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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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의 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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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빌헬름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1893년 1월 12일 ~ 1946년 10월 15일)은 나치당의 초기 멤버이자, 초기 SA지휘관을 지냈고, 게슈타포를 창설했다. 1935년 재군비선언 이후에는 공군 원수로 공군을 창설하고 육성했다. 그 자신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기 에이스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형 집행 직전에 자기 감방에서 자살했다.
[편집] 주요 경력
| 부서 | 직책 | 기간 | 설명 |
| 육군 항공대 리히트호펜대대 |
대대장(최종) | 1914년 ~ 1918년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명한 전투기 에이스인 붉은남작 리히트호펜이 지휘하는 비행대에서 근무. 종전 당시에는 괴링이 리히트호펜 대대의 지휘관이었다. |
| 제국의회 | 의장 | 1932년 ~ 1933년 |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및 히틀러의 독재 체제를 확립한 전권위임법이 모두 괴링의 작품이다. |
| 프로이센 주 내무부 | 내무장관 | 이때 유명한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프로이센 경찰을 중앙 내무부 및 프로이센 주 정부로부터 분리시켜버렸다. | |
| 공군 | 총사령관 | 1935년 ~ 1945년 | 공군 창설 및 종전때까지 대원수로 총사령관을 지냄 |
| 항공부 | 장관 | 1933년 ~ 1945년 | 항공부 장관으로 근무하면서 공군창설 준비. 재군비 선언 후 바로 공군이 창설됨 |
| 산림부 | 장관 | 1934년 ~ 1945년 | 장관 재직 시절 제정한 수렵법이 현재도 적용 중이라고 함. |
| 4개년 경제 계획부 | 장관 | 1936년 ~ 1945년 | 실질적인 전쟁 준비는 이때 시작되었다. 무리한 군수산업 확대 정책으로 인해 하일마르 샤하트 국립은행 총재와 갈등을 빚었고, 샤하트는 결국 괴링과 빚은 갈등으로 국립은행총재직에서 사임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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