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한민족(韓民族)
People of korea.jpg


을지문덕 · 강감찬 · 이순신
윤두서 · 박지원 · 민영환
김구 · 안창호 · 박정희
이휘소 · 김기덕 · 김연아

인구 8,250만 명 (추산)
거점 대한민국 대한민국: 5,096만5,180 명(2013.1.3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458만9,122 명(2012.7)[2]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276만2,160 명[3]
미국 미국: 152만0,703 명[4]
일본 일본: 89만3,740 명[3]
독립 국가 연합 독립 국가 연합: 53만3,976 명[3]
캐나다 캐나다: 21만6,628 명[3]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10만5,558 명[3]
필리핀 필리핀: 8만6,800 명[3]
베트남 베트남: 5만3,800 명[3]
브라질 브라질: 5만0,523 명[3]
영국 영국: 4만1,995 명[3]
뉴질랜드 뉴질랜드: 3만2,972 명[3]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3만700 명[3]
독일 독일: 2만9,800 명[3]
타이 타이: 2만5,000 명[3]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만1,592 명[3]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1만4,934 명[3]
프랑스 프랑스: 1만3,981 명[3]
싱가포르 싱가포르: 1만2,656 명[3]
멕시코 멕시코: 1만2,070 명[3]
과테말라 과테말라: 9,944 명[3]
인도 인도: 7,367 명[3]
이탈리아 이탈리아: 5,502 명[3]
파라과이 파라과이: 5,431 명[3]
스페인 스페인: 3,606 명[3]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3,480 명[3]
중화민국 중화민국: 3,166 명[3]
몽골 몽골: 2,500 명[5]
언어 한국어
종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가톨릭), 유교, 토착 신앙, 기타 종교
1863년 촬영한 한국인 사진

한민족(韓民族) 또는 조선민족(朝鮮民族)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만주, 연해주 등지에 살면서 공동 문화권을 형성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시아계 민족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일본·구소련에서는 조선민족(朝鮮民族), 고려인(高麗人) 등으로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겨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 시대 이전의 ‘동포’(同胞)라는 개념과 같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를 때에는 대개 한인(韓人)으로 약칭한다.[6] 엄밀하게는 국적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을 주로 의미하는 한국인(韓國人)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관용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 명칭 대한민국에서는 1950년 국무원고시 제7호[7]에 의해 '조선'이란 명칭 사용이 기피되면서 한민족, 한인(韓人) 으로 호칭하고 있다.[8] 특별히 구 소련 거주 한인들, 특히 20세기 초에 연해주에 거주하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고려인'(高麗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드물게 '배달민족'이라는 명칭도 사용된다!{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상고시대의 한국을 지칭하는 이름이라 등재되어 있음!}이전에 이러한 호칭이 사용되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 비판이 많다.[9] 신채호어윤적이 주창한 '배달'이란 호칭의 연원에 대해서 '믿기 어렵다'고 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10]

기원[편집]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반만년 동안 혈연적 동일성을 지니고 이어진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민족이 주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단절된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오래 전부터 고유한 언어적ㆍ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해 왔다. 오늘날 한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11]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예맥(고조선)과 한민족을 분리 시켜 각자 별개의 실체로 간주한다. 고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이미 진국(辰國)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고조선에 적대적이었으며, 한(漢)나라와 교류했던 것으로 나온다. 고조선이 진국과 한나라 사이의 교류를 방해하자 한무제는 BC 108년 고조선을 공격하여 왕검성을 함락시켰고, 이로써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고조선과 진국의 구성원을 같은 민족으로 보기 시작했는지에는 당연히 의문이 남아 있다. 이는 낙랑군 말기에 중화적 의식을 고취시킬 의도로 편찬된 진수의 <삼국지> [위략]의 내용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남천'하여 마한을 건국했다는 '기자 연계설'에 그 뿌리를 둔다. 그러나 <삼국지(三國志)>의 경우 기원후 280년,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 233 ~ 297)’가 저술한 책으로, 준왕이라는 인물이 활동했다는 시점(BC 194년, 즉 위만에게 축출당하는 시점)에서 무려 500년 정도 지난 후에 쓰여진 책이다. 그보다 먼저 고조선과 진국과의 관계를 다룬 사서에서는 그 어디에도 준왕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준왕이 진국으로 남천해서 마한(馬韓)을 건국했다는 말 역시 나오지 않는다. 고조선과 진국과의 관계가 처음 등장하는 사서는 기원전 2세기경, 위만과 거의 동시대 인물인 사마천이 지은 <사기>로서, 이 책에 준왕이라는 인물은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12].

