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로 몽고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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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로 몽고메리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1887년 11월 17일 ~ 1976년 3월 24일)는 영국군인이다.

1908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 투신하였다. 1910∼1914년에는 인도 근무,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아일랜드, 팔레스타인에서 근무하였다. 1931년 대령, 1938년에는 소장이 되어 팔레스타인에서 사단장으로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제3사단장으로서 프랑스군과 연합하여 독일군의 공격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940년 6월 됭케르크 철수 후에는 제5사단장을 거쳐 1942년 8월부터 영국 제8군 사령관이 되어 북아프리카 작전을 맡았고 추축국을 몰아낼 준비를 하였다. 그는 땅에 떨어진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군의 병력을 증강했다. 영국 8군은 그 기간 동안 진격을 중단하게 된다. (1942년 10월 영국 8군은 약 20만의 병력, 전차 1029대, 비행기 약 750대, 대포 2359문을 보유하게 된다).독일군은 1942년 8월에 알렘 할파에서 영국군을 기습하였는데 몽고메리의 방어전술에 패배하게 된다. 10월 23일부터 그는 엘 알라메인에서 독일군에 대규모 기습공격을 하였는데 이날부터 그가 이끄는 영국 8군은 1942년 11월 5일까지 이 곳의 남부와 북부에서 번갈아가며 독일군을 공격했다. 독일군은 처음엔 영국군의 공격을 상당히 방어했으나 전투 후반부에 전개된 그들의 물량공세를 더 이상이기지 못하고 뒤로 후퇴했다. 결국 영국 8군은 11월 5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몽고메리는 롬멜을 추격하려 했으나 엘 알라메인에서 8군이 상당히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추격을 뒤로 미뤄야 했다. 그 후 미군이 알제리의 오랑과 카사블랑카에서 상륙하자 그도 미군과 보조를 맞춰 롬멜을 사냥하게된다.(사실 그는 미군과 전개하기 싫어했다) 1943년 미군이 공세를 펼치고 몽고메리는 튀니지 남부에서 공세를 전개한다. 그러나 그 앞에는 독일군이 구축해 놓은 튼튼한 마레스 방어선이 있었다. 그는 마레스 방어선 뒤쪽에 있던 산등성이를 지나서 독일군을 기습공격하였고 영국포병대에게 방어선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방어선은 뚫리게 되었고 그는 계속 진격명령을 내렸다. 1943년 5월 독일군이 패배하자 그는 튀니스에 도착하였다. 1943년 7월 10일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당시 영국군을 이끌고 미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패튼과 전공경쟁을 벌였다. 12월 31일 영국 8군사령관에서 물러난 그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들어갔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 21집단군사령관에 부임하여 대활약하였고, 각종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팔레즈에서 미군 12집단군과 함께 독일군을 전멸시켰다. 파리해방일인 1944년 8월 25일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작전지휘권을 인수하자 영국육군원수가 되었다. 1944년 9월 17일부터 9월 25일까지 개시된 마켓가든작전을 총지휘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1944년 후반에 발발한 벌지전투에서는 독일군을 비교적 잘 막아냈다. 1945년 연합군이 독일내부로 진격해 들어가자 1945년 3월에는 연합군의 약탈작전과 공수작전인 대표팀작전을 지휘하였다. 종전후 1946년에 백작이 되어 가터 훈장을 받았고, 영국육군참모총장을 거쳐 1951년부터 1958년까지 나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 최고사령관 대리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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