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 미시마 유키오 | |
|---|---|
| 본명 | 히라오카 기미타케(작가, 극작가) |
| 출생 | 1925년 1월 14일 일본 도쿄 |
| 사망 | 1970년 11월 25일 (45세) |
| 국적 | |
| 배우자 | 히라오카 요코 |
| 등단 | 《만개한 숲》(1941年) |
| 상훈 | 1954년 신조사 문학상, 1955년 기시다 연극상 |
미시마 유키오(일본어:
목차 |
초기 [편집]
미시마는 1925년 도쿄에서 농상공부 관료인 히라오카 아즈사와 시즈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히라오카 아즈사는 농림성과 상무성에서 근무하다가 영림서 사무관, 농림성 수산국장을 지낸 관료였다. 미숙아로 태어나 '자가 중독' 증세가 있었던 미시마는 생후 곧바로 할머니(나쓰)의 방에 함께 기거하며 조모의 보호 하에 성장하게 된다. 나쓰는 미시마가 소란스럽게 뛰어놀거나 또래 소년들과 어울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시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거나, 혹은 조모가 지정해 준 이웃집 여자아이들과 소꼽놀이를 하며 보냈다. 미시마는 12살이 돼서야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미시마 문학에 모친 고착적인 성향이 짙은 것은 유년 시절의 영향이 크다는 평이다. 미시마는 어머니에게서 문학적 도움과 영향을 받았다. 도쿄제국대 출신이자 고급 관료를 역임한 아버지는 장남인 미시마가 관료가 되기를 열망했기에, 문학에 심취해 있는 아들의 방으로 찾아가 청년기 미시마의 원고를 무자비하게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미시마를 격려했던 것은 어머니 시즈에였다.
학창 시절과 초기 작품 [편집]
그는 오스카 와일드와 릴케, 일본 고전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미시마가 태어날 무렵부터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기에 그는 다른 귀족 자제 학생들만큼 유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족 집안 출신인 할머니의 권유로 귀족 학교인 학습원(가쿠슈인)에 다니게 됐다. 당시 가쿠슈인은 기숙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몸이 약한 미시마는 집에서 통학했다. 미시마는 공부를 잘했고, 학교 문학반 편집부에서 가장 어린 회원이 되었다. 미시마는 12살 때 첫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 잡지 "분게이 분카"에 실을 단편 소설을 쓰게 되어 《꽃이 만발한 숲》이란 작품을 제출했다. 이 소설은 1944년에 단행본 형태로 출간됐다. 미시마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징집 영장을 받았지만, 감기에 걸린 것을 이용해 군의관에게 결핵 증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입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당시에는 전쟁터에 가지않게 된 것에 대해 굉장한 안도감을 느꼈지만, 이후 살아남은 것과 영웅적인 죽음을 맞을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됐다. 미시마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지원을 받으며 비밀리에 매일 밤마다 글을 썼다. 나치를 동경하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작가의 길을 걷는 대신 독일법을 공부하라고 강요했다. 미시마는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지낸 끝에 1947년 도쿄 대학을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대장성 고등 관리직을 얻게 됐다. 그러나 직장 생활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게 되자 결국 대장성을 사퇴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전후 문학 [편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첫 소설인 《도적》을 1946년에 쓰기 시작, 1948년에 발간하여 전후 작가 2세대에 속하게 됐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가면 뒤로 숨어야 하는 한 젊은 잠재적인 동성애자에 관한 자전적 소설인 《가면의 고백》을 뒤따라 발간했다. 이 소설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미시마는 24세에 유명 인사가 됐다. 미시마는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 가부키 극의 희곡을 썼고, 전통적 노 드라마의 현대적 판본을 작성하기도 했다. 또한 《태양의 계절》로 인기를 끌었던 이시하라 신타로와 더불어 당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우국》을 영화화하여 제작.감독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 미시마는 일본인 작가로서 해외에 널리 알려져 국제적 작가로서의명성을 얻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고, 대표작들은 대부분 영어로 번역됐다. 그는 광범위하게 여행을 다니며, 많은 외국 출판인들과 사귀었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지명됐다. 그러나 1968년 자신의 초기 조언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미시마는 가까운 장래에 또다른 일본 작가가 그 상을 수상할 가망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미시마는 1940년대의 일본 문단에 자신을 소개했고, 나이 든 가와바타에게 상이 돌아가기를 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할복 자살 [편집]
