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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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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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대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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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에서 1세기에 만들어진 불상.

석가모니(釋迦牟尼 · :Śākyamuni 기원전 624?~544?)는 불교의 교주(敎主)이다. 석가(釋迦)는 부족명(部族名)으로서 능하고 어질다는 뜻이고 모니(牟尼)는 수행자나 성자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釋迦族)의 성자(聖者)라는 존칭이다. 기타(其他) 세존 · 석존 ·  · 여래존칭 10개와 아명(兒名)인 싯다르타 고타마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흔히 부른다.

석가모니의 생몰년을 두고는 근거가 없는 탓에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기원전 624년 ~ 기원전 544년으로 공식 채택했다. 기타(其他) 기원전 563년 ~ 기원전 483년설, 기원전 565년 ~ 기원전 485년설, 기원전 463년 ~ 기원전 383년설 등이 있다.

석가모니는 석가족(釋迦族)의 중심지에서 주변 강성한 여러 부족 사이에서 고초를 겪던 약체(弱體) 부족인 카필라 족장(族長)인 슈도다나의 장남으로서 태어났다. 16세 때에 골리 부족(部族)의 딸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하여 아들 라훌라를 얻었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와 윤회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겠다고 가족을 버리고 29세 때 출가하였다. 두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서 그들이 체득한 수행법을 흉내냈으나 그 수행법에 불만족했으므로, 산림으로 들어가 6년간 고행했으나 고행은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하다고 판단하여 부다가야보리수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득도(得道)하였다고 확신하고서 교화(敎化)한다고 인도의 도처(到處)를 편력(遍歷)하다가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죽었다.

호칭[편집]

석가모니에게는 세존 · 석존 ·  · 여래 등 존칭이 10 개나 있는데 이것은 모두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을 향한 호칭(呼稱)이다.[1]

석가족(釋迦族)의 수행자(修行者)라는 뜻에서 "샤카무니"(산스크리트어: शाक्यमुनि)나 가차(假借)인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불리고 줄여서 "샤카"(산스크리트어: शाक्य)나 가차(假借)인 석가(釋迦)라고도 한다.

아명(兒名)은 싯다르타 고타마(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थ गौतम, Siddhārtha Gautama, 팔리어: Siddhattha Gotama, 한자悉達多 喬達摩)로 "고타마"는 성이며 "싯다르타"는 명으로,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싯다르타'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소원성취' 혹은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성(姓)인 "고타마"에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뜻의 "불타(佛陀)"를 더하여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 부르기도 한다.[2]

생애[편집]

역사상 배경[편집]

기원전 6세기경, 현재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기슭의 카필라 성(가비라성)을 중심으로 석가족(釋迦族)의 작은 산촌(山村)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거기 부족장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 부인(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석가족(釋迦族)은 현재 네팔 중부의 남측 변경과 인도 국경 근처에 있던 작은 부족으로, 카필라, 현재 네팔의 타라이 지방의 티라우라 코트에 해당)를 중심으로 하여 공화 정치나 귀족 정치(혹은 과두 정치)의 일종이 행해지고 있었다. 족장 가운데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탄생[편집]

싯다르타의 탄생을 표현한 부조.

부족장인 슈도다나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마야 부인이 임신하고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분만(分娩)하고자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던 중 기원전 624년음력 4월 8일 두 촌락 사이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1]

유년 시절과 혼인[편집]

싯다르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의 손에 자랐다. 아버지 슈도다나는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라고 지었는데 이는 소원 성취라는 뜻이다. 싯다르타는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안락(安樂)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외출하여 밭을 가는 농부를 보고 인간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고 새에게 잡혀 먹히는 벌레를 보고 크게 충격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고 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슬퍼하였다. 싯다르타의 이런 우울(憂鬱)한 심정을 눈치 챈 아버지인 족장(族長)은, 혹시 시가 당시 많은 젊은이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위안(慰安)하려고 골리 부족(部族)의 딸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1]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싯다르타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하여 이름을 '라훌라(Rahula)'라 지었다.[3] 또 아버지인 족장(族長)은 많은 미녀를 이용해 주야로 향연(饗宴)을 베풀었으나 이것은 오히려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動機)가 되었다.

