 무적 해병(無敵海兵, Invincible Marines)
귀신잡는 해병대
(Marines the Devil-Capturers)
표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작지만 강한 해병대
(Small but Tough Marines)
빨강, 하양
군가 "해병대가"
마스코트 해병이
장비 KAAVP7A1, M48A5K, K-1, K-9
참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기념일 창설기념 (1949. 4. 15.)
인천상륙작전 (1950. 9. 15.)
서울수복 (1950. 9. 27.)
웹사이트 http://www.rokmc.mil.kr/
지휘관
사령관 이영주 중장

대한민국 해병대(大韓民國 海兵隊, 영어: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ROK Marines, ROKMC)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해병대이다.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현재 K1 전차K9 자주포 등의 기갑 장비와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상륙 장비를 갖췄으며, 미국 해병대를 본따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발전을 진행하고 있다. 독도함도 이런 해병대의 미래 발전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개요[편집]

처음 대한민국 해병대는 해상에서 육지으로 전력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헬기와 항공기를 통한 공중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해병대는 과거의 해상투사 이외의 공중강습과 공수작전이 가능토록 편성되고 훈련되지고 있다. 현재 해병대의 이러한 임무는 국가전략기동부대라는 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해상투사 이외의 공중강습과 공수작전개념이 도입되면서 상륙작전에도 반영되어 초수평선상륙작전 개념이 도입되었다. 해병대 항공단을 신설하였다.

2012년 현재 2개 사단, 1개 여단, 연평부대, 제주방어사령부 예하 해병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부산 가덕도 해병경비대 및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해병대를 포함한 대한민국 해군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 대를 보유하고 있다.[1]

역사[편집]

초기[편집]

여수 10.19 사건의 결과에 따라 상륙전을 담당할 부대의 필요성을 검토하여 미국 해병대를 모방하여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위치한 덕산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5월 5일, 대통령령 제88호로 해병대령이 공포되었다.

그들을 지휘할 최초의 해병 사령관은 신현준 중령, 해병 참모장은 김성은 통제부 교육부장이었다. 그리고 부대원은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2]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8월 1일 해군에서 장교부사관을 증원받고, 해군 병 14기 중에서 440명을 해병대 병 2기로 특별모집받아‚ 2개 대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8월 15일 광복절 4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면서 최초로 모습을 대외적으로 드러내었다.[3]

그리고 같은 해 9월, 신영철과 김행래에 의해 작사·작곡하고 이병걸이 편곡한 〈나가자 해병대〉가 해병참모장 김성은 대령을 위원장으로 한 군가제정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해병대의 군가로 제정되었다.(추후 "해병대가"로 변경되었다.)

8월 29일, 진주에 전개한 김성은의 대대가 4개월간 지리산 공비를 토벌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제주도에 상륙하여 옮겨가 이듬해 1950년 7월까지 약 약 7개월 동안 제주읍과 모슬포를 근거지로 하고 공비를 토벌하였다.

한국 전쟁[편집]

1950년 8월 17일 통영 상륙 작전에서 해병대 1개 중대는 조선인민군 대대 병력을 격파하고 통영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1950년 8월 23일 최초의 퓰리처상 여성 수상자인 뉴욕 헤럴드 트리뷴마거릿 히긴스 기자는 이 성과를 보도하는 《귀신잡는 해병》(Ghost-catching Marines)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해병대는 악마조차도 잡을 정도였다."(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고 썼고, 그 이후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었다.[4][5][6] 같은해 9월 1일에 제1연대가 창설되었다. 1연대는 9월 15일 미국 1 해병 사단와 같이 미국 10(X) 군단에 편성되어 인천항에 상륙하였다. 9월 27일 서울로 진격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개양하고 다음날 9월 28일 조선인민해방군의 잔여병력을 소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수도를 되찾았다.[7] 이후, 전세가 기울어 국제 연합군이 혜산진까지 진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는 각각 원산함흥 지역에 상륙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0월 25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증원되어 한반도로 진입해오자, 각 지역에 있던 해병대는 일제히 철수하여 진해로 집결하였다. 12월 20일, 5 독립대대를 창설하였다.

1951년 6월 4일, 미국 5 해병 연대도솔산을 탈환하는데 실패하자, 1 연대는 그들과 임무를 교대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5 군단 예하 12 사단32 사단를 상대로 6월 20일까지 전투를 지속하여 2개 사단을 격파하였다. 1 연대는 "무적 해병" 칭호와 8월 19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8월 30일에는 김일성 고지에서 3 군단 예하 1 사단를 상대로 부터 9월 4일까지 4일간 공방전을 벌여 924 "김일성" 고지와 1026 "모택동" 고지를 탈환하였다. 전후, 미국 측에서는 이 전투를 단장의 능선 전투로 명명하였다.

