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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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בִּנְיָמִין נְתַנְיָהוּ‎
Benjamin Netanyahu portrait.jpg
이스라엘 이스라엘제9대 총리
임기 1996년 6월 18일~1999년 7월 6일
전임: 시몬 페레스(제8대)
후임: 에후드 바라크(제10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제9 [1]대 총리
임기 2009년 3월 31일~
전임: 에후드 올메르트(제12대)

출생일 1949년 10월 21일(1949-10-21) (64세)
출생지 이스라엘 이스라엘 텔아비브
정당 리쿠드당
종교 유대교
배우자 사라 네타냐후
서명 Benjamin Netanyahu signature.svg

베냐민 "비비" 네타냐후(히브리어: בִּנְיָמִין "ביבי" נְתַנְיָהוּ‎, 1949년 10월 21일 ~ )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다. 리쿠드당 소속으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제9대 총리를 지냈으며 2009년에 다시 총리에 임명되어 현직 총리로 재직중이다.

초기 생애[편집]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인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대학 교수인 부친을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6년간 군복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근무하였다.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1984년 ~ 1988년UN 대사를 지냈다. 198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츠하크 샤미르 정권에서 각료로 재직하였다.

정치 생활[편집]

야세르 아라파트와 함께 (1996)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2009)

1993년 리쿠드당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1996년 총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총선에서는 동시에 총리를 별도로 직선으로 뽑도록 되어 있었다. 총선 직전 팔레스타인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실시할 것을 내비치며,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당시 총리를 공격하였고, 결국 그는 페레스를 1% 포인트 차로 제치고 총리로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였고, 또한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다. 총리로 재직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야세르 아라파트와 대립하기도 했으나, 미국과 요르단의 중재로 와이리버 협정을 체결하여 영토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 체결은 그를 지지하던 우파의 신임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개인적인 문제와 부패 스캔들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1999년 총리 선거에서 노동당에후드 바라크에게 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그는 리쿠드당의 당수직도 내놓고 잠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 후 아리엘 샤론 정권의 각료로 참여하게 되어, 2002년 ~ 2003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였고, 2003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아리엘 샤론이 맡고 있던 리쿠드 당 당수직도 다시 노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8월 9일 샤론 총리의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에 반대하며 재무장관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샤론 총리가 리쿠드 당을 탈당하고 카디마 당을 창당하자 그 해 12월 리쿠드 당 당수직 선거에서 다시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2006년 총선에 출마하였다. 총선 결과 리쿠드 당은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카디마당에 빼앗겼으며, 총리는 카디마당의 에후드 올메르트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여 자신이 다시 총리가 되면 이란 핵시설에 선제 공격을 하겠다고 발언하는 등[2] 초강경 우파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 후 이스라엘 정국은 경제위기, 집권당인 카디마 당의 부패 스캔들, 가자 지구 문제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비리에 연루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이후 새 정부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2009년 2월,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가자 사태가 쟁점이 된 총선 기간 중에도 강경 우파 행보를 이어갔으며, 이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에 카디마 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작용하여 그와 리쿠드 당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총선 결과 그가 이끄는 리쿠드 당은 카디마 당에 1석 차로 패했으나, 그는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등과 연정을 구성하여 3월 31일 총리 자리에 올랐다.

주석[편집]

  1. 이스라엘에서는 임기를 나눠서 하더라도 한 번의 대수로 처리한다.
  2. "이스라엘·이란 핵시설 문제로 관계 급랭", 《mbn》, 2005년 12월 7일 작성. 2008년 5월 25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