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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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9° 55′ 동경 127° 32′  / 북위 39.917° 동경 127.533° / 39.917; 127.533

함흥시
Hamhung North Korea.jpg
함경남도-함흥시.png
현황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면적 556 km²
인구 768,551[1]
행정구역 7구역 0군
함흥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흥시
함흥시의 위치
미국항공우주국 World Wind 사진

함흥시(咸興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동해안에 있는 시이자, 도 소재지이다. 평양직할시에 이은 제 2의 도시이자, 관북 지방 최대 도시이다. 북쪽은 함경산맥, 서쪽은 낭림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천강동조선만을 통해 동해로 유입되면서 성천강 유역에 함흥평야가 발달하였다. 함흥공업지구가 조성되어 화학공업이 발달하였고, 흥남구역에는 1만 톤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흥남항이 있다. 인구는 약 77만명이다.

지리[편집]

최고봉은 형제봉이다. 주요 하천은 성천강이고 동해에 접해 있다. 해안에 접해 있는 곳으로 이곳은 기온이 따뜻하다. 그리고 함경산맥이 바람받이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푄 현상도 일어난다.

역사[편집]

함흥시는 1세기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8세기 이후에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성덕왕 20년에 사건을 기록한 《삼국사기》 제8권에 의하면, "하슬라주(오늘날의 강릉시) 이북에 군사 2천여 명을 선발하여, 하슬라주와 용흥강 일대를 지키도록 했다"고 하였다.

한편, 발해5경제도에 속해 있었던 남경 남해부함경남도 함흥시와 북청군, 그리고 락원군에 존재했을 수 있다고 추정된다.

고려 때 '함주'로 불렀지만, 영토가 된 것은 단기간이었고, 원나라 쌍성총관부에 '함흥'이 속했기 때문에, 함흥시는 고려의 영토에 속하지 않고 있었으나 공민왕1365년에 원나라가 홍건적에게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을 기회로 해서 영토를 넓혔고 비로소 함흥이 고려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초기 함흥 일대는 여진족과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의 지위에서 물러나서, 1403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함흥시는 함경남도에 소속되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합병당한 일제 강점기에는 함흥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복전에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1941년 4월 1일 함주군 주서면 일부 등을 편입하였다.[2]

조선총독부령 제84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함주군 주서면 서상리, 신상리, 흥도리, 구억리, 십이리, 풍호리 함흥부 일부
운남면 당북리, 당흥리, 대흥리, 련봉리, 중리, 자흥리, 풍동리, 운곡리, 초흥리, 동흥리, 신흥리, 보고리, 인흥리, 신보리, 중보리, 상보리
동천면 하수리, 상수리, 부평리, 회양리, 경흥리, 심동리

그 후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관할지역으로 되어 있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년 9월 9일에 건국하고, 지방행정개혁을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함흥시는 조선전쟁 때 공공시설과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데, 천리마운동 때 2차선도로를 구축하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새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천리마운동 때 도시개발을 할 때에는 소련과 독일민주공화국의 지원이 있었다. 새 시가지는 대부분 중앙유럽의 공산주의 나라의 도시들처럼 바둑판형의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1960년에 함흥시를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970년에 다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로 돌아왔다. 이때 새로 생긴 군이 덕산군(옛 덕산구역), 퇴조군(옛 퇴조구역, 현 락원군) 등이다. 덕산군은 다시 1974년 함흥시 회상구역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이 도시는 199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 만든 예술영화인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주요 관광지는 마전유원지와 함흥대극장, 그리고 경기장와 함흥본궁이 있으며 그중에서, 대극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져 대극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크고, 웅건하게 솟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10년에 흥남비날론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흥시민들이 동원하여 진행된 군중대회에 참석하였다.

2001년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함흥시에서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과 사포구역의 일부를 떼어 흥남시로 명명하고 주요산업시설을 흥남시에 옮겼으며, 함흥시의 각 행정구역들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2005년에 흥남시는 다시 함흥시로 돌아왔다.

구 행정구역[편집]

산업[편집]

함흥평야에서는 이 많이 생산하며, 그밖에 사과보리, , 을 재배한다.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가공업은 펄프공장, 노트공장, 종이공장이 발전했다. 함흥시 수산사업소에서는 게와 물고기, 오징어들을 잡고 있다. 주요 화학공장은 소위 주체섬유를 개발했다고 알려진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있다.

교통[편집]

함남선, 신흥선, 장진선 등은 목재수송에 이용된다. 그 외에도 도로가 위치해 있다.

교육[편집]

자매도시[편집]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
  2. 조선총독부령 제84호 (1941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