1952년 1 연대와 5 독립대대가 합병하여 1 전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전쟁 이후 ~ 해체[편집]

한국 전쟁이 휴전되자 해병대는 정비에 돌입했다. 1 전투단은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으로 이동하고 1954년 2월 1일 1 여단으로 증편한 뒤, 3월 14일 미국으로 귀환하는 미국 1 해병 사단에게서 책임진술지역(TAOR)의 작전지휘권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55년 1월 1 상륙사단으로 증편되고, 3월 26일 사령부가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남산 기슭로 옮겨졌다.

1959년 2월 26일, 1 사단은 1연대를 차출하여 1 임시여단으로 증편한 뒤, 김포 반도의 경비를 맡기고 3월 12일 포항시로 이동하였다.

1965년 9월 20일 베트남 전쟁 파병을 위해 해병대 2 여단 "청룡부대"를 창설하고 남베트남으로서 파병하였다. 1965년 10월 9일 캄란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주월한국군사령부의 통제 아래에서 1972년 2월 24일까지 6년 4개월 동안 짜빈동 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수행하였다.[8] 1966년 11월 14일 제2여단이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어 생긴 전력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신규 병력을 증원하면서 편성된 5 연대를 1966년 11월 23일 5 해병여단으로 재편하여 김포반도에서 휴전선 경계 임무를 맡고 있던 1 임시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임무를 마친 1 임시여단은 제1사단으로 복귀한 직후, 해체되었다.

1972년 1월 4일, 청룡부대가 귀국하는 즉시 해체되고 명칭만 5 해병여단으로 이전할 것이라 밝혔다. 파리 평화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청룡부대도 철수를 시작하였으며, 2월 24일 베트남 공화국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예정이 바뀌어 1973년 7월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3 야전군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주둔하고 있던 5 해병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9][10]

효율적인 군대 운영을 위해 재편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마련된 국방부 훈령 제157호에 의거하여 해군으로 지휘통제가 통합하게 되어 편성된 해군참모부에 해병대 사령관이 해군 2 참모차장으로 취임하면서,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 사령부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11]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면서 1958년 창설된 해병대항공부대도 해체되어 장비와 인원은 모두 해군으로 이관되었다.

재창설 이후[편집]

1987년 11월 1일 14년간 해군에 통합되어 운용되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하였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사상 등이 보완되지 않아, 해병대 인사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 8월 1일 법률이 개정되면서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권한이 회복되었다. 1992년 12월 1일 한미연합사령부 예비 전력 부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연합 해병대 사령부(Combined Marine Component Force Command; CMFC)가 창설되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국방개혁 2020 계획이 재정되어 6해병여단과 연평부대가 해체되고, 백령부대와 제주부대를 창설하고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용 등의 문제와 조선인민군 4군단에 의한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의 신속 대응에 문제가 제기되고 계획이 폐지됨으로써 취소되었다.[12]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라 해병대 사령관 겸임 지휘하는 서해5도에서의 조선인민군의 위협에 빠른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합동 사령부인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국방개혁 2020의 일부 계획안인 제주부대, 정보단과 통신단의 창설 계획을 되살리고,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바꾸기 위해 사령부 직할 항공단의 창설을 추가하였다.

2017년 도입 예정인 상륙기동헬기 32대를 직접 운용 여부는 김관진 국방장관 주재 군무회의에서 최종 확정예정이다. 해병대는 1973년 해병대사령부 해체 이후 해군에 통합된 이후 44년 만에 항공 전력을 갖추게 된다. 해병대는 1973년 10월 해군에 통합되면서 12대의 헬기와 125명의 운용요원 모두 해군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1987년 11월 해병대 사령부가 재창설 됐지만 헬기는 돌려받지 못했다.[13]

2013년 국회 국방위의 해병대 국정감사에서 해병대 전투병의 사격량이 육군 전투병 사격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인가된 교탄의 일부만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해병대의 부실한 사격훈련 실태가 지적되기도 했다. [14],[15]

해군과 분리 독립[편집]

해병대가 2013년 하반기부터 예산과 관련한 사실상 일체의 권한을 해군으로부터 넘겨받게 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방부는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3년 4월 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에 해병대 부사령관을 포함하고 무기체계 등의 `소요요청기관`에 해병대를 해군과 분리해 별도로 명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ㆍ시행규칙이 개정되면 해병대 사령관이 직접 방위사업청장이나 합참의장에게 필요한 무기체계 소요를 제출할 수 있다. 그동안 해병대는 법적으로 해군에 소속돼 있어 해군을 통해서만 필요한 장비나 무기에 대한 소요를 제기할 수 있었다. 또한 국방장관이 2012년 6월 군무회의에서 상륙기동헬기 32대를 해병대에서 운영하도록 결정했다.

