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내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그리스 내전
(2차 세계 대전, 냉전의 일부)
날짜 1944년 12월~1945년 1월, 1946년~1949년
장소 그리스 전역
결과 그리스 정부군의 승리
교전국
그리스 왕국 그리스 정부군

지원국
영국 영국
미국 미국 (1947-)

Hammer and sickle.svg 그리스 민주군
Flag of the SR Macedonia.svg 마케도니아 인민해방전선 빨치산

지원국
불가리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알바니아
소련 소련

지휘관
그리스 왕국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
그리스 왕국 트라시불로스 차칼로토스

미국 제임스 밴 플리트

Hammer and sickle.svg 마르코스 바피아디스
Hammer and sickle.svg 니콜라오스 자하리아디스
병력
150,000명 51,000명
피해 규모
불명 불명
양측 모두 5만 명 전사
50만 명의 난민이 생김

그리스 내전(그리스어: ο Eμφύλιος [Πόλεμος], "내전",영어: Greek Civil War))은 1946년에서 1949년 사이에 영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 정부군과 그리스 공산당(KKE)의 군사 조직으로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 민주군(ΔΣΕ)이 싸운 내전이다. 1943년부터 좌파우파의 투쟁이 첨예해지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점령으로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서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내전은 냉전의 초기 분쟁으로 어떤 분석자들은 그리스 내전이 전후 서방의 해외 내정 간섭의 첫 사례로 보기도 하고, 혹자는 처칠스탈린의 소위 지분 협정 이론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실험한 사례로 평가하기도 한다.

개요[편집]

그리스 인민해방전선[편집]

냉전의 첫 전조는 추축국이 그리스를 점령하던 1942년~1944년에 나타났다. 그리스 망명 정부가 본국에서 영향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가운데, 제각각의 정치 성향을 지닌 여러 저항 세력들이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유력한 세력으로는 사실상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좌파 인민해방전선(EAM)이 있었다. 1943년 부터 인민해방전선과 다른 저항 집단이 갈등을 빚어 산발적인 충돌을 빚었으며 이런 상황은 1944년 봄까지 이어지다 이때 인민해방전선 성향의 장관 여섯 명이 입각한 국민 통합 정부를 수립하는 데 합의하게 된다.

인민해방전선과 정부간의 갈등[편집]

내전의 서막은 1944년 12월에 그리스가 해방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스 국토 대부분을 군사적으로 장악한 인민해방전선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그리스 정부와 대립하였으며, 수도 아테네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인민해방전선 군대가 패배하면서 그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는데, 그리스 인민해방군(ELAS)는 무장 해제되었으며, 인민해방전선은 여러 정당의 연합 조직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좌우파 세력간에 충돌로 긴장은 여전히 심한 상황이었다. 1946년, 그리스 공산당이 통제하는 게릴라 군대가 정치와 병참 면에서 당시 새로이 건국한 북쪽의 사회주의 국가들(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리스 민주군으로 조직되었으며, 그리스 공산당이 보이콧했던 1946년 선거에서 선출되고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은 그리스 정부를 상대로 싸우면서 내전이 발발하였다. 1946년에서 1948년까지 당초 정부군은 열세에 몰렸으나 미국의 지원이 늘어났으며, 반면 그리스 민주군에 신병이 부족해지고 티토-스탈린 결별의 반사 효과로 결국 그리스 민주군이 패배하였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이 결국 승리하면서 그리스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냉전 시대에 에게 해 지역의 이념적 균형이 명확해지는 데 일조하였다. 또 그리스 내전으로 그리스에 철저한 반공 안보 체제가 구축되었으며 이후 군사 정권의 성립으로 이어졌고, 1980년대까지 정치 대립에 영향을 까쳤다.

제1차 내전[편집]

제1차 내전은 1944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그리스를 점령하기 몇 달 전에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그리스를 점령했을 때 2개 게릴라 세력이 저항했는데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그리스 민족해방전선인민해방군과 이에 저항하는 그리스 민족민주군이었다.

1944년 초에 민족해방전선인민해방군이 민족민주군을 제외한 모든 게릴라 부대를 소탕하고 그리스 산악지역에 임시정부를 세운 뒤 그리스 국왕과 그의 망명정부를 무효화하였다. 10월에 독일군이 철수하자 공산주의자 게릴라와 왕에게 충성하는 게릴라들이 연합해 영국의 비호로 아테네에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연립 정부는 몇 주 되지 않아 내부 분열로 인해 해체되고 민족해방전선인민해방군이 아테네테살로니키를 제외한 그리스 전지역을 장악했다. 12월 3일에 결국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군이 이를 힘겹게 진압했다.

제2차 내전[편집]

그리스의 역사
v  d  e  h
Coat of arms of Greece.svg

청동기 시대 (3650-1100 BC)

고대 그리스 (1100-146 BC)

중세 그리스 (330-1832 AD)

근대 그리스 (1832 AD-현재)

같이 보기

제1차 내전 후에 1945년 2월에 열린 회담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해산했다. 그 후에 1946년 3월 그리스 총선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기권으로 국왕파가 다수 승리했고 1946년 9월 국민투표로 그리스 국왕 파블로스 1세가 다시 권좌에 앉게 되었다.

이에 공산주의자들은 반발해 1946년부터 반란을 일으켜 게릴라전을 재개하고 영국이 그리스를 지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자 트루먼 독트린으로 미국이 이 문제를 떠맡았다. 1947년 말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 북쪽 산악지대에 임시정부를 세웠고 그리스 정부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49년 이후에는 미국의 지원으로 그리스군이 산악지대의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고 1949년 10월 16일 그리스 공산당 방송국은 내전이 끝났음을 발표하고 많은 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이웃나라 알바니아로 도망쳤다.

결과 및 영향[편집]

3년 간의 내전으로 양측 모두 5만 명이 전사하고 50만 명의 그리스인이 난민 신세가 되는 재앙이 일어났다. 그리스 내전은 한국전쟁과 더불어 서로 해치고 죽이는 충돌과 격렬한 잔인성을 보여준 냉전시대의 전쟁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