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로젠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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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로젠베르크
1942년에 세워진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점령 동부 영토 장관의 사무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1893년 1월 12일 ~ 1946년 10월 16일)는 나치당의 정치가이자 인종 이론가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에서 발트 독일인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리가모스크바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뒤 독일로 이주해 훗날 나치당 기관지가 된 푈키셔 베오바흐터에서 근무했고, 툴레 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등 인종 주의자들의 저서를 연구하면서 반유대주의반공주의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시작했다. 1923년 뮌헨 폭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수감된 히틀러를 대신해 잠시 나치당을 이끌었고, 푈키셔 베오바흐터의 편집장도 맡았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반유대주의 사상의 체계화와 보급을 위해 '유대인 문제 연구소' 를 설립했고, 자신의 인종 이론을 서술한 '20세기의 신화' 라는 책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사석에서 그 책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야한 잡문 정도로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나치 집권 후 로젠베르크는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선전성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와 세력 다툼을 벌였고, 인종 문제 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까지 간섭하면서 정면 대결로 번졌다. 그러나 결국 히틀러가 더 높이 평가한 괴벨스가 사실상 로젠베르크의 작업을 점유하게 되었다.

2차대전 중에는 점령지의 미술품 등을 독일로 빼돌리는 작전을 주도했고, 독소전쟁 시기에는 동부 점령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로젠베르크는 반제 회의에서 결정된 유대인 문제의 '최종적 해결(홀로코스트)' 을 맡게 되었으나, 이미 아인자츠그루펜을 학살에 동원하고 있던 하인리히 힘러 휘하의 무장친위대와 세력 다툼 끝에 밀려났다.

종전 직전 연합군에 의해 전쟁범죄자로 체포되었고,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되어 기소된 모든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유해는 다른 사형수들과 마찬가지로 다하우 강제 수용소의 소각로에서 화장되어 이자르 강의 한 곳에 익명으로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