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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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41° 48′ 동경 129° 47′  / 북위 41.800° 동경 129.783° / 41.800; 129.783

청진시
Chongjin.jpg
DPRK2006 hambuk-Chongjin.PNG
현황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면적 1855 km²
인구 667,929[1]
행정구역 7구역 0군
청진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진시
청진시의 위치

청진시(淸津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동해안에 있는 시이자, 도 소재지이다. 함경산맥이 뻗어 있으며, 수성천 유역에는 수성평야가 발달하였다. 1908년 개항된 뒤 청진만을 중심으로 항구도시로 발전하였고, 제철소가 조성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대 중공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평양직할시, 함흥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1977년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나, 1985년 함경북도 소속 일반시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면적은 1,855㎢이고, 인구는 약 67만명이다. 중화인민공화국러시아는 이 도시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지리[편집]

청진시의 위성사진

함경북도 중부에 있는 청진시는 동해에 면해 있으며 경성만의 최북단에 있다. 도시는 청진만을 끼고 발달하였는데, 동쪽은 동해, 서쪽은 부령군무산군, 남쪽은 경성군, 북쪽은 회령시와 맞닿아 있다(광복 이전에는 부령군경성군과 접해 있었다). 최고봉은 고성산이다.

평야로는 수성평야가 있으며, 주요 하천은 수성천이다. 청진시는 면적의 대부분을 산지가 차지하고 있다.

시의 동쪽에는 고말산이 있는데, 시가지는 이 산에서 점차 서쪽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기후[편집]

동해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간 강수량은 623.4mm로, 한반도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방에 속한다.

역사[편집]

청진에 있었던, 일제시대의 함경북도청

고대에는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금나라원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고려말에 경성부(鏡城府)로 편입되었다.

청진시 지역은 원래 부령군의 한적한 어촌이었으나, 러일 전쟁 당시 일본 육군이 인근의 경성군 나남에 주둔하였다. 이후 나남은 관동군조선 주둔군 19사단이 주둔하여, 서울용산과 더불어 조선 내 일본 육군 무력의 핵심 거점이 되었다. 중국 동북부와 한국의 자원을 수송할 해상로를 찾던 일본에 의해 1908년 개항되어 도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일제(日帝)의 정책에 의해 일본과 만주를 잇는 중계점으로서 도시가 급성장하여 1910년 부령군에서 청진부(淸津府)로 승격되고, 1914년 개항장 지역만 청진부로 남고 그 외 지역을 부령군으로 분리하였다. 1928년 만주와 연결되는 함경선 철도가 개통되어 관북 지방을 대표하는 신도시가 되어, 1940년 경성군 나남읍과 용성면(수성), 부령군 청암면 등을 편입하였다. 함경북도청이 나남에 있었기 때문에, 1940년 나남 편입과 함께 함경북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3일소련군8월 폭풍 작전으로 인해 해방되었고, 1960년 10월엔 부령군과 라남시를 흡수하여 함경북도에서 독립해 청진직할시가 되었으나, 1967년 10월에 일반시가 되었다. 1977년무산군경성군을 흡수해 다시 직할시가 되었으나, 1985년부령군, 경성군, 무산군이 함경북도에 편입되어 다시 일반시가 되었다.

행정 구역[편집]

현재 청진시는 7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82동 16리 1로동자구가 속해 있다. 구역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산업[편집]

청진시는 항만 공업 도시로, 김책제철련합기업소를 필두로 철강업과 금속공업이 발달했다. 그 외에 청진제강소, 제2금속건설련합기업소 등 제철, 제강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조선에서는 청진을 일명 "북방의 대야금기지"라고 명명한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는 북한에서 철생산량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라남제약공장, 5월10일기계공장, 부윤99호군수품공장 등의 공업시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업화로 인해 대기오염 및 수질오염은 청진시의 심각한 문제이며, 또한 1990년대 이래의 경제난 때문에 공장의 조업이 중지되는 경우가 많다.

청진시는 바다에 접한 지역이기 때문에 수산업도 발달했다. 농업의 경우, 수성천(輸城川) 유역에서는 쌀도 생산되지만 대부분 채소 등의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근년에는 장마당이라고 하는 일종의 암시장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일종의 시장경제화가 진행 중이다.

교육[편집]

청진의 주요한 교육 시설로는 다음이 있다.

문화[편집]

청진포 뱃노래로 유명하다.[2]

교통[편집]

평라선(舊 함경선)과 함북선이 지나며 청진청년역을 비롯해 수남역, 송평역, 반죽역 등의 역시설이 있다. 시내에는 트롤리버스 및 1999년 개통된 노면전차인 청진전차와 일반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도시 외곽에 있는 어랑군에는 어랑공항이라고도 하는 청진공항이 있는데, 이 공항은 현재 조선인민군의 통제하에 있다. 대체로 군사 목적으로 쓰이나, 주 1회 평양함흥으로 가는 고려항공의 민간항공기도 드나든다.

청진항[편집]

하역능력 800만t, 수심 12m로, 2만t급의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항구로, 서해안의 남포항에 필적하는 항구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의 경제난으로 설비의 3/4가 휴업 상태이다. 경비정 및 공작선이 정박하는 군항이기 때문에, 항만 주위의 경비는 삼엄하다.

출신 유명인[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조 자료[편집]

  •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바람》(한길사, 2004) 27쪽.

주석[편집]

  1.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
  2. 청진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로 보천보전자악단 배우 리경숙이 불렸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