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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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金一, 1910년 ~ 1984년 3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북한의 부주석을 지냈다. 함경북도 출신.

생애[편집]

동만주 일대에서 김일성(金日成)과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1932년에 조선공산당 지하당 활동과 대중단체사업을 하였으며, 1935년 10월에 항일무장부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8.15 광복 후에 귀국하여 1945년 11월에 북조선공산당 평북 당비서, 1946년 4월에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겸 정치위원 등을 지냈다. 1946년 9월 제1사단 문화부사단장이 되었다.[1]

1948년에 최고인민회의 제1기에 대의원에 선출되고 계속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그 후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문화부 사령관, 체신성 정치국장, 민족보위성 부상, 평안남도위원회 위원장, 내무성 정치국장,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평안남도위원회 위원장의 직책에 있으면서 주로 후방의 전시업무를 관장했다.[1]

1953년 6월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중앙당 정치위원회 위원·당 군사위원회 위원 등에 선출되었다.

1954년 3월에 내각 부수상에 임명되었다. 1954년 4월에북한 내각 농업상에 임명되었다.[2] 부수상 겸 농업상의 직책에 있으면서 전후 복구시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에 관한 정책을 진행시키고 당의 노선을 정비하였다.

1959년 1월에 내각 제1부수상이 되었다. 1966년 10월에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가 되었다. 1972년12월에 정무원 총리 겸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있다가 부주석에 올랐다. 그는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79년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직을 맡는 등 대남관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상훈으로는 최고훈장인 김일성 훈장을 받고,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외에 국기훈장 제1급, 자유독립훈장 제1급, 공화국창건 기념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1984년에 사망했다. 묘는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있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김일 - Daum 백과사전
  2. 역사문제연구소, 《1950년대 남북한의 선택과 굴절》(역사비평사, 2009) pp313
전 임
조명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민족보위성 부상
1951년 10월 ~
전 임
박문규
제2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농업상
1954년 4월 - 1957년 9월 20일
전 임
박헌영, 홍명희, 최창익
제3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54년 3월 - 1956년 9월
후 임
김일, 홍명희
전 임
홍명희, 박창옥, 최창익
제4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56년 9월 - 1957년 9월 20일
후 임
김일, 정일룡, 남일, 박의완, 정준택, 최용건, 홍명희
전 임
홍명희, 김일
제5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57년 9월 20일 ~ 1958년 10월
후 임
김일, 남일, 박의완, 정일룡, 정준택, 최용건, 홍명희
전 임
김일, 남일, 박의완, 정일룡, 정준택, 최용건, 홍명희
제6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58년 10월 ~ 1962년 10월 23일
후 임
김광협, 김창만, 정일룡, 남일, 리종옥, 리주연, 정준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부총리
1962년 10월 23일 ~
전 임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무총리
1972년 12월 28일 - 1976년 4월 29일
후 임
박성철
전 임
최용건, 강량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부주석
1976년 4월 29일 - 1981년
후 임
강량욱, 박성철, 김일
전 임
강량욱, 박성철, 김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부주석
1981년 - 1984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