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카이텔
빌헬름 보데빈 구스타프 카이텔(Wilhelm Bodewin Gustav Keitel, 1882년 9월 22일 ~ 1946년 10월 16일)은 독일의 군인이다.
1901년에 장교로 입대해 군 생활을 시작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벨기에 전선에서 부상당한 뒤에는 주로 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종전 후에는 국방부 등에서 참모 장교로 활동했다.
1933년 나치당 집권 후 친나치 계열 장교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2년 뒤인 1935년에는 베르너 폰 프리치의 추천으로 소장이 되었다. 다시 2년 뒤인 1937년에는 프리치와 독일군 총사령관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가 나치 고위층에 의해 조작/과장된 스캔들로 물러난 뒤, 히틀러에 의해 대장으로 진급됨과 동시에 국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차대전 초반에는 계속되는 승전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혔지만, 히틀러가 추진한 여러 작전에 대해 불안감 혹은 반대 의사를 보여 질책을 받기도 했다. 1940년 프랑스 점령의 공로로 원수로 승진함과 동시에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독소전쟁의 작전 계획과 실행을 맡았으나, 계속되는 고위 장군들의 반대 의견과 항명 등에 분개한 히틀러가 직접 군 통수권을 쥐면서 카이텔은 히틀러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거의 내놓지 않게 되었다. 동료 장군들은 카이텔을 '라카이텔(Lakeitel, 아첨꾼)' 이라는 경멸섞인 별명으로 불렀다.
독소전쟁 기간 중 카이텔은 하인리히 힘러 휘하의 무장친위대가 점령지에서 벌인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방임했고, 히틀러가 내린 정치위원 등 비정규 전투원에 대한 학살 명령서에도 서명하는 등 정규전의 원칙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행동은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1944년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 직후에는 암살기도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와 즉결 처분, 군직 박탈 명령을 내려 히틀러의 신임을 얻었고, 히틀러의 명령대로 전군에 나치식 경례를 도입하는 등 군의 나치 종속화에 앞장섰다.
베를린 공방전 때는 나치 지도부의 베를린 탈출을 계속 건의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거부하고 카이텔에게 베를린 밖으로 나가 베를린 공방전을 위한 베를린 밖의 부대들을 지휘할 것을 명령하였다. 카이텔은 그 직후 베를린을 떠나 플렌스부르크에 칼 되니츠가 세운 임시 정부로 옮겨갔고, 히틀러가 4월 30일 자살하고 베를린에 소련군에게 넘어가자 1945년 5월 8일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 연합군 최고위 장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항복 직후 연합군에 의해 전쟁범죄자로 체포되었으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모든 기소 항목에 대한 유죄가 인정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 카이텔은 군인의 전통적 처형법인 총살형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각하하고 다른 사형 언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수형에 처했다.[1]
[편집] 주석
- ↑ (카이텔은 형 집행 직전, 나는 하느님의 축복이 모든 독일인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200만이 넘는 독일군인들이 아버지조국을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이제 나도 아들들(죽은 독일군인들)을 따라간다- 모든것은 독일을 위해! (I call on God Almighty to have mercy on the German people. More than two million German soldiers went to their death for the fatherland before me. I follow now my sons — all for Germany!)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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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의 원수와 제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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