출가[편집]

고뇌하는 싯다르타 왕자를 표현한 반가사유상.

싯다르타는 번뇌(煩惱)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29세에 가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출가하였다. 싯다르타의 출가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하였으나 그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여 끝내 가족과 관계를 단절하고 부족(部族)을 떠나가게 한 것은 무상한 이 세상의 고통(苦痛)을 해결하려는 부단(不斷)한 정열(情熱)이었다. 불전(佛典)에 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는 노(老)·병(病)·사(死)·사문(四門)의 무상고(無常苦)를 향한 그의 강렬한 자각을 뜻한다. 당시 인도에는 수도자는 출가하는 풍습도 있어서 아들 라훌라를 얻어 후계자를 근심하지 않아도 된 싯다르타는 29세에 종 차닉(車匿)을 데리고 출가했다.

수행[편집]

시종과 헤어진 후 싯다르타는 그로부터 7년간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인 바라문 수행자에게 배우면서 해탈하는 구도(求道)하였으며, 단식하고 수행하였다.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땅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계속하였으나 해탈하지 못하고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삭발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구걸(求乞)하면서 남방의 마가다를 향하여 갔다. 마가다의 중심인 라자그리하(Rajagrha)는 당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싯다르타는 브라만교의 행자(行者)에게 요가를 배웠으나 정신상 만족이 없었으므로 계속하여 마지막으로는 네란자나 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하고 불면하는 수행하였다. 한때 족장인 아버지에게서 사람이 와서 귀가를 권하였으나 싯다르타의 마음은 불변했다.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귀향하길 단념하고 현자 5명을 뽑았다.[1] 이 기간이 6년이었다는데 이런 육체상 수행도 무효(無效)를 알고 포기(抛棄)했었다. 이때 지금까지 수행을 같이하던 수도자 다섯 사람이 떠나갔으나[4] 싯다르타는 목욕(沐浴)하고 심신을 맑게 하여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고 먹고서 체력을 회복하여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마을 우루베라의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법좌를 정하고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서(盟誓)하여 조용히 내관(內觀)의 수행을 계속하였다. 이 수행은 일체의 공리(公利)스러운 관념을 버리고 자기 심중에 있는 욕망을 끊어 없애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이다.

깨달음[편집]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대탑.

불전[출처 필요]을 보면, 싯다르타는 35세 12월 8일 이른 새벽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본원(本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었다[출처 필요]. 이것은 어떤 번뇌(煩惱)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정적(絶對靜寂), 즉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體現)이고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사람인 불타(佛陀)가 되었다는 뜻이다.

포교[편집]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싯다르타는, 보리수 밑에서 7일간 12연 법을 달관하고 모든 의혹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싯다르타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후에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우선 지난날에 같이 수행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修行者)들을 교화(敎化)하겠다고 바나레스 교외(郊外)에 있는 사르나트(鹿野苑)을 방문하였다. 그 다섯 사람은 수행을 그만둔 싯다르타를 경멸하였으나 드디어 싯다르타 설법에 감화(感化)하었다. 그 남의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제자가 생겨 전도(傳道)하기 시작했다.

이때 싯다르타는 쾌락과 수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처지에서 설교하였다[출처 필요]. 이와 같이 불타(佛陀)가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법륜(法輪)을 전(轉)한다 말은 법을 설파하고 그 실현에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의거(依據)하여 불타(佛陀)의 제자인 5인의 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 성립조건이 갖춰졌다.

싯다르타가 처음으로 설법한 다섯 비구가 초전법륜(初轉法輪)을 경의(敬意)하는 모습.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싯다르타가 죽을 때까지 45년간에 걸친 부단한 설법의 시작이었다. 불타는 라자그리하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을 중심으로 꽤 광범위(廣範圍)에 걸쳐 설법(說法)해 나아갔다. 불타(佛陀)의 가르침은 심원(深遠)했고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이나 비유(譬喩)나 인연 설화[因緣 說話]를 활용하고 쉬운 말로 매우 친절(親切)하게 설법하였으므로 차차(次次) 제자가 불어나서 경제상(經濟上) 싯다르타를 돕는 독실(篤實)한 귀의자(歸依者)도 생겼다.

