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 마을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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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 마을 사건1968년 2월 25일 대한민국 해병대 소속의 청룡 부대베트남 꽝남 성 디엔반 현에 위치한 하미 마을에 비무장 민간인 135명을 무참하게 토벌하고 매장한 사건이다.[1]

2000년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하미 마을에 3만 달러를 기부하여 하미 마을에 위령비를 세웠다.[2][3] 그러나, 위령비 건립 과정에서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학살의 경과를 적은 비문을 지워줄 것을 요청하였고, 마을 주민들은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비문을 지울 수 없다며 반대하였다. 결국 위령비는 비문을 연꽃 문양이 그려진 대리석을 덧씌운 상태로 제막되었다.[4]

배경[편집]

1968년 2월 당시 청룡부대는 캄란 만에 주둔하고 있었다. 청룡 부대의 작전구역인 베트남 남중부 지방은 당시 남북 베트남의 분계선이었던 북위 17도선에 인접하여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었던 지역이다. 청룡 부대는 이 지역에서 북베트남의 베트남 인민군, 남베트남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등과 격전을 벌였다.[5]

한편, 청룡 부대는 작전 지역에서 많은 민간인을 살해하였는데, 1968년 퐁니·퐁넛 양민 학살 사건과 같은 사건은 주월 미군 사령관에게도 보고되어 한미 양국 간의 외교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6] 베트남정치국 전쟁범죄조사보고서는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는 2천 여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고,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구자들은 4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7]

하미 마을 학살이 있던 1968년 2월 25일 당시 청룡부대는 다낭 지역을 중심으로 호이안 전역(戰域)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8] 베트남 전쟁 당시 이 시기는 구정 대공세가 격렬하던 때로 후에를 비롯한 중부의 도시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이 점령하였고, 남베트남군과 미군, 한국군은 이 지역을 재점령하기 위해 격렬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9]

하미 마을이 속해 있는 꽝남 성에서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은 다음의 표와 같다.[10]

꽝남 성의 위치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꽝남 성 민간인 사망자 분포
장소 추정 발생 일자 사망자 비고
디엔반 현 투이보 마을 1967년 12월 21일 145
퐁니 마을 1968년 2월 12일 69 중앙정보부 조사
탄퐁 사 1968년 2월 12일 130
하미 마을 1968년 2월 25일 138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위령비 기증
디엔홍 사 1968년 12월 400
주이쑤엔 현 반꾸엇 마을 1968년 1월 19일 48
찌에우쩌우 마을 1968년 1월 30일 42
쑤옌타이 촌 1968년 2월 29일 62
동예・찜선 마을 2년간 300 1968년 6월 8일 36명 학살
끼에우선 마을 1968년 10월 20일 22
5 촌 1968년 말 - 1969년 115
4 촌 1968년 말 - 1969년 133
레선・선빈・투언안 마을 1969년 2월 21일, 4월 6일 108
탕빈 현 1969년 3월 11일 - 5월 23일 411
꾸예선 현 1969년 11월 11일 - 12일 700
탕빈・땀끼・꾸예선 현 1968년 11월 7일 - 17일 476
호아방 현 1965년 6월 130
다이록 현 1969년 5월 9일 - 12일 300
프억선 현 1969년 1월 15일 - 27일 200

학살[편집]

1968년 2월 25일(음력 정월 26일) 청룡 부대의 3개 소대가 하미 마을을 세 방향에서 에워싸며 들어와 마을 사람을 세 곳에 따로 모았다. 장교의 지시에 따라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가 발사되었고 마을 30가구 135명이 2시간 만에 학살당했다. 학살이 끝난 뒤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은 서둘러 무덤을 만들고 희생자들을 묻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불도저를 가져와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한꺼번에 묻어버렸다.[11]

마을 사람들은 한국군이 불러 모을 때 크게 저항하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는데, 생존자인 응웬 티 본은 마을 사람들이 혹시나 죽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군인들이 먹을 것을 나눠주려고 모으는 것이라 여겼다고 증언하였다.[12] 하미 마을 사람들은 학살 이전에 주민들이 부대원들을 기억할 정도로 한국군과 관계가 좋았다.[13] 생존자인 팜티호아 역시 같은 증언을 하였다.[14]

학살이 일어난 것은 아침 9시 경이었어요. 7 - 8시 경에 호이안쪽에서 군대가 들어왔지요. 학살이 있기 며칠 전부터 한국군들은 사람들을 모아서 빵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날 아침도 빵을 주나보다 하고 한 군데로 모였지, 한국군들이 우리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도망을 가지 그렇게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모이지 않았을 거야.
 
