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격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진주만 공격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미국 전함 애리조나일본군의 폭탄에 피격 받은 뒤 이틀 동안 불타올랐다. 함선 일부는 나중에 인양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날짜 1941년 12월 7일
장소 하와이 주 진주만
결과 일본의 기습공격의 성공
교전국
미국의 국기
미국
일본 제국의 국기
일본 제국
지휘관
허스밴드 킴멜 (미국 해군)
월터 쇼트 (미국 육군)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해군)
나구모 주이치 (일본 해군)
병력
전함 8척
순양함 6척
구축함 29척
잠수함 9척
전투기 ~390대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9척
전투기 441대
소형 잠수함 5척
피해 상황
총 사망자 군인 3581명 사망, 1247명 부상, 민간인 103명 사상.
전함 3척 침몰, 3척 손상
순양함 3척 침몰
구축함 3척 침몰
전투기 188대 파괴, 155대 손상
전투기 29대 파괴, 전투기 조종사 55명 사망.
소형 잠수함 5척 침몰
잠수함 승무원 9명 사망, 포로 1명

진주만 공격(眞珠灣攻擊)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 비행기들이 미국 하와이 주오아후 섬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해군 육군 기지에 가한 기습 공격이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이 진주만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 되었다. 이 공격으로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403명의 군인 사상자와 68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은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시작으로 폭격을 계획하였고, 나구모 주이치 부사령관이 지휘를 맡았다. 일본군은 이 작전에서 64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태평양 함대항공모함 3척 및 유류 보관소와 병기창은 항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국은 이와 같은 자원을 이용해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원상 복구를 할 수 있었다. 미국 국민들은 진주만 공격을 배신행위로 보고, 일본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일치단결하여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이는 훗날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진주만 공격은 진주만 폭격, 진주만 전투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진주만 공격 또는 단순히 진주만이라고 더 자주 불린다.

목차

[편집] 일본의 준비

일본 제국만주를 점령한 몇 년 뒤인 1937년부터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중일전쟁). 1941년에는 일본과 미국과의 오래된 긴장이 더 고조되었다. 미국영국은 일본에 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철 수출을 금지했으며, 석유 수출 금지, 미국 내 일본 재산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로 중국 내에서의 군사행동을 위축시키고자 했다. 1941년 11월 26일헐 통지문을 마지막으로 외교적 노력은 절정에 다다랐고, 도조 히데키 수상은 자신의 각료들에게 이것이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석유 봉쇄는 유전이 없어서 대부분의 석유를 미국인도에서 수입하던 일본에게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미국영국의 요구에 응하여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
  • 유류 부족이 군사력 약화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 충돌을 확대하여 동남아시아의 자원 획득을 시도하는 것.

일본의 지도자들은 이 세 가지 중에 마지막을 선택하였다.

진주만 공격의 목표는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해군력을 무력화하여 전면전이나 동시 다발적인 준비된 공격을 잠시나마 막는 것이었다.

11월 26일은 일본의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향해 출정한 날이다. 일본은 미국이 제시한 헐 통지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었다. 그 근거로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보고서를 주일 미국 대사관의 조지프 그루(Joseph Grew) 대사가 본국에 송신하였으나, 유럽 내 전쟁 문제에 몰두하던 미국 정부는 그것을 묵살하였다.[1]

[편집] 미국의 피해 현황

[편집] 침몰 함선

함명 종류 번호 기준 배수량 (톤) 비고
오클라호마 전함 BB-37 27,500 1943년 12월 28일 인양.
1946년 12월 해체를 위해 본토로 이동 중 1947년 5월 17일 태풍으로 침몰
애리조나 전함 BB-39 32,100 인양 포기
캘리포니아 전함 BB-44 37,000 1942년 3월 24일 인양. 수리 후 1943년 10월 전열 복귀
웨스트버지니아 전함 BB-48 32,600 1942년 6월 8일 인양. 수리 후 1944년 7월 전열 복귀
오글라라 기뢰 부설함 CM-4 3,746 1942년 7월 3일 인양. 수리 후 1944년 2월 28일 전열 복귀
유타 연습 표적함 AG-16 21,825 인양 포기. 원래 전함이었으나 1931년 연습 표적함으로 개조
네바다 전함 BB-36 27,500 1942년 2월 12일 인양. 수리 후에 1942년 12월 전열 복귀
합계 7척, 1,182,271톤

