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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전투(1945년)
(태평양 전쟁의 일부) |

마닐라 폭격 후 모습. |
| 날짜 |
1945년 2월 3일 - 3월 3일 |
| 장소 |
필리핀 전역 |
| 결과 |
연합군의 승리 |
| 교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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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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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미국군 35,000명
필리핀군 3,000명 |
일본군 14,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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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6,756명 사상 |
12,000명 사상(그 외 필리핀인 100,000명 정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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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의 마닐라 전투는 미국, 필리핀 연합군과 일본 제국 간의 전투이다.
전투 계획 [편집]
맥아더는 휘하부대중 최정예인 6 군을 7 함대의 지원 하에 링가옌 만으로 상륙할 계획을 세웠고 예정일은 1945년 1월 9일이었다. 한편 야마시다 대장은 루존 섬 확보를 위한 결전이 불가능한다고 판단한 나머지 예하 병력을 3개 집단으로 나누어 최대한의 지구전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쇼오부 집단은 카라발로 산악지대의 방어에 주력하고, 켐부 집단은 클라크 비행장 일대를 방어하며, 심부 집단은 남부 루존을 방어하기로 하였다. 일본군의 병력은 쇼오부 집단이 140,000명, 켐부 집단이 30,000명, 심부 집단이 80,000명 등 총 250,000명이었고, 150대의 항공기가 이를 지원하였다.
경과 [편집]
1월 4일, 850척의 대함대는 레이테를 출발하였다. 항해 도중 가미카제의 공격을 받아 17척이 격침되었으나, 예정된 시간에 링가옌만을 엄습하였다. 이 작전은 거의 무저항 속에 이루어졌으며, 저녁까지 68,000명의 병력이 상륙하였다. 이후 1 군단이 카라발로 산악 방면을 견제하는 동안, 14 군단은 신속히 남진하여 1월말까지 클라크 비행장 일대를 장악하였다. 일본군은 해군측의 주장에 따라 마닐라 방어를 결심하였고, 한달간의 치열한 시가전끝에 미군은 마닐라를 점령하였다. 켐부 집단은 병력이 적었던 탓에 미국 14 군단의 맹공을 받아 쉽게 격파되었으나, 심부집단과 쇼오부집단은 끈질기게 버텼다. 그들의 전투 중에서 특히 발레테 고개와 살락삭 협로에서의 전투는 매우 치열하였다. 미군은 점차 일본군의 근거를 박탈해 나갔지만, 종전까지도 저항을 종식시키지 못했다. 7개월에 걸친 루존 지구전에서 미군은 38,000명이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군은 확인된 수만도 170,000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