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 황석영 | |
| 출생 | 1943년 1월 4일 만주 |
|---|---|
| 직업 | 문인, 작가, 소설가 |
| 국적 | |
| 주요 작품 | 《장길산》 《무기의 그늘》 《손님》 |
| 주요 수상 | 2004년 제8회 만해대상 2008년 제3회 로얄 살루트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
황석영(黃晳暎, 1943년 1월 4일[1] ~ )은 대한민국의 문인, 작가, 소설가이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반
1943년 1월 4일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에 평양 외가로 왔다. 본명은 황수영이다. 1947년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 1950년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피난지를 전전했다. 1956년 경복중학교에 입학하여 1959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청소년 잡지인 《학원(學園)》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이 당선되었다.
[편집] 문학 등단
1960년 4·19 혁명 때 함께 했던 안종길이 경찰의 총탄에 사망하여, 그는 친구들과 함께 안종길의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1961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 《출옥일》이 당선되었고, 1962년 봄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남도 지방을 방랑하다 같은 해 10월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11월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석부근》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64년 숭실대학교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제2한강교 건설노동자와 남도로 내려갔다. 이 시기에 일용 노동 등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칠북의 장춘사(長春寺)에서 입산했다. 동래 범어사를 거쳐 금강원에서 행자 노릇을 하다가 어머니가 찾아와 집으로 돌아갔다. 1966년 대학에서 제적된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월남전에 참가했다. 훗날 그가 쓴 장편소설인 《무기의 그늘》에는 당시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참전 이후 1969년 5월 군에서 제대했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환영의 돛》과, 베트남전의 경험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탑》이 당선됐다. 이때부터 황수영 대신 황석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여성적인 이름과 '황수영 시절의 사연들이 싫어' 바꾸었다고 한다.
1970년부터 《돌아온 사람》, 《객지》, 《삼포가는 길》 등의 현실주의 중·단편을 속속 발표했다. 이때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중퇴하였으나, 2000년 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1974년 7월부터는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는 1984년 7월까지 계속됐다.
[편집] 1980년대 이후
1989년 3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하여 방북 기간 동안 평양에서 김일성과 만나기도 했다.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예술원 초청작가로서 1991년 11월까지 독일의 베를린에 체류했다. 이때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 비평》에 게재했다.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대상 중 한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하였는데, 1990년 10월 4일 오후6시40분쯤 외국어대 재학중 민학투련 출신이었던,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다.[2] 윤석양은 탈영후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 7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탈영당시 보안사에서 갖고나온 동향파악대상자 개인색인표 신상철,이들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디스킷을 공개했다.[2]
1993년 4월에 귀국했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3월에 석방되면서 그의 소설 《장길산》, 《객지》, 《오래된 정원》, 《무기의 그늘》,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손님》 등이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중화민국 등에 출간되었고 영국, 독일, 스페인에서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3]
[편집] 2000년대 이후
2009년 5월 13일에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이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로 평가한다고 말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4]또한 그는 용산 참사와 관련, "현 정부의 실책이라고 본다"고 말했지만, "해외에 나가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다"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다"고 지적한 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4]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인터넷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보수 논객인 박효종 서울대학교 교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념이나 가치관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 황석영 씨의 발언을 놓고 변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5] 반면에 진보 성향의 손호철 서강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MB 정부를 중도라고 규정하는 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5]
[편집] 평가와 비판
[편집] 평가
그의 소설은 1970년대 초반 이후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유신정권의 개발 우선 정책과 산업화·근대화의 파행적 전개 등이 황석영의 투철한 시대의식과 맞부딪침으로써 그의 소설을 더욱 문제적인 작품으로 이끌고 간 것이다. 특히, 《객지》, 《삼포가는 길》은 도시화와 산업화 우선의 개발정책이 야기한 이농현상과 농촌의 붕괴현상 등 당시 사회적 모순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작품이다.
그가 1980년대에 발표한 장편소설 《장길산》은 지배층 중심의 사관이 두드러지는 기존의 역사소설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서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에 단절된 민중적 영웅상을 소설 속에서 다시 부활시킨 작품이다. 민중의 한을 역사변혁의 힘으로 승화시킨 그의 소설은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의 바로세우기에서부터 출발하며 남성적인 투박한 ‘힘’이 두드러지는 강한 문체로서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전개시키고 있다.
《객지》, 《삼포가는 길》의 결말 부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소설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마치 풀뿌리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미래를 향한 강한 투쟁 의욕과 생명력을 발산하는 ‘인물’의 부각은 그의 소설의 뛰어난 매력이자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다. 현실참여파로 정치사상적으로 사회민주(사민주의)적 진보주의자로 분류된다.
[편집] 비판
지만원 등 일부는 그를 좌파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밖에 황석영이 이명박 정부를 '중도 실용' 정부라고 규정한 바가 있다. 발언 후 진중권 등 진보 진영에서는 황석영을 '변절자'라고 비판하는 반면, 김지하는 황석영을 두둔하기도 했다. 이에 황석영은 자신의 정부에 대한 립서비스(상황을 유리하게 되도록 상대방을 칭찬하는 행위)가 과도했다는 점을 일부 시인했다.
