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 브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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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 브래들리
Omar Nelson Bradley
1893년 2월 12일 ~ 1981년 4월 8일
General of the Army Omar Bradley.jpg
Omar N Bradley Signature.svg
1950년의 오마 브래들리 육군 원수
태어난 곳 미주리 주, 클라크
죽은 곳 뉴욕 주, 뉴욕 시
별명 "The G.I.'s General"
복무 미국 육군
최종 계급 육군 원수
지휘 제82 보병 사단
제28 보병 사단
미국 제2군단
미국 제1군
제12군 집단
육군 참모장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오마 넬슨 브래들리 원수 (Omar Nelson Bradley, 1893년 2월 12일 ~ 1981년 4월 8일) 는 미국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북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미국 육군을 지휘한 주요 사령관 중 한 명이다. 브래들리는 마지막으로 살아 남았던 5성 장군으로,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초대 의장을 지냈다.

2차 세계대전[편집]

제2차 세계대전중 고도로 훈련된 제12집단군을 지휘하여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를 확실히 하는 데 일조했으며, 전후에는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초대 의장을 지냈다(1949~53).

1915년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 소재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초에 조지아 주 포트베닝 소재 보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제82사단과 제28사단을 지휘했다. 북아프리카 원정 제2군단장으로 임명된 후 1943년 5월 튀니지의 비제르트를 점령, 튀니지를 함락시키고 25만 명 이상의 추축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직접적인 공헌을 했다. 이어 그의 부대는 시칠리아 침공작전에 참가했으며, 그 침공작전은 8월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1943년 종반에 영국으로 전임되어 미국 제1군 사령관직을 맡고 프랑스 침공계획에 참가했다. 1944년 6월 그의 부대는 노르망디의 해안공격과 본토에서의 초기전투에 참가했다. 그해 여름 전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의 하나는 그의 부대에 의한 파리 해방(8. 25)이었다. 그 해방은 며칠 전에 파리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그는 미국 제12집단군 사령관으로 승진되었으며, 미국 집단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부대로서는 최대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유럽에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프랑스·룩셈부르크·벨기에·네덜란드·독일·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독일의 항복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재향군인 원호국장(1945~47)과 육군 참모총장(1948~49)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장교들과 사병들로부터 호감을 얻었으며, 미군의 통합 후 초대 연합참모본부 의장으로 뽑혔고, 그 직책을 맡고 있는 동안 육군원수로 승진되었다(1950). 1953년에 퇴역한 후 '브래들리 커미션'으로 알려진 참전용사 연금 커미션에서 최고이사로 활동하다가, 이후 1958년부터 1973년까지는 미국 뉴욕에 위치한 시계 회사 부로바의 사장을 역임했다.[1]

  1.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0b215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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