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와 슈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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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와 슈메이

오카와 슈메이(일본어: 大川周明, 1886년 12월 6일 ~ 1957년 12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이다.

초기 이력[편집]

오카와는 야마가타 현 사케다 시 출신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한학자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한문에 익숙하게 되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해서 인도철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인도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이에 관하여 《인도의 국민운동의 현황과 유래》 라는 저서를 집필하여 일본인에게 인도의 독립운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아시아주의의 입장에서 아시아의 각국의 독립운동과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을 소개하는 소개하는 《부흥아시아의 제문제》 (1922년)를 집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정신의 부흥을 주창하면서 사토 노부히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우에스기 겐신, 요코이 쇼난 등의 평전을 모은 《일본정신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일본사를 개관하는 《일본 2천6백년사》도 집필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우 사상가[편집]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에 걸쳐 우익이론가인 기타 잇키, 미쓰카와 가메다로 등과 교우하며, 국가주의 극우단체인 유존샤 (猶存社), 고지샤(行地社), 진무카이(神武会) 등을 결성하였다. 이후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체제 전복을 통해 초국가주의적인 정권을 수립하려던 3월 사건, 10월 사건에 관여하여, 5년 금고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하였다. 복역중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삼층화론》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이 수립되자 복역중이었으면서도, 이를 "만주인민을 정치적 횡포에서 구출하는 것이다"며 환영하였다. 또한 만주국과 일본은 군사, 경제 동맹을 수립하고 여기에 중국을 참여시켜 동양평화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범 재판[편집]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다.재판 도중 도조 히데키의 뒤통수를 때리고 독일어나 영어로 횡설수설을 하는 등의 기행을 해서 정신이상으로 사형을 면하고 불기소 입건되었다. 석방후 농촌부흥운동을 하기도 하고, 코란을 번역하는 등 이슬람 연구자로도 공헌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