장교양성[편집]

2012년 6월 27일 해병대 사령부는 단국대학교대한민국 최초로 해병대군사학과의 신설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고[16], 2013년 해병대군사학과 1기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해병대군사학과는 대한민국 유일의 해병대 장교 양성 학과다. 신입생은 전원 군 장학생으로 선발돼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것은 물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비 역시 면제를 받는다. 또 졸업 후에는 해병대 장교(소위)로 임관해 의무복무기간(7년)을 거치게 된다.[17]

병과[편집]

  • 보병과
  • 포병과
  • 기갑과
  • 공병과
  • 수송과
  • 통신과
  • 병기과
  • 보급과
  • 경리과
  • 정훈과
  • 헌병과

당초 해병대는 항공병과의 부활을 원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현재 해병 조종장교는 보병과의 병과를 부여받고 있다. 해병대의 병과부호는 17번 부터 시작하며 1번부터 16번까지는 해군의 병과번호로 국방부 전체로 보면 해군의 병과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사령관[편집]

해병대 사령관은 중장 계급의 고위 장교가 국군조직법 제10조 3항에 따라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통제한다. 현재 사령관은 이영주 중장이며, 서북도서방위사령관 또한 겸임한다.

조직 편성[편집]

대한민국 해병대 편제 구조
  • 사령부 - 경기도 화성시
    • 교육훈련단 - 경상북도 포항시 (1953년 2월 1일 창설)
    • 군수지원단 - 경상북도 포항시
    • 1 해병사단 (해룡, 경상북도 포항시)
      • 2 해병연대 (황룡)
      • 3 해병연대 (킹콩)
      • 7 해병연대 (맷돼지)
      • 1 해병포병연대 (불사조)
      • 1 공병대대
      • 1 상륙돌격장갑차대대
      • 1 수색대대
      • 1 전차대대
      • 1 정보통신대대
      • 1 지원대대
      • 1 정비대대
      • 1 정보통신대대
      • 1 보급수송대대
      • 화생방지원대
      • 항공대
      •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 2 해병사단 (청룡, 경기도 김포시)
      • 1 해병연대
      • 5 해병연대
      • 8 해병연대
      • 2 해병포병연대
      • 2 공병대대
      • 2 상륙돌격장갑차대대
      • 2 수색대대
      • 2 전차대대
      • 2 정보통신대대
      • 2 정비대대
      • 2 보급대대
    • 6 해병여단 (흑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 서해 5도 주둔지
      • 61 대대
      • 62 대대
      • 63 대대
      • 65 대대[18]
      • 포병 대대
      • 6 수색중대
    • 연평부대 (공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 90 대대
      • 9 포병 대대
      • 우도경비대[19]
    • 부산 가덕도 해병경비대
  • 제주방어사령부
    • 9 해병연대 (예비대)
  •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 육상경비대대

해군 제주방어사령관은 해병 준장이 지휘하고 있으며, 사령부 예하에 예비군과 일부 실무병으로 구성된 해병 9연대가 있다. 제주에는 해병 9연대의 1대대(91대대) 2대대(92대대) 3대대(93대대)가 있지만 예비군과 소수의 병력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병대 대대급 혹은 중대급 부대가 신속대응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분기별로 파견을 나가 주둔한다. 그러나 제주해안경계임무는 해병대에서 맡지 않고 경찰에서 맡고 있다. 그리고 해군 진해기지사령부를 방어하기 위해 마찬가지 사령부 예하 해병부대가 주둔 하고 있는데, 이 부대는 육상경비대라고 불리는 대대급 해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약칭 육경대라고 부른다. 이 외에 부산 가덕도에도 해병경비대가 주둔하고 있다.

해병 부대의 명칭은 1973년에 사령부가 폐지된 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론 못쓰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과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호칭되었다가, 1987년 해병대사령부기 재창설된 이후엔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군을 해병으로 대채한 "해병 제1사단", "해병 제00대대" 등으로 부대 공식표기명이 바뀌었으며 공식문서와 부대깃발에도 표식을 변경하였다.