1966년 민병대 "방패의 모임(楯の會)'를 결성, 우익 정치 활동에 본격 참여했다. 방패회는 무장 투쟁 훈련을 했다. 이는 이후 일본의 신우익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시마는 1968년에 <문화방위론>을 간행했다. 이는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게 전개되어 왔던 일본 문화의 정신과 '미의 총람자(總攬者)'로서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물질 문명의 더러움으로부터 구해내고, 또한 공산주의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미시마는 <문화방위론> 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실현 가능하다고 서술했다. 죽기 직전 마지막 작품인 "《풍요의 바다 4부작》"을 완성했다. 1969년 우익 운동가 에토 고사부로의 자결에 큰 영향을 받아 1970년 11월 25일 방패의 모임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들어가 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과 면담하던 중에 가지고 간 일본도로 위협해 인질로 잡은 뒤 부하 8명을 부상하게 했다.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을 요구,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치가야 연설'을 한 뒤 약 5분 후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 자살했다. 이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후의 영향 [편집]
미시마의 자살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이 일어났다. 그는 가장 중요한 일본의 전후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으로 인식되었다. 40권의 소설집과, 18권의 희곡집, 20권의 단편집, 그리고 최소한 20권의 수필집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기타 [편집]
- 할아버지는 히라오카 사다타루로 평민 출신이지만 도쿄제국대를 졸업한 엘리트로서, 중의원의 하급 관료로 임용된 뒤 히로시마 현과 오사카 부의 내무부장과 사할린청 장관, 후쿠시마 현 지사를 역임했다. 할머니 나쓰는 도쿠가와 일가와 관계가 깊은 무사 계급 출신이었다. 나쓰는 결혼 후 남편을 업신여기며 귀족적인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완고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었다. 어린 미시마는 조모의 신경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안마를 해주었다. 신경질적인 조모는 가끔씩 광적인 발작을 일으켰는데, 미시마의 출세작 "가면의 고백"에는 유년시절 조모와 함께 지냈던 이야기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죽음에 대한 미시마의 과대한 환상이 조모 나쓰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나쓰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읽을 수 있었으며, 가부키에 대한 귀족적인 취향을 지녔다.
- 미시마의 할복 자살은 다음날 각 일본 유명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으나 그의 주장에 대한 반응은 미약했다. 물론 당시 연설을 했을 때도 그 때 모여있던 사람들의 반응도 없었다. 왜냐하면 음향 시설이 안 좋아서(중계용 헬리콥터가 인근에서 비행중이었다고 함)사람들이 아무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필명 '미시마'는 일본 열도의 전통적인 세 섬의 상징이라는 설도 있고, 시즈오카 현 미시마의 지명에서 따서 붙였다는 설도 있다.
수상 [편집]
- 1954 8월에 『파도소리』를 발표하여 12월에 제1회 '신조사 문학상' 수상.
- 1955 희곡 『흰개미의 집』으로 제2회 '기시다 연극상' 수상.
- 1957 1월, 『금각사』로 제8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
- 1964 10월에 『비단과 명찰』을 발표하여 11월에 '마이니치 예술상' 수상.
- 1965 노벨상 후보에 오름
- 1967 노벨상 후보에 오름
주요 작품 [편집]
- 꽃이 만발한 숲 1941
- 담배 1946
- 도적 1948
- 가면의 고백 1949
- 사랑의 갈증 1950
- 순백의 밤 1950
- 푸른 시절 1950
- 금색(禁色)1951-1953
- 파도 소리 1954
- 금각사 1956
- 비틀거리는 미덕 1957
- 교쿄의 집 1959
- 향연은 끝나고 1960
- 우국 1961
- 아름다운 별 1962
- 오후의 예항 1963
- 비단과 명찰 1964
- 풍요의 바다,4부작(1965-1970)
-
- 1부, 봄의 눈
- 2부, 분마
- 3부, 새벽의 사원
- 4부, 천인오쇠
- 기타
- 장미형(사진집) 1963
전통 일본극을 위한 희곡들 [편집]
영화 [편집]
미시마와 관련된 서적들 [편집]
-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새물결 출판사)
- "금각사", 웅진출판, 허호 역.
-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있어서 양성대립의 구도"(제이 앤 씨, 허호 저, 일본어 저서)
주석 [편집]
같이 보기 [편집]
- 일수회
- 겐요샤(현양사)
- 일본의 우익 단체
- 이시하라 신타로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다니자키 준이치로
- 기타 잇키
- 시바 료타로
- 대정익찬회
- 흑룡회
- 천황제 파시즘
- 황국사관
- 황민화 정책
- 니시무라 슈헤이
- 사쿠라이 마코토
- 미즈시마 사토루
- 일본문화채널 사쿠라
- 후지산케이 그룹
- 방패의 모임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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