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 대공습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1941년 6월 5일 일본군의 공습에 희생된 인민들. 이외에도 공습을 피하여 방공호로 도망치는 와중에 4천 명이 질식하여 숨졌다.

충칭 대공습(한자重慶大空襲, 중국어 간체: 重庆大轰炸, 정체: 重慶大轟炸, 일본어: 重慶爆撃)은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이 1938년 2월 18일부터 1943년 8월 23일까지 5년여간 중국 충칭에 실시한 폭격작전이다. 일본군은 충칭을 218차례 공습하였고, 최대 9513대의 비행기가 동원되었으며 21593여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이 대공습으로 사망한 사람은 11889명이며 1만여 가옥과 시가지 대다수가 파괴되었다.[1] 일본의 충칭 대공습은 1937년 4월 스페인 내전 때의 게르니카에서의 폭격 이후 역사상 최대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습이기도 하다.

이때 일본군은 소이탄(燒夷彈)을 사용하였다.[2]

경과[편집]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이 국민정부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1937년 11월 20일부로 충칭을 전시 수도로 결정하였다.

일본군은 중국 국민정부를 굴복, 항복을 유도하기 위하여[3] 충칭을 공습하였다. 공습 이틀째부터 1939년 5월까지 5천여 명의 중국 민간인들이 사망하였다.[2]

두달 뒤, 일본군이 소이탄을 사용하여 수만명을 죽이자 미국측은 재빨리 비행기 부품에 대한 무역 봉쇄를 선언하였다. 이 일은 미국의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첫 경제 제제였다.[2]

1941년 6월 5일, 일본군은 항공기 24대를 3조로 편성하여 5시간 동안 폭격하였는데, 이때 제18제대터널 안으로 피신하였던 인민들의 수가 많았고,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1,200여 명이 질식사하였다. 이 사건은 따로 '6·5 대터널 참변'이라 부른다[3]

각주와 출처[편집]

  1. (중국어) 장타오(张涛),충칭 대폭격 생존자의 증언: 일본비행기의 폭격 뒤에 본 참기 어려운 광경(重庆幸存者见证:日机轰炸后惨不忍睹),《신화통신》, 2005년 7월 27일, 2008년 5월 12일 읽음.
  2. (영어) 헐버트 빅스(Herbert Bix) (2001). Hirohito and the Making of Modern Japan,364쪽
  3.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미래를 여는 역사》(ISBN 89-8431-154-5), 한겨레출판,152쪽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