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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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도들을 학살하는 로마 가톨릭 신도들 (프랑수아 뒤부아 그림)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 학살(프랑스어: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은 1572년 8월 24일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신도에 의한 개신교신도 학살을 가리킨다. 당시 대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딸이자 국왕 샤를 9세의 동생인 마르그리트개신교 신자인 나바르의 앙리[1]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개신교 지도자 콜리니를 포함한 약 3만에서 7만여 명의 개신교도가 로마 가톨릭 교도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 소식은 곧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신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당시 황제 막시밀리안 2세까지도 이 소식을 듣고 공포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상복을 입고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한다. 제네바에서는 이 비통한 소식을 듣고 금식을 선포하였다.

의미[편집]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 학살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간의 대립과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한 예수회가 매디치가의 카트린과 귀제(Guise)가를 부추겨 일으킨 만행이었다.[2]

교황의 축하[편집]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학살의 날을 축하하여 ‘하나님께 찬양’이란 뜻의 ‘떼 데움’(Te Deum)이라는 성가를 부르도록 명하였고 특별 감사의 미사를 집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날을 기념하여 기념 메달을 주조하였다. 또 로마에서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3일간 불을 끄지 않았다고 한다. [3]

문화적인 배경[편집]

주석[편집]

  1. 후에 앙리 4세가 된다.
  2. 예수회의 비밀역사
  3. 이상규<<교회개혁사>>

참고 자료[편집]

  • Denis Crouzet : Les Guerriers de Dieu. La violence au temps des troubles de religion vers 1525-vers 1610, Champvallon, 1990 (ISBN 2-87673-094-4), La Nuit de la Saint-Barthélemy. Un rêve perdu de la Renaissance, Fayard, coll. « Chroniques », 1994 (ISBN 2-213-59216-0) ;
  • Jean-Louis Bourgeon : L'assassinat de Coligny, Genève, Droz, 1992. Charles IX devant la Saint-Barthélemy, Droz, coll. « Travaux d'histoire éthico-politique », 1995 (ISBN 2-600-00090-9) ;
  • Janine Garrisson, 1572 : la Saint-Barthélemy, Complexe, 2000 (ISBN 2-87027-721-0).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