— 팜티호아, 하미 마을 학살 생존자

그러나, 한국군은 불러모은 사람들을 총과 수류탄, 유탄발사기 등으로 학살하기 시작하였고 2시간만에 135명의 주민이 죽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고 총을 들만한 나이의 남성은 세 명에 불과하였다.[15] 학살이 끝난 날 밤 살아남은 사람들과 미라이 쪽에서 온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 빨치산들이 무덤을 만들고 시신을 묻었다. 수습이 되지 못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시신들은 한꺼번에 모아 묻었다. 1969년 11월 미군 조사단은 버려진 하미 마을에서 부패한 시신으로 가득찬 구덩이를 발견하였다.[16] 다음날 한국군이 불도저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고, 생존자들은 허겁지겁 도망갔다. 불도저는 무덤과 미쳐 묻지 못한 시신을 깔아뭉개며 밀어버렸다. 부상당한 하미 마을 생존자들은 다낭 항에 정박중인 독일 의료선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17]

생존자들은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이 장악한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난민촌에 들어가는 것이 거부되었다. 그들은 다낭과 같은 대도시에서 걸인이 되거나 복수를 위해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의 전투원이 되기도 하였다.[18]

위령비[편집]

2000년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기부로 하미 마을 학살 위령비가 착공되었다. 그러나, 완공을 앞둔 2001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비문의 내용을 문제삼아 지워줄 것을 요구하였다.[4]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9]

1968년 음력 1월 26일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를 기리다. …… 1968년 이른 봄 음력 1월 26일 청룡병사들이 미친 듯이 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가구 중에 135명이 죽었다. 피가 이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과거의 전장이었던 이곳에 이제 고통은 줄어들고 있고, 한국인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그리하여 용서의 바탕 위에 이 비석을 세웠다.……

하미 마을 사람들은 있었던 일을 과장도 없이 서술한 비문을 지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디엔증 사 인민위원회 주석 응웬반하이는 “고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돈으로 세웠으면 증오비를 세웠지 위령비를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반발하였다.[20] 결국 학살의 참상을 표현한 위령비의 비문은 수정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비문은 연꽃 그림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덧씌워졌다.[4]

위령제[편집]

하미 마을 사람들은 매 해 음력 1월 26일을 전후로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2013년 3월 6일 45주기 위령제가 열렸고, 학살 이후 최초로 한국인이 위령제에 참가하였다.[21]

주석[편집]

  1. 윤충로,한국의 베트남전쟁 기념과 기억의 정치,사회와 역사,제86집,2010,163p
  2. 친구여, 평화의 노래로 만납시다
  3. 월남참전전우복지회 베트남 민간인 집단사살 현장에서 사상 첫 위령비 기공식
  4. 1968년 2월 25일, 학살의 그 날을 기억하라., 평화박물관
  5. 청룡부대의 월남 참전, 해병닷컴
  6. 여기 한 충격적인 보고서가 있다, 오마이뉴스, 2000.11.14
  7.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오마이뉴스, 2009년 4월 22일
  8. 해병대신문 9호 - 청룡부대 파월 특집, 해병대신문, 2012.01.12
  9. Anatomy of a War by Gabriel Kolko ISBN 1-56584-218-9 pp. 308–309.
  10. 이규봉, 《미안해요! 베트남》, 푸른역사, 2012년, ISBN 978-89-94079-58-5, 171쪽
  11.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17쪽
  12.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85쪽
  13. 이규봉, 《미안해요! 베트남》, 푸른역사, 2012년, ISBN 978-89-94079-58-5, 152쪽
  14. 김현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책갈피, 2002년, ISBN 89-7966-023-5, 264쪽
  15.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86쪽
  16.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87쪽
  17.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88쪽
  18. 권헌익 저, 유강은 역, 《학살, 그 이후》, Archive, 2012년, ISBN 978-89-5862-510-0, 89쪽
  19. 김현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책갈피, 2002년, ISBN 89-7966-023-5, 262 - 264쪽
  20. 김현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책갈피, 2002년, ISBN 89-7966-023-5, 262 - 268쪽
  21. (베트남어) LỄ TƯỞNG NIỆM VỤ THẢM SÁT HÀ MY:“Thành thật xin lỗi Việt Nam” →하미 학살 위령제: “정말 미안해요 베트남”, Lao động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