대한민국은 보통 단일 민족(單一民族) 국가라 부른다. 미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과 같이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多民族) 국가와 달리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한민족이 전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일민족 국가이다.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집단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민족 집단도 순수 혈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주변의 이질적 혈통을 흡수하고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민족 집단으로 융화된다. 한민족 주변의 한족(漢人)·몽골인·만주인(滿洲人)·일본인, 기타 남방 계통 등의 여러 유전자가 더해져 오늘날 동일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 의식을 지닌 한민족으로 융화되었다. 곧 한민족 집단이 언제나 지배적 지위에 있으면서 여기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흡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13]

한민족의 뿌리는 언어로 보면 몽골족·만주족·터키족, 즉 ‘우랄 알타이어(語)’ 계통족(系統族)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共同祖上)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생각되며 문헌상으로는 한(韓)이나 예맥(濊貊)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중국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先住民)을 몰아내면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14]

이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빗살무늬 토기 문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공주 석장리(石壯里)로 이외에도 연천 전곡리, 평안도의 검은모루 동굴 등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며 이곳에서 전기·중기·후기의 선주민들이 거쳐 간 흔적이 보인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 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또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라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 3기의 종족이 꼭 같다고 할 수는 없으며 각 시기의 종족은 그때마다 멸망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이어지고, 그 뒤 신석기 문화를 가진 빗살무늬 토기 문화인들이 북쪽에서 이주하여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15]

신석기 문화는 한국의 경우 약 1만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쯤에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빗살무늬 토기 문화이다.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한 예맥은 북방적 요소가 강한 청동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각처에서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10세기에 나타난 청동기 문화도 남부 시베리아 지역과 연관된 북방식 청동기 문화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랴오닝[遼寧] 지방과 한반도에서는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청동기 문화가 나타났는데, 특히 비파형동검은 이 지역에서만 출토된다. 이것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몽고 등 북방 문화권의 다른 지역들과 구별되는 한민족의 독자적인 문화적 틀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랴오닝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했던 세력은 고조선을 세워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였고,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랴오허[遼河] 유역과 한반도의 서북부를 다스리며 세력을 떨쳤다. 중국의 옛 문헌에서는 당시 랴오닝 지방과 한반도에 살던 세력을 숙신(肅愼)ㆍ조선(朝鮮)ㆍ한(韓)ㆍ예(濊)ㆍ맥(貊)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철기시대에 들어서고 연나라 이후 중국 지역의 세력판도가 바뀌지면서 고조선의 유민들이 이주해오거나 전국시대와 진ㆍ한 교체기의 사회적 혼란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오기도 하였다. 공동의 언어와 문화, 민족의식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학계의 해석이 다양한 만큼 한민족의 형성 시기에 관해서도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크게는 근대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전근대형성설과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 과정과 더불어 형성되었다는 근대형성설로 나뉘는데, 전근대형성설은 다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발해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몽고 침략을 겪으면서 높아진 민족의식을 배경으로 조선의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등으로 나뉜다. 또한 한민족의 민족의식의 형성과 언어의 통합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 중국의 홍산문명이 조명되면서 한민족의 연계설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 와 있다. [11][16]

인종[편집]

한민족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1930년 이후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구석기 시대 이후의 한반도만주를 중심으로 한 민족의 이동에 대한 의견에 따라 혼혈론, 주민 교체설, 단혈성론 등의 입장이 맞서고 있다. 연구 방법으로는, 형질인류학적 방법, 문헌적 방법이 있다.[11]

유전자 정보[편집]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를 응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체로 한국인은 일본인을 포함해 북방계 몽골인종집단으로 분류되어 있고, 남태평양 집단의 유전자와도 관련성이 있음이 밝혀져 있다.

그 후 제4빙하기 이후 우랄 산맥 서쪽 바이칼 호 근처에 살던 황인종인 북부 몽골로이드가 기원전 2만 년부터 진출하여 혼혈을 이루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 몽골로이드의 특색은 빙하기 가장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던 까닭에 얼굴에 두터운 지방층이 있고, 검은색의 직모와 광대뼈의 돌출, 흑갈색의 눈동자와 유아기 둔부와 등에 나타나는 녹색의 점(일명 몽고반점)이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 인종을 비롯한 다른 인종에 없는 이 몽고반점은 중앙유럽의 헝가리, 터키와 중앙 아시아, 시베리아, 만주, 몽골, 인도 북부의 부탄과 티베트, 중국 양쯔 강 이북 지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및 아메리카 대륙의 이누이트와 아메리카 토착민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들을 분류하면,[17] 북방계와 남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그 밖의 소수민족으로서 내침족(침략하여 정착한 사람)과 귀화인의 네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유전자를 따져보면, 적어도 26개 혈통으로 이루어져 있다.[11]

언어[편집]

한국어를 쓴다. 이를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말'로 부르며,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조선말'로 부르며,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는 '고려말'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한국어는 삼국의 공통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와, 신라어를 위주로 발전되었다는 견해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어는 자료가 극히 부족하여 발전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한반도에는 고아시아어의 일종인 원시 한국어가 있었다는 의견, 퉁구스어의 일종이라는 의견 등도 제시되어 있다.[11][18]

인구[편집]