[편집] 파손 함선

함명 종류 번호 기준 배수량 (톤) 비고
펜실베이니아 전함 BB-38 31,400 진주만에서 수리 후 1942년 8월 전열 복귀
테네시 전함 BB-43 37,000 진주만에서 수리 후 미국 본토에서 현대식으로 개장. 1944년 2월 전열 복귀
메릴랜드 전함 BB-46 32,600 1941년 12월 20일 인양되어 수리 후 전열 복귀
랠리 경순양함 CL-7 7,450 1942년 2월, 미국 본토로 이동하여 수리. 수리 후 전열 복귀
호놀룰루 경순양함 CL-48 10,000 1942년 1월 2일, 진주만에서 수리 후 전열 복귀
헬레나 경순양함 CL-50 10,000 1942년 1월 5일, 진주만에서 수리 후 전열 복귀
캐신 구축함 DD-372 1,500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4년 2월 전열 복귀
구축함 DD-373 1,500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2년 가을 전열 복귀
다운스 구축함 DD-375 1,500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3년 11월부터 전열 복귀
커티스 수상기 모함 AV-4 8,625 1942년 5월 말, 진주만에서 수리 완료 후 전열 복귀
베스탈 수리함 AR-4 8,100 1942년 2월 말, 진주만에서 수리 완료 후 전열 복귀
합계 9척, 149,675톤

[편집] 진주만 기습과 관련된 음모론

태평양 전쟁 발발과 관련하여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소위 “음모론”이 떠돌고 있고, 그 중 하나가 진주만 공격 당시 미 해군이 일부러 격침되어도 상관없는 구식 전함들만을 배치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애리조나호 등 정박 중이던 미군 전함들은 1941년 기준으로 취역한 지 30년 가까이 된 전함이었다. 가장 젊은 편인 애리조나호도 취역 연도가 1915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상황을 모르는 오해에 불과하다. 미군1922년 워싱턴 군축 조약에 따라 1920년대 이후에 신형 전함을 한 척도 건조하지 못했다. 워싱턴 군축 조약 결과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일정한 비율의 전함만을 보유할 수 있었을 뿐더러 신형함 건조는 제한되었다. 이미 건조 중이던 전함 및 대형 중순양함은 1920년대에 항공모함으로 용도 변경되었다(1920년대와 30년대에 각국이 항공모함을 취역시킨 원인은 항공모함의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군축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은 신형함 건조를 1930년대 초부터 진행해 왔으나, 미국은 1937년 이후부터 서둘러 신형함 건조를 시작했고, 1941년 12월까지 신규 건조된 최신형 전함은 단 2척이었다. 위의 피해 현황에도 나오지만, 전쟁 초기 군함이 부족했던 미국은 가능한 한 인양하여 수리한 후에 재투입했다. 문제가 된 구식 전함 가운데 애리조나호와 연습 표적함이던 유타호를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모두 일선에 복귀하였다.

뒤늦게 신형함 건조를 시작한 탓에 가용 가능한 군함은 구식함뿐이었던 미군이었지만, 일본군은 그 함대가 두려워 조기에 기습했던 것이다. 참고로 신형함 건조 시작 이후에도 미군은 전함이 모자라 진주만 공격 당시 파손된 구식 전함을 수리해서 다시 전투에 투입했다.

특히, 만약 미군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게 둘 필요도 없이 차라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중간 해역에서 요격하여 참전 명분은 명분대로 얻고 훨씬 적은 피해로 일본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 것이나, 실제로는 진주만이 궤멸만 간신히 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도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설은 신빙성이 부족하다.

[편집] 관련 영화

[편집] 주석

  1.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2권-미국의 역사》, 이원복 글, 그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