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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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의 최대 판도 (434-453)

훈 족(-族, Huns)은 서양사에 등장한 최초의 투르크계[1] 민족이다.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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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기록은 남아있지가 않다. 그래서 흉노-훈 동일 민족설에 의거하여 보자면 훈족은 흉노의 분열기에서 시작한다. 북흉노선비와 후한과 남흉노의 연합군에 의해서 기원후 155년에 멸망된 후, 남흉노의 지도층의 일부는 후한에 동화되었고, 북흉노는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흉노-훈 동족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때 서진한 흉노의 지도층이 우랄산맥을 넘어 정착했고, 약 2세기가 지나면서 이미 거주하고 있던 유목민들에게 동화된 후 유럽에 돌풍을 몰고온 민족이 훈족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근거는 없다.

훈족의 대이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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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지도자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서진은 첫 번째로 기록된 기마 민족의 대규모 이동으로, 그 당시 우월한 기동성과 발달한 활을 무기로 삼아 유럽으로 서서히 진격했다. 그들은 진격하면서 알란족, 스키리족, 사르마트족, 게피타이족, 헤룰리 족, 콰디 족, 슬라브족, 동고트족 등을 정복하게 되었는데 자발적으로 합류한 민족들도 있었고 일부는 도망가고, 나머지는 끝까지 싸우다가 정복당한 민족들도 있었다. 예로 알란족은 처음엔 훈족과 맞서 싸웠느나 크게 패한 뒤 훈족에 흡수되어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였고, 슬라브족 또한 용감하게 싸웠으나 패배하고 훈족에게 흡수된다. 훈족은 피지배층들에게 그리 가혹한 지배자들은 아니였다. 그들의 노예들은 로마 제국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노예 또한 자유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배려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해주지 않았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세력을 떨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동쪽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아틸라의 사후[편집]

453년 아틸라가 죽은 후 그의 맏아들인 엘라크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처음엔 그의 아버지 아틸라와 같은 단 하나의 권력을 쥐고 있는 왕으로 즉위 했지만, 그들의 두 동생인 뎅기지크에르나크는 아틸라 치세 이전에 블레다와 아틸라가 권력을 나누어 가졌던것 처럼 권력을 여러명이서 나눠 가지길 원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두 동생들은 일부 권한을 받게 되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불안하던 정치 체체의 혼란을 야기했고 결국엔 당파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싸움에서 엘라크가 승리 했고 두 동생들은 훈 제국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 사태를 수습 한 뒤에도 훈족의 정치 체체는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결국엔 게피타이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훈족은 게피타이 족과 여러 게르만 민족의 연합과 싸웠으나 패배하여 훈족 제국은 내분으로 정복당한다.

추방 당했던 두 왕자 뎅기지크와 에르나크는 각자 그들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도나우 강 하류로 이동했다. 그중 뎅키지크는 아틸라가 옛날에 요구하던 것 처럼 동로마의 황제 레오 1세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며 거절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동로마가 훈족을 보는 시각은 아틸라 치세 때와는 달라진 후였다. 오히려 동로마는 공물은 커녕 훈족이 동로마에게 충성하라며 요구했고, 뎅기지크는 동로마와 전쟁상태에 돌입한다. 하지만 뎅기지크의 훈족은 전쟁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뎅기지크는 전투에서 사망한다.

한편, 그의 동생 에르나크는 그의 형과는 달리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에게 땅을 요청하며 제국의 속주가 되겠다고 청했다. 레오는 그들에게 청을 받아들여 땅을 떼어주었고 에르나크의 훈족은 도브루자 지역에 정착하여 동로마의 일부분이 된다. 그 후로 동로마 군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동로마에게 충성한다. 그 후로 불가르족이 침입 때 불가르족과 혼혈화 되었다.

일견에는 훈족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현재 훈족의 후계 민족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헝가리터키, 몽골[2]은 이들을 자기 민족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헝가리)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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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과 활, 그리고 기동성은 다른 국가들 보다 훨씬 더 우수했는데, 말은 후에 훈족이 훈 제국을 세웠을 때 교역에 주요 수출품목이 된다. 말이 우수할뿐만 아니라 훈족민들의 말을 다루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못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였다. 걷는 것 다음으로 바로 말타는 법을 배우고, 말의 위에서 식사와 수면을 취하고 심지어 용변까지 말위에서 처리했다. 일상생활을 모두 말 위에서 보내다보니 말 위에서의 생활이 당연히 익숙해질 따름이다. 이 관습은 유럽의 국가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는데 사절단이 훈족에게 방문할 때마다 훈족의 수장들은 대부분 말 위에서 그들을 반기고 심지어 국사를 논의할 때 조차도 말 위에서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우수한 기동력은 당연한 것 일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들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 였던 활과 활을 쏘는 솜씨는 그들의 기마술만큼이나 우수했는데 최대 사정거리는 약 300m쯤 사살가능거리는 약 150m쯤이나 되었다.

아틸라의 지휘 아래 훈 제국이 세워진 뒤 그들은 교역을 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주요 수출품은 이었고 주요 수입품은 금과 은, 인도에서의 진주, 비단과 대추야자와 인도산 후추 등의 사치품들이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처리할 때 귀한 사람의 경우 매장을 하고 보통사람의 경우 화장하였다. 귀한 사람의 경우 매장할 때 귀한 사치품들과 금으로 된 화살촉 등의 무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훈족이란 말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반달족과 마찬가지로 욕으로 쓰이기도 했다.

같이 읽기[편집]

연도[편집]

참조[편집]

  1.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2. (....) Hunnu Period The establishment of the Hunnu in Mongolia in the 3rd century BC landmarks the beginning of the statehood on the territory of Mongolia. (...) (http://www.mongoliatourism.gov.mn/history/ History of Mongol, Official Tourism Website of Mongolia Gover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