2013년 1월 31일 기준으로 외국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5,096만 5,180명[19]이고, 2012년 7월 기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2,458만 9,122명(출처:CIA The World Factbook)으로 추산된다. 해외 거주 한인(韓人)은 중화인민공화국에 276만여 명, 미국에 152만여 명, 일본에 89만여 명, 구 소련 지역(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 53만여 명 등 약 700만명으로, 이들을 포함한 전체 한민족의 수는 약 8,250만 명이다. [11]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 CIA The World Factbook
  3. 코리안넷 재외동포재단. 코리안넷. 2009년 3월 11일에 확인.
  4. American Fact Finder. US Census Bureau. 2009년 3월 11일에 확인.
  5. 외교통상부 영문 홈페이지. 외교통상부. 2009년 3월 28일에 확인.
  6. 중국 거주자는 조선족, 러시아 등 구 소련 지역 거주자는 고려인이라 하여 대한민국 건국 후 이주한 한국인들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7. 국호 및 일부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국무원고시 제7호):“우리나라의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 이나, 사용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되, 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하여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동조선만(東朝鮮灣)', '서조선만(西朝鮮灣)' 등은 각각 '대한해협', '동한만', '서한만' 등으로 고쳐 부른다.(후략)”
  8. '한민족'은 주로 민족의 분류를 나누거나 민족 공동체 전체를 지칭할 때에 사용하며, '한인'은 개개인, 특히 재외한인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이때의 한인은 국적을 기준으로 한 대한민국의 국민을 주로 의미하는 '한국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관용적으로 동일하게 쓰인다. 영어 명칭인 'Korean'의 경우에도 같다. '한족(韓族)'은 '한족(漢族)'과 발음상 구별이 되지 않아 거의 사용하지 아니한다.
  9. 이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417~423쪽 참조
  10. 신채호, “조선사연구초” '전후삼한고'
  11. (2004) 〈한국 민족의 유래〔槪說〕〉,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한민족(韓民族)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만족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민족의 종족적 구성과 문화의 기원이란 문제는 자료 결핍으로 말미암아 문헌 기록만으로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고, 고고학·인류학·언어학·신화학(神話學) 등 인접과학의 종합적 연구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을 비롯한 이러한 과학을 원용(援用)한 한민족의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시작되었고, 게다가 고고학 외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업적이 적은 편이었다. 한편 일반사가(一般史家)들도 각기 전문분야의 연구 과제가 산적(山積)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적었던 듯하다. 그런 중에도 근년(近年)에는 고고학·인류학 등에 대한 연구에 진전을 보고 있으며, 또 이들의 연구 성과와 문헌연구의 성과를 종합하는 경향이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결과가 기대되는 것이다.”
  12. http://www.happycampus.com/doc/12417515
  13. (2004) 〈한국 민족의 유래〔槪說〕〉,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한민족은 보통 단일민족이라 한다. 그러나 학문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단일인종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그 중에는 비록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수개(數個) 이상의 다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하겠다. 즉 한인(韓人)·몽골인·만주인(滿洲人)·왜인(倭人) 기타 남방 폴리네시아 계통 등의 요소가 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여 혼잡다이(混雜多異)한 복합체라고는 할 수 없으며, 한민족으로서의 주(主)된 기본적 요소는 언제나 지배적 지위를 가지면서 여기에 다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
  14. (2004) 〈한국 민족의 유래〔槪說〕〉,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한민족의 근간(根幹)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土耳其族), 즉 ‘우랄 알타이어(語)’ 계통족(系統族)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共同祖上)에서 분파(分派)된 일족(一族)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濊貊)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중국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先住民)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
  15. (2004) 〈한국 민족의 유래〔槪說〕〉,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여기에서의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즐문토기 문화인(櫛文土器文化人)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石壯里) 등지에 불과하나 앞으로 한강과 낙동강 및 수원·안성 등지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라고 최근에 논의되는바 이곳에는 전기·중기·후기의 선주민들이 거쳐간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며, 또한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선탄소측정법에 의하면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 3기의 인종이 같다고 볼 근거도 없으며, 각 시기의 인종은 그때마다 멸망했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지속되고, 그 후 신석기 문화를 가진 즐문토기 문화인들이 북쪽에서 이주하여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16. 「한국역사지리」,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 과정,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저, 푸른길(2011년, 101~156p)
  17. 신복룡 (2001년 12월 20일). 《한국사 새로 보기》, 초판 2쇄, 서울: 도서출판 풀빛. ISBN 89-7474-870-3
  18. 고구려 지명으로 본 한국어의 뿌리 황윤정 기자, 연합뉴스(2011.12.01) 기사 참조
  19.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참고 자료[편집]

  • 《한국사》 1권 - 총설, 국사편찬위원회(2002년)
  • 「고고학으로 본 한민족 계통」, 안승모, 《한국사 시민강좌 - 32집》, 일조각(2003년)
  • 「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동이족의 공로, 김대선 저, 수선재(2011년, 129~189p)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