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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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니지 전역 (북아프리카 전역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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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이 시칠리아로 떠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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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942년 11월 17일 ~ 1943년 5월 1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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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튀니지 | ||
| 결과 | 연합군의 승리, 아프리카에서의 종전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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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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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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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전역은 연합군의 횃불 작전 후인 1942년 11월부터 아프리카에서의 종전을 맞이한 1943년 5월까지의 전투를 뜻한다.
목차 |
횃불 작전 후와 교착[편집]
횃불 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은 알제리에서부터 영·미 연합군이 동쪽으로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는데, 이 두 군은 아틀라스 산맥의 동도르살레 산맥에 구축된 독일군 진지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롬멜이 군을 모아 튀니지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두 나라는 튀니지 근방에서 진격을 멈춰 교착 상태가 된다.
전투 계획[편집]
독일은 롬멜과 아르님과 함께 방어를 형성하고, 미·영 연합군은 공격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경과[편집]
독일의 공격과 후퇴[편집]
독일군 제2 기갑사단은 미군을 공격하고 2월 19일에는 카세린 고개까지 후퇴시켰다. 그러나 독일군의 공격은 이 고개에서 공세를 멈춰 이후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된다. 그 와중에서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보급 물자는 연합군 공군에 의해 끊기는 상황에서도 방어를 성공적을 하여 몽고메리 장군은 겨우 3월 31일에나 마레스 방어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후퇴를 거듭하던 추축국들은 5월이 되자 켈리비아와 비제르테 지방에서 물러나 아프리카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과[편집]
이로 인해, 아프리카에서는 모든 전투가 끝나고 두달 뒤 시칠리아 상륙을 시작하여 이탈리아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평가[편집]
그 동안 수뇌부에서는 북아프리카 전역이 주 전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계속 전투하라고 했으며, 패배가 되는 순간에도 후퇴하지 않고 방어하라고 하여 시간과 물자를 날린 것이라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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