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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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金英柱, 1920년 - )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김일성의 남동생이고 김정일의 숙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김형직과 강반석 부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에 출생했다는 설도 있다.
- 광복 이전은, 일본제국 육군관동군(關東軍)의 통역으로서 일하고 있었다.
- 1937년6월 4일 조선함경남도갑산군이 비적에 습격된 사건후(보천보 전투), 만주국의 조선인 치안관계자가 조사를 한 결과, 「습격 사건의 주모자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은 김성주(金成柱) 이며, 관동군의 통역으로서 일하고 있는 김영주의 친형이다」라는 증언을 얻고, 김영주에 협력을 요구하고, 김일성의 조모의리보익(李寶益)과 김영주가, 김일성에게 일본제국 육군에 투항하도록 호소하고 있다.
- 광복 이후 모스크바종합대학과 모스크바고급당학교에 유학한뒤 1954년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는 조직지도부 부장에 임명되는 등 줄곧 당에서 경력을 쌓았다.
- 1966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겸 비서국 비서를 맡았고, 1970년대에는 남북 관계에서 북측을 대표하는 인물로 활동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조절위원회의 북측 대표였고, 7.4 공동 성명에는 이후락과 함께 서명하고 이를 동시 발표했다.
- 그러나 1975년부터 1993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현직)에 임명될 때까지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이 숙청되어 자강도로 옮겨가 은둔 생활을 했다는 설이 있다.
- 1993년 복귀한 뒤로는 그해 말에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되었고, 김일성(1994), 오진우(1995), 이종옥(1999) 등이 사망했을때 국가장의위원회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에 선출되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부주석 1993년 - 199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