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로드 작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오버로드 작전
(제 2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의 일부)
Normandy7.jpg
날짜 1944년 6월 6일~ 1944년 8월 24일
장소 프랑스
결과 연합군의 승리
교전국
미국 미국

영국 영국
프랑스 자유 프랑스(-1944.8.24)

네덜란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1]
벨기에 벨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뉴질랜드
폴란드 폴란드
노르웨이 노르웨이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캐나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자치령 뉴펀들랜드
그리스 왕국 그리스 왕국

나치 독일 나치 독일

프랑스 비시 프랑스

지휘관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조지 S. 패튼
미국 오마 브래들리
미국 [[]]
영국 버나드 몽고메리
영국 트래퍼드 리맬러리
영국 [[]]
영국 아서 해리스
프랑스 샤를 드골
프랑스 앙리 지로
캐나다 해롤드 알렉산더

나치 독일 에르빈 롬멜

나치 독일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독일 제국 칼 되니츠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프랑스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 명칭이다.

상륙과 공격[편집]

노르망디 상륙[편집]

연합군은 1944년 6월 6일 , 예정되어 있었던 디데이 상륙 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시작함으로써 오버로드 작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군이 유타 해변과 소드 해변 내륙 쪽에 상륙하였는데 두 지역 모두 치열한 작전 끝에 배후 내륙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연합군 해군도 독일 해군의 출몰의 막기 위해 브르타뉴 반도의 해안가에 기뢰를 매설하였고, 유보트 기지를 습격하였다. 한편, 연합군의 상륙을 쉽게 하기 위해 공군은 윈도우나 폭발 인형과 같은 가짜 낙하산 부대를 투입하였다. 연합군 정보국도 얼트라를 이용해 독일군에게 가짜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에게 독일군의 교통, 통신 등을 마비시키라는 작전을 전달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상륙을 시작했다. 이들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지역은 오마하 해변과 포앵트뒤오크였다. 유타 해변과 골드 해변,소드 해변에서는 연합군이 큰 피해 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 특히 영국군은 공수 부대가 성공적으로 캉 운하를 장악함으로써 해변 상륙이 쉽게 이루어졌다. 생메르에글리즈는 미군 공수 부대의 전투 끝에 프랑스에서 최초로 해방된 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연합군은 본디 바이외, 등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나, 독일군의 반격 및 연합군의 진격 속도 저하로 이들을 탈환하지는 못했다.

독일군은 오후 3시경부터 전열을 정비해 캉과 바이외 근처에 기갑사단과 히틀러 유겐트를 파견했지만 연합군을 막기에는 때가 늦었다. 영국군은 독일군 기갑 사단의 마이어 중령의 군단을 격퇴하였으며 유타 해변의 미군은 공수 부대와 만나는데 성공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교두보를 확충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랑탕과 카르피케&112 고지[편집]

연합군은 생로를 탈환하는데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센 강 진격[편집]

코탕탱 반도[편집]

팔레즈 협곡[편집]

미 제 3군의 진격[편집]

파리 해방[편집]

프랑스 탈환[편집]

주석[편집]

  1. 일부 병사들은 자유 프랑스의 해군으로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