한 문인은 "김지하·박노해씨는 기득권을 좇아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황석영씨는 권력을 좇고 획득하려는 모습[6]"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편집] 작품
[편집] 장편소설
- 《장길산》(1974년~1984년)
- 《무기의 그늘》(1985년)
- 《오래된 정원》(2000년)
- 《손님》(2001년)
- 《모랫말 아이들》(2001년)
- 《심청, 연꽃의 길》(2007년)
- 《바리데기》(2007년)
- 《개밥바라기별》(2008년)
- 《강남몽》(2010년)
[편집] 단편소설집
[편집] 희곡
- 《장산곶매》- 희곡전집(창비, 2000년)
[편집] 비소설
- 《아들을 위하여》(2000년)
-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황석영 북한방문기(2000년)
-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2001년)
[편집] 번역소설
- 《삼국지》(2003년)
[편집] 논란
[편집] 변절 논란
2007년 이후 이명박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여 변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명박 지지를 놓고 '춘원 이광수의 친일 변절'에 비유되기도 하면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7] 그러나, 황석영 자신은 2009년 5월 15일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뜻이 와전되었다.'는 뜻을 밝혔다.[8]
한편 황석영은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에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 '저는 현 정부가... (이하 중략)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밝혀왔습니다. 이것은 특정 정부나 정당의 지지 여부를 떠나 현재 시점이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때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중략) ...국내 현안과 정책을 놓고 싸울 때에는 싸워야 하겠지만 타협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정책을 견인해내기도 해야 합니다.[7]' | ” |
이 발언은 당시 진보논객인 진중권에게 격렬한 비난을 받았었다.[9] 반면, 김지하는 "황석영이 공산당이었나. 민주주의 사회에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그네이고 작가로, 동서양 남북지위 가리지 않고 가고 싶은대로 휘젓고 다니는 사람이다. 뭐라고 시비를 거는 것인가"라며 '이 발언이 어째서 변절이냐'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10]
황석영 자신은 2009년 6월 7일자 한겨레 신문에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평화 실낱 희망도 사라진 것 같다”라며 지지를 철회했다.[11]
2008년 5월 18일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려 세간의 비난 여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12]. 그러자 진중권은 "'내가 가고 싶어 갔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 뻘짓에 무슨 숭고한 뜻이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다. '작가가 꿈을 안 꾸면 누가 꾸냐'고? 걱정 말라. 그런 꿈은 작가가 안 꿔도 이명박 대통령이 꾼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12]
[편집] 김지하의 옹호와 진중권의 비판
김지하는 그를 옹호하며 "작가라는 것이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라며 황 씨의 행보에 작가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는 진 교수가 황 씨를 가리켜 '금붕어 기억력'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이다.[12] 5월 19일 진중권은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을 글을 올려 "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라는 미학이론은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 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비꼬았다.[12]
김지하의 옹호가 있자 진중권은 "그 분(김지하 시인)이야 어차피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지요"라며 "그냥 후배 사랑이 남달라서 저러시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13]
황석영이 블로그를 통해 "작가는 언제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자"라고 말한 데 대해 진 교수는 "황 씨가 깬 그런 금기는 이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김영환과 같은 사람이 황 씨 앞서서 줄줄이 깬 것이다. 전혀 미학적 새로움이 없다 진부하다"고 독설을 쏟아냈다.[12] 진중권의 발언과는 별도로 여러 네티즌들로부터 배신자, 변절자라는 비난과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진중권은 "작가에게는 좌우를 오갈 자유가 있다"며 "하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자유는 권력으로부터 자유인데 황석영은 그 자유를 포기했다"고 비난했다.[14] 진중권은 또 "작가든 故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든 이명박 대통령이든 좌우를 넘나들며 권력자 앞에서 알랑 방귀를 뀔 정치적 자유가 있고 대중은 그 냄새를 맡으며 '구리다'고 할 문화적 권리가 있다"고 비판했다.[12]
[편집] 광주 민주화 운동 발언 파문
이명박과의 순방을 다녀오는 길에 발언한 광주사태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다"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다"고 지적한 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는 발언했다.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 ↑ 1943년 12월 14일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석영, 《객지 : 중단편전집1》, 창비, p.331. 작가 연보.
- ↑ 가 나 보안사, 저명인사 1300명 사찰 천주교인권위 1990년 10월 5일자
- ↑ 황석영, 《객지 : 중단편전집1》, 창비, pp.331-335. 작가 연보.
- ↑ 가 나 황석영, "진보, 고전적 이론 틀로는 안돼", 황정욱 심인성 기자, 연합뉴스
- ↑ 가 나 <학계로 번진 황석영 '변절' 논란>, 연합뉴스
-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061.html
- ↑ 가 나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405&num=90134&p=1&Sword=
- ↑ 황석영 “막힌 남북관계 풀려는 뜻…나는 변하지 않았다”
- ↑ 진중권 "황석영 개그계 데뷔? 욕할 가치도 없어"
- ↑ 김지하, "황석영이 변절? 그가 공산당이었나"
- ↑ “이명박 정권 들어 남북평화 실낱 희망도 사라진 것 같다” / 황석영
- ↑ 가 나 다 라 마 바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d20090519132523n8096
-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519172904268&p=newsis
-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519172904268&p=new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