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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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구역(興南區域), 옛 흥남시(興南市)는 함경남도 서쪽에 위치하며 동해와 마주하고 있어 어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1988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8만 명이 거주하였다.

역사[편집]

흥남은 '함흥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1920년대 초까지 지명이 없었으나, 1927년 일본의 재벌 노구치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비료공장과 장전강·부전강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중화학공업 도시가 되었다.

1944년 함주군 흥남읍과 운남면이 흥남부로 승격되었으며, 당시 인구는 20만여 명이었다. 노구치는 600만 평의 부지에 질소 비료, 경화유, 화약, 카바이트, 가성 소다, 소다회 공장과 철강, 아연 공업단지를 건설하였다. 이곳은 중일전쟁이후 일본의 군수산업기지로 변화하여, 화약을 비롯하여 각종 첨단 무기, 비행기 외강판, 항공연료 등을 생산하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에 극비리에 원폭물질 개발연구가 이루어졌다는 비사가 알려지기도 하였다.[1]

1950년 10월 26일, 한국 전쟁 당시에는 압록강까지 올라오던 대한민국 육군국제 연합군이 중화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혜산진에서 철수한 미국 10 군단과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장진호 전투를 하고 있던 미국 1 해병 사단장진호에서 철수하여 이 곳의 항구에서 집결한 다음, 선박을 통해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른바 흥남 철수 작전이다

1960년 11월에 "함흥직할시"로 승격된 함흥시에 흡수되었다. 그 후 흥남시는 흥남구역이 되었으나, 2001년에 북한에서 산업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흥남구역을 흥남시로 바꾸고, 함흥시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하지만, 다시 2005년 함흥시에 다시 흡수되어 흥남구역로 환원되었다.[2][3]

산업[편집]

흥남구역은 나일론을 이용한 경공업사업을 비롯하여, 기계수리공장과 기초식품공장이 건설되어있다. 이곳의 바닷가는 소나무 숲과 함께 매우 맑고 아름다워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흥남구역엔 마전유원지가 있다.

  • 흥남비날론련합기업소
  • 흥남기계수리련합기업소
  • 흥남수산물가공련합기업소

행정구역[편집]

흥남구역은 풍흥동, 응봉동, 호남동을 비롯하여 18개 동, 1개 리가 있다.

  • 천기동
  • 호남동
  • 능동리

이북5도위원회의 흥남시[편집]

흥남시(興南市)의 면적은 130㎢로, 시청은 천기동에 위치한다. 75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북5도청은 명예동장 8명을 임명하고 있다. 공업도시이며, 궁서동에 함흥본궁이, 마전동에는 마전 해수욕장이 있다.

주석[편집]

  1. 노형석, 한국 근대사의 풍경 170쪽, 생각의 나무, 2004년
  2. 김광인 (2001.08.16). “北 함흥 흥남구역, 흥남시로 승격”. NK조선. 2013년 10월 31일에 확인함. 
  3. “北, 함남 흥남시 '흥남구역' 환원”. NK조선. 2006년 4월 5일. 2013년 10월 3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