복장 및 상징[편집]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를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20] 미 해군과 해병대 작업모에서 유래한 팔각모는 신라시대 신라인의 정신이기도 하였던 화랑도 정신인 《오계》와 세 가지 ‘금기’를 포함하며 ‘팔계’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21]

  • 국가에 충성하라(事君以忠)
  • 뜻 없이 죽이지 말라(殺生有擇)
  • 효도하라(事親以孝)
  • 벗에게 믿음으로 대하라(交友以信)
  • 전투에 후퇴하지 말라(臨戰無退)

또한 세가지 금기는 다음과 같다.

  • 욕심을 버려라(禁慾)
  • 유흥을 삼가라(愼遊興)
  • 허식을 삼가라(愼虛飾)

사건, 사고[편집]

해병대 대령 성추행 사건[편집]

2010년에 해병대 2사단 현역 대령이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해병대원을 네 차례 성폭행하였고 이에 충격을 받은 피해 해병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다.[22] 그 해병대령은 국방부 군사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9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23]

--- 2014년 무죄판결 [24]

해병대 사령관 음해 사건[편집]

군검찰은 31일 해병대 사령관을 음해한 혐의(특가법상 무고 등)로 최근 보직해임된 해병대 모사단 P소장을 구속했다. 군검찰에 따르면 P소장은 7월 전역을 앞둔 H소장과 함께 지난해 6월 취임한 해병대 사령관이 여권의 핵심 실세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건네 경쟁자를 제치고 진급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군은 지난달 21일 인사심의위원회를 열어 P소장의 보직해임을 결정했다.

유낙준 전 해병대 사령관을 음해한 혐의(무고 등)로 기소된 해병대 박 모 소장과 홍 모 소장에 대해 군 사법당국이 사실상 무죄판결을 내렸다.

국방부 군사법원은 지난 30일 열린 1심 재판에서 홍 소장에 적용된 상관명예훼손과 뇌물수수 혐의, 박 소장에 적용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다만 무고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월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재판부는 "박 소장과 홍 소장이 유 전 사령관을 음해해 상명하복 및 위계질서를 생명으로 여기는 군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무고 혐의를 인정하면서 "다만 제보자 김 모 씨로부터 허위정보를 받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 동기 등을 참작해 선고유예했다"고 말했다.

선고유예란 비교적 경미한 범죄인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사고없이 유예기간을 지나면 형이 면제되는 제도다.

박 소장은 지난해 2월 유 전 사령관이 여권 실세의 측근에게 '사령관으로 승진하면 3억5천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의 이행각서를 써준 의혹이 있다며 부하직원을 시켜 국방부 조사본부에 제보하게 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된 뒤 군 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유 전 사령관과 경합을 벌이다 진급에 탈락한 동기생 홍 소장은 박 소장과 공모한 혐의로 지난 7월 기소됐다. 이로써 해병대 전체 소장 중 절반인 2명이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은 '김 목사에게서 이행각서에 관한 얘기를 듣고 해병대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알아보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군 검찰은 이들이 진급심사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보고 무고죄를 적용했다. 당시 군 안팎에서는 이행각서의 사실 여부를 밝혀달라는 요구를 음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논란[편집]

은유적 표현[편집]

2011년 군인권센터 조사 결과 해병대에선 해병대에 관한 은유적 표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해병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해병대는 밤에 맞으면서 교육받는다"는 뜻이었으며 '해병대는 말이 없다'는 "내부 고발하는 해병은 해병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25]

대처[편집]

2011년 7월 강화도 해병대 2사단 총기난사 사고 직후 국방부가 7월 11일부터 7월 29일까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병영 내 악ㆍ폐습 근절을 위한 교육과 자체 점검을 실시하였다.[26]

2011년 해병대는 구타 등으로 빨간 명찰이 회수된 병사는 징계 절차 등을 마치고 빨간 명찰이 없는 상태로 타부대로 전출 뒤 재활교육을 거쳐 명찰 회복식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구타행위가 계속 적발됨에 따라 향후 인성결함자들의 입영을 차단하기 위해 인성검사 절차도 '병무청→교육단→자대'의 3단계에서 '병무청→교육단→교육대→실무'로 한 단계 강화하기로 했다.

2011년 7월 해병 2사단의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해병대가 가혹행위를 한 병사의 군복에서 해병대원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떼기로 방침을 정한 뒤 해병 2사단이 최근 특별명령을 예하부대에 내려 자체 조사한 결과 구타와 가혹행위, 병영 부조리 행위 등으로 35명이 적발돼 징계조치를 받았거나 진행 중이며, 징계 조치와는 별도로 군복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회수당했다.[27]

대처에 따른 효과[편집]

병영 내 악ㆍ폐습 근절을 위한 교육과 자체 점검 등을 실시한 이후 국방부 특별검열단이 2011년 8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20개 팀으로 나눠 해병대 장병 8천25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2.2%(1천813명)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특별검열단의 특별점검 결과, 구타ㆍ가혹행위자가 63명이 추가로 적발됐다. 이 중 장교는 2명, 부사관이 13명이었고 일반 병이 48명이었다.