그 후 싯다르타는 라자그리하의 비파사라 왕을 교화하고 그에게서 가란타(迦蘭陀)의 동산을 헌납(獻納)받아 거기에 건축한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승가람마(僧伽藍摩)의 효시(嚆矢)이다. 싯다르타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많은 사람을 모으고 후에 사위성(舍衛城)에 기원정사(祇園精舍)라는 대가람(大伽藍)을 세워 사부중(四部衆)을 완성(完成)했다.

입멸[편집]

싯다르타의 죽음을 표현한 부조.

80세가 될 때까지 싯다르타는 설법을 그치지 않았는데 파바 시(市)에서 받은 공양(供養)이 잘못되어 심(甚)한 이질(痢疾)을 앓더니 드디어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병이 위독(危篤)한 형편(形便)을 깨달은 불타(佛陀)는 최후의 목욕(沐浴)을 마치고 사라(沙羅)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에 향하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편 후 쉬지 말고 수행하라고 유언하고서 죽었다[출처 필요]. 이 날은 기원전 544년 2월 15일(남방불교에서는 베사카月의 만월의 밤)이었다[출처 필요]. 고령인 데다가 금식을 자주했던 싯다르타는 장이 매우 약해진 탓에 회복(回復)하지 못하고 죽었다. 싯다르타의 유골(遺骨)과 사리(舍利)는 왕후와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의 나라에 가지고 가서 탑파(塔婆)를 세우고 봉양(奉養)하였다.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지,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을 등불 삼고 법에게 의지할 것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 《대열반경》

생몰년[편집]

불기의 계산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해가 아닌, 빠리닙바나(반열반)에 드신 해부터 계산하는데 이는 큰 스승을 추념(追念)하는 뜻에서 싯다르타와 함께하지 못한 안거(安居)의 해부터 계산한 것이다. 1950년 세계불교도 협의회(WFB)가 창립된 이후, 1956년에 상좌부 불교(스리랑카와 동남아)국가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에서 부처님의 반열반 2500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탄생과 반열반을 (b.c.e.624년-544년=80세)로 보는 것으로, 현재 모든 불교국가 및 U.N(국제연합)에서 통일불기(佛紀)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불기 2544년(=서력 2000년), 불기 2554년(=서력 2010년), 불기 2564년(=서력 2020년)등이다.

사상[편집]

3고와 8고[편집]

  1. 우리가 여기에 태어났다는 것은 바로 아픔의 뿌리이다 (生).
  2. 태어나서 늙게되는 것은 또한 아픔이다 (老).
  3. 살아가면서 병이 들면 아픔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病).
  4. 삶을 언젠가는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것에 아픔을 깨닫는다 (死).
  1. 사랑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깨닫는다 (愛別離).
  2. 미워하고 한숨지으며 아픔을 깨닫는다 (怨憎會).
  3. 무엇을 얻고자 하나 얻지 못하면서 아픔을 깨닫는다 (求不得).
  1. 사람으로 태어나 가진 다섯 가지 조건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깨닫는다 (五取蘊).

연기[편집]

연기설이란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起故彼起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滅故彼滅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雜阿含, 卷13

자비[편집]

우주 만물과 타인들과의 불가피한 인과 관계를 깨닫게 되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나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게 되고, 남의 슬픔도 같이 슬퍼하게 된다.

자비란, 연기를 깨달을 때 나타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다시 말해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진정한 자비란, 인간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즉 이물에까지 미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성제[편집]

사성제란 곧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 핵심의 진리로서 여러 불교교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고(苦)성제 :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 집(集)성제 :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 멸(滅)성제 :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 해탈의 경지를 가리킨다.
  • 도(道)성제 :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 생활'을 설명하여 팔정도의 방법이 있다.

팔정도[편집]

팔정도란 지나친 쾌락과 지나친 계율, 수행을 금지한 중도로서의 여덟 가지 바른 수행법이다.

