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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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月尾島)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해 있는 섬이었다. 현재는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졌다.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편집]

대한제국 때에는 일본 해군 기지와 러시아 석탄창고 등이 잇따라 이곳에 들어서면서 열강들이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였다. 1886년 병인양요 때 인천 앞바다에 정박했던 프랑스 함대의 대장 이름을 따서 외국 지도에 로즈 섬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1900년 송정섭이 월미도의 개간권을 농상공부의 허가를 받아 일본인 요시가와에게 개간권을 팔아 넘겼으며, 요시가와는 월미도 주민을 강제로 설거 시키자 조선 정부는 송정섭을 체포하였고 매각 대금을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고 개간권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요시가와는 응하지 않고 1904년 8월에 일본군이 작전상 필요하다며 포대를 쌓았으며, 1905년 5월 민가 80여 호를 철거하고 섬 전체를 점거하였다. [1] 1923년 1킬로미터의 제방을 쌓으면서 육지와 연결되고 이 때부터 유원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주로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바닷물을 데워서 목욕을 즐기는 조탕, 별장, 요정, 해수풀장 등이 들어섰다. [2] 1987년 7월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래 문화예술 공연과 월미축제 등 각종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인천상륙작전[편집]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1950년 9월10일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95개의 네이팜탄을 월미도 동쪽 지역에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하는 방식으로 9월13일 아침까지 계속됐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가 10명이고, 실종자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가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추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이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가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집중 폭격한 것은 국제법 등에 위반된 작전이라며, 한국과 미국 정부가 협의해 희생자와 쫓겨난 피해 주민들에 합당한 피해 보상과 귀향 대책을 취하도록 권고했다.(기사 발췌)


[3]

A small city across a gray waterway under lowering gray clouds. A road leads to the city across a causeway. Mountains with snow and a low treeline form the backdrop. A few boats are in the water.
월미도 월미공원 전통정원지구

주석[편집]

  1. 한국통사, 박은식
  2. 유연태 [2005년 5월 20일]. 《서울근교여행》, 초판, 서울: 넥서스BOOKS, 88쪽
  3. 한겨레 신문 2011.3.1 인천상륙작전 피해 월미도 주민들 손해배상청구소송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