또한 구타ㆍ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0사단의 경우,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뺨, 뒤통수, 허벅지, 정강이 등을 5~6회씩 때리고, 목조르기 등을 실시한 해병에 대한 징계는 휴가 제한이 전부였다. 00사단에서는 중사 진급 예정자인 하사관이 진단 6주가 나올 정도로 머리 박기, 군화발 폭행, 뺨 때리기 등의 가혹행위를 했는데도 벌금 200만원에 견책 처분만 내려졌다.[26]

주요 해병대 출신인[편집]

사진첩[편집]

같이보기[편집]

주석[편집]

  1.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2.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사병이란 단어 대신 이들을 구별하여 부른다.
  3. 양영조 (2007년 12월 1일). 해병대 창설. 국가기록원. 2011년 12월 22일에 확인.
  4. 이승록 (2011년 1월 17일). 현빈이 간다는 해병대의 모든 것 !. 마이데일리. 2011년 12월 22일에 확인.
  5. "Invincible Marines"
  6. 장일현. "'귀신 잡는 해병' 표현 만든 종군 여기자 故 마거릿 히긴스, 한국 외교훈장 받는다", 《조선일보》, 2010년 8월 31일 작성. 2011년 12월 22일 확인.
  7. 인천상륙작전이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2012년 1월 25일에 확인.
  8. 해병대의 역사-베트남전쟁, 2011년 1월 17일 확인
  9. "청룡最終兵力(최종병력) 오늘撤收(철수)", 《동아일보》, 1972년 2월 24일 작성. 2012년 1월 28일 확인.
  10. "主力(주력) 오늘凱旋(개선) 青龍(청룡),西部前線(서부전선)에 배치", 《경향신문》, 1972년 2월 7일 작성. 2012년 1월 28일 확인.
  11. "海兵隊(해병대),海軍(해군)에 統合(통합)", 《경향신문》, 1973년 9월 15일 작성, 1면. 2012년 1월 10일 확인.
  12.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한국어)", 《국방일보》, 2008년 11월 25일 작성. 2008년 2월 28일 확인.
  13. "'해병대 날개단다'…상륙기동헬기 32대 운용권 갖게될 듯", 《뉴시스》, 2012년 6월 4일 작성. 2012년 6월 4일 확인.
  14. 2013국감 사격 안하는 해병대 2013-10-28《아시아경제》
  15. "이래서 귀신 잡겠나.." 해병대 사격, 육군 전투병 절반 2013-10-28《뉴시스》
  16. 캠퍼스에서 해병대 장교 키운다. 단국대 해병대군사학과 신설, 경향신문 2012년 6월 27일자
  17. 최진섭 기자, "단국대 "리더십 갖춘 엘리트 해병대 장교 양성"", 《중앙일보》, 2013년 4월 12일 작성. 2013년 5월 27일 확인.
  18. 박성진 (2011년 11월 20일). 남북, 서해 5도서 군비 경쟁… 우리 군,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경향신문. 2012년 3월 23일에 확인. “대청·소청도에는 중대급인 해병 6여단 대청부대를 대대 규모로 늘렸고”
  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202157095&code=910303
  20. 해병대의 상징, 붉은 명찰, 2011년 1월 17일
  21. 해병대 상징, 팔각모, 2011년 1월 17일 확인
  22. "현역 해병 대령, 운전병 4차례 성폭행…자살 시도", 《경향신문》, 2010년 7월 23일 작성. 2012년 3월 18일 확인.
  23. "운전병 성추행 해병대 대령 실형", 《한국일보》, 2012년 2월 18일 작성. 2012년 3월 18일 확인.
  24. "'운전병 성추행' 사건 해병대 대령 무죄 확정", 《뉴시스》, 2014년 9월 10일 작성. 2014년 9월 10일 확인.
  25. 조현호. ""불달군 숟가락으로 엉덩이 지져" 해병대 충격실태", 《미디어오늘》, 2011년 7월 15일 작성. 2011년 12월 21일 확인.
  26. 양낙규. "해병대 장병 20% "구타 필요"", 《아시아경제》, 2011년 9월 22일 작성. 2011년 11월 17일 확인.
  27. 최경운. "빨간명찰 떼인 해병 35명", 《조선일보》, 2011년 8월 19일 작성. 2011년 11월 17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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