  1. 정견: 불법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바르게 인식
  2. 정사유: 올바르게 사유
  3. 정어: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라 말함
  4. 정업: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
  5. 정명: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의식주를 바르게 하는 것
  6. 정정진: 바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는 것
  7. 정념: 실체와 사고· 감정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
  8. 정정: 바른 선정으로 심신을 조용히 갖고 무상무아(無常無我)를 깨달음

삼법인[편집]

삼법인은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을 말하고 있다.

  1.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 / 변화만이 유일하다.
  2. 제법무아(諸法無我): 영원한 자아의 본체란 있을 수 없다. / 힌두 전통의 Atman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일체개고(一切皆苦):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 집착하면 모든 것이 다 고통이다. / 영원한 만족은 없으며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삼법인[편집]

삼법인은 중도와 함께 불교의 핵심사상으로 제법무아(諸法無我),제행무상(諸行無常),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1. 제법무아(諸法無我): 우주내에는(제법)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무아), 유위세계 안에는 참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2.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내에는(제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무상), 유위세계 모든 것은 변하니 무상하다.
  3. 열반적정(涅槃寂靜): 애욕의 불길을 완전히 끄면(열반) 영원히 고요한(변함없는) 진리의 자리가 드러난다(적정).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깨달고 상대적인 유위세계를 초월하면 무위세계인 열반에 이르러 적멸의 고요함을 누린다.

삼법인과 중도를 제대로 설하지 않는 곳은 불교라 할 수 없다.

제자[편집]

석굴암 본존불과 십대제자상 (모조).

불타의 제자들 중에는 개별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지혜가 제일이었던 사리불(舍利佛, Sariputra), 신통력(神通力)의 목건련(Maudgalyayana), 무집착(無執着)에 투철한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 천안력(天眼力)을 가졌었다고 하는 아나률(阿那律, Aniruddha),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잘 깨우쳤다는 수보리(須菩提:Subbuti), 설법에 능한 부루나(富樓那,Purnamaitrayaniputra), 토론을 잘하는 가전연(Katyayana), 지율(持律)의 우바리(優婆離,Upali), 다문(多聞) 제일의 아난다(阿難, Ananda), 행지(行持)가 면밀한 라후라(羅候羅, Rahula)는 특히 10대 제자로 손꼽혀 전해지고 있다.

다른 이름[편집]

석가모니는 불교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따라서 다음의 이름으로 대칭되기도 한다. (로마자 표기는 산스크리트어 표기)

  • 여래(如來, Tathāgata): 참 됨을 몸소 갖추고 있는 분.
  • 아라한(阿羅漢, Arhat): 세상에서 공량과 우러름을 사고 있는 분.
  • 정각자(正覺者, Sambuddha): 올바로 깨달음을 얻은 분. 길게는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 Anuttara Samyaksambuddha) 혹은 정등각자(Samyaksambuddha)로 일컬어짐.
  •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 Sampanna): 하는 일에 허물이 없는 분.
  • 선서(善逝, Sugata): 뛰어나게 참됨에 다다른 분.
  • 세간해(世間解, Locavit):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분.
  • 무상사(無上士, Anuttara puruşa):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
  •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şadamya sārathin): 사람을 다루고 바르게 이끌어 가는 분.
  • 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şayānām): 신들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분.
  • 세존(世尊, Bhagavat): 세상에서 가장 높이 받들어지는 분.

팔만대장경의 기록에 보면, 제자들은 석가모니를 "세존이시여", "고담(고타마의 한역)이시여", "여래께서" 등으로 부르고 있다.

대중 문화[편집]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2. 편집자 주: 이런 호칭법은 예수를 부를 때 "메시아"라는 뜻인 기독(基督)를 더하여 부르는 "예수 기독"과 같으며, 공구(孔丘)나 맹가(孟軻)를 원명(原名)으로 부르지 않고 "선생"을 뜻하는 "자(子)"를 붙이는 실정과 같다.
  3. 도올 김용옥,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권, 통나무
  4. 여인이 바친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형편(形便)을 보고 그의 수행원은 그가 타락했다고 판단하고 그를 떠났다고도 한다.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참고 문헌[편집]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