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전역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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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전역
(태평양 전쟁의 일부)
Chindit column, Operation Longcloth.jpg
지도
Pacific Area - The Imperial Powers 1939 - Map.svg
날짜 1941년 12월 8일 - 1945년 8월 15일
장소 동남아시아
결과 연합군의 승리
교전국
영국 영국
미국 미국
중화민국 중화민국
필리핀 필리핀
베트남 민주 공화국 비엣민
영국령 인도 제국 영국령 인도 제국
캐나다 캐나다[1]
홍콩 영국령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뉴질랜드
일본 제국 일본 제국
타이 타이
필리핀 필리핀 제 2공화국
라오스 라오스 왕국
캄보디아 캄보디아 왕국
프랑스 비시 프랑스
1942-1945
네덜란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싱가포르
북보르네오 북보르네오
말레이시아 말레이 연방
1943-1945
동티모르 포르투갈령 티모르[2]
미얀마 버마[3]
1944-1945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멕시코 멕시코[4]
미얀마 버마국[5]

부수적 참여국
노르웨이 노르웨이[6]
파푸아 뉴기니 파푸아 뉴기니

1943-1944
미얀마 버마
인도 자유 인도 임시 정부

1945
베트남 베트남 제국

지휘관
영국 루이스 마운트배튼
영국 해럴드 알렉산더
미국 조지프 스틸웰
미국 더글라스 맥아더
중화민국 장제스
중화민국 천청
필리핀 에밀리오 아기날도
필리핀 마누엘 L. 케손
베트남 민주 공화국 호치민
베트남 민주 공화국 보응우옌잡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멕시코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네덜란드 하인 텔 포르텔
일본 제국 데라우치 히사이치
일본 제국 야마시타 도모유키
일본 제국 기무라 헤이타로
타이 쁠랙 피분송크람
미얀마 보죠케 아웅 산
인도 수바스 찬드라 보스
라오스 씨싸방 퐁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
베트남 바오 다이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말레이 연방을 침공한 12월 7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이 있을 때까지 일어난 일련의 전투들을 포괄하는 전역이다. 연합국의 식민지가 대부분이었던 이 지역에서 일본군 대부분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식민지 침략 논리를 정당화했으나, 이는 일본군의 모략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 지역에서의 패배로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연합군의 본토 공습에 대비해야 했으며, 전쟁 물자의 보급원이 끊기게 되었다.

배경[편집]

1933년 일본 제국은 국제 연맹을 탈퇴하였고, 1936년에는 군비축소회의에서도 탈퇴하여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1940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일본은 미국의 철 수출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어 나갔는데 소비에트 연방과 1941년 4월,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철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합중국은 이에 분개,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하였다. 일본이 이를 무효화해달라고 요구하자 미국은 만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의 일본군 철수, 독일-이탈리아와의 동맹 무효화를 주장했다. 1941년 10월 17일, 도조 히데키를 중심으로 내각이 수립되었고, 이들은 미국을 공격하기로 결정내렸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말레이 반도 침공이 시작되었고, 55분 후에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필리핀에 있는 미군 항공 기지를 공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확전[편집]

1941-1942[편집]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을 공격하고, 타이를 침략하여 동맹국으로 삼았다. 1941년 12월 25일까지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 전체, 싱가포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홍콩을 완전히 복속시켜 식민지로 삼았다. 1942년 1월 말까지 일본군은 보르네오 섬, 버마,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침공하여 완전히 점령하고, 3월에는 인도령이었던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를 점령했다. 이 시기에 국가 간의 항공전에는 4월 18일의 둘리틀 공습이 있었는데, 이 전투는 일본 수도에 대한 전략적 폭격이었다. 이는 일본군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지만 이 때까지도 일본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일본은 인도의 첸나이에 공습을 가했고, 5월에는 마다가스카르를 공격했다. 10월 19일에 포르투갈령 티모르를 공격하였다. 1942년 12월 31일까지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석권하였고 이는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군의 진군 속도와 맞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공격 당시 육군과 해군, 공군을 적절히 활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1942년 일본군은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군은 알류산 열도에 상륙하여 미군을 공격하고 과달카날 섬을 침공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미국에게 대패함으로써 일본군은 하와이로의 진출을 접어야 했다.

1943-1944[편집]

1943년, 일본군의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육군과 해군의 상황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육군의 경우, 버마를 완전히 점령하고, 포르투갈령 티모르를 완전 병합하여 동남아시아 전체를 석권하는데 성공하여 오스트레일리아영국령 인도 제국으로의 침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군의 경우, 약 6개월 간 지속되었던 과달카날 전역과 뉴기니를 두고 싸운 비스마르크 해전에서 결국 패배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에 위기를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군에게 충격을 준 공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일본 열도 북동부에 위치한 쿠릴 열도 공습이었다. 일본군은 이에 대비해 본토에 공군 및 방공 기지를 건설했다. 연합군은 태평양 일대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으며, 일본이 점령한 주요 도시를 폭격하고 있었고, 일본이 점령한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군을 쫓아냈다. 일본군 사이에서도 육군과 공군 사령부가 불화를 보이고 있어서 군대의 힘을 결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출처[편집]

주석[편집]

  1. 캐나다필리핀 전역에 참가했다.
  2. 포르투갈은 2차 대전 당시 중립국이었지만 포르투갈령 티모르인들은 일본군에 적극 저항했고, 이곳의 총독도 일본에 대항했다.
  3. 1943년일본 제국이 세운 버마국에 의해 멸망했다.
  4. 멕시코필리핀 전역에 참가했다.
  5. 버마는 1944년 이후 연합국이 되었다.
  6.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에 의료병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