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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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金英柱
출생 1920년 9월 21일(1920-09-21) (94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대동군
거주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력 모스크바 대학교 정치경제학 학사
직업 정치인
현직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정당 조선로동당
종교 무교
부모 아버지 김형직, 어머니 강반석
친척 3남 중 막내

김영주(金英柱, 1920년 9월 21일 ~ )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인이다. 큰형은 김일성이며 작은형은 김철주이다. 2014년 기준으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을 맡고 있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김형직강반석 부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이전에는 관동군의 통역으로서 일하고 있었다. 1937년 6월 4일 일어난 보천보 전투만주국 조선인 치안관계자가 조사를 한 결과, "습격 사건의 주모자 김일성은, 본명은 김성주(金成柱)이며, 관동군의 통역으로서 일하고 있는 김영주의 친형이다."라는 증언을 얻고, 김영주에 협력을 요구하고, 김일성의 조모 리보익과 김영주가, 김일성에게 일본제국 육군에 투항하도록 호소했었다.

광복 이후 모스크바 대학교에 진학한 뒤 1954년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는 조직지도부장에 임명되는 등 줄곧 당에서 경력을 쌓았다. 1966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겸 비서국 비서를 맡았고, 1970년대에는 남북 관계에서 북측을 대표하는 인물로 활동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조절위원회의 북측 대표였고, 7.4 남북공동성명에는 이후락과 함께 서명하고 이를 동시 발표했다. 그러나 1975년부터 1993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에 임명될 때까지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이 숙청되어 자강도로 옮겨가 은둔 생활을 했다는 설이 있다.

1993년 복귀한 뒤로는 그해 말에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되었고, 김일성(1994), 오진우(1995), 이종옥(1999) 등이 사망했을때 국가장의위원회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에 선출되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9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유임되었다. 다만, 2010년 9월에는 당 정치국 위원과 중앙위 위원에서 해임되었다. 2012년 2월에 김정일 훈장을 수여 받았다.[1][2]

가계[편집]

김형직
金亨稷
1894 - 1926
강반석
康盤石
1892 - 1932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성애
金聖愛
1928 - ?
김영주
金英柱
1920 -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경희
金敬姬
1946 -
장성택
張成澤
1946 - 2013
김평일
金平日
1954 -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리설주
李雪主
1989 -
김여정
金汝貞
1987 -
김한솔
金-
1994 -
김주애
金主?
2013 -

주석[편집]

  1. 안윤석, 북, "장성택 등 130여명에 김정일 훈장 수여", 노컷뉴스, 2012년 2월 14일
  2. 북한자료센터 주요인물 김영주 주요경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부주석
1993년 12월 12일 - 1998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