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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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내각 각료 (1933년 1월 30일, 앞줄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괴링 무임소장관, 히틀러 수상, 파펜 부수상, 뒷줄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크로지크 재무장관, 프리크 내무장관, 블롬베르크 국방장관, 후겐베르크 경제 및 식량장관

히틀러 내각1933년 1월 30일부터 1945년 4월 30일까지 존재한 나치 독일의 내각이다. 프란츠 폰 파펜 부수상의 제안을 받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되었다.

구성원[편집]

다음은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에 정권을 잡은 이래 1945년까지 히틀러 내각의 변천사다.

[ 1933년 1월 30일 내각 ]

[ 교체 이력 ]

  • 1933년 3월 -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가 선전장관으로 입각
  • 1933년 4월 - 괴링이 항공장관이 됨
  • 1933년 6월 - 후겐베르크가 물러나고 쿠르트 슈미트(Kurt Schmitt)가 경제장관을, 리하르트 발터 다레(Richard Oscar Walther Darré)가 식량장관 직을 계승했다.
  • 1933년 12월 - 에른스트 룀(Ernst Röhm)과 루돌프 헤스(Rudolf Hess)가 무임소장관으로 입각.
  • 1934년 5월 - 베른하르트 루스트(Bernhard Rust)가 과학 및 교육장관으로 입각
  • 1934년 6월 - 한스 케를(Hanns Kerrl)이 무임소장관으로 입각. 무임소장관이던 룀은 숙청되어 처형됨
  • 1934년 7월 - 괴링이 삼림장관이 됨
  • 1934년 8월 - 파펜이 부수상 직을 사임했다. 공석이 된 부수상 직은 이후 임명되지 않았다. 햘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가 슈미트를 대신하여 경제장관이 되었다.
  • 1934년 12월 - 한스 프랑크(Hans Frank)가 무임소장관으로 입각.
  • 1935년 3월 - 괴링이 공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 1935년 5월 - 국방성(Minister of Defence)이 전쟁성(Minister of War)으로 개칭했다. 블롬베르크는 장관직을 유지했다.
  • 1935년 7월 - 한스 케를이 교회부를 담당하게 됨.
  • 1936년 4월 - 베르너 폰 프리치(Werner von Fritsch)가 육군 총사령관으로 입각. 에리히 레더(Erich Raeder)가 해군 총사령관으로 입각
  • 1937년 2월 - 우정 및 교통장관이던 엘츠가 사임. 우정장관으로 빌헬름 오네조르게(Wilhelm Ohnesorge)가, 교통장관으로는 율리우스 도르프뮐러(Julius Dorpmüller)가 임명됨.
  • 1937년 11월 - 헤르만 괴링이 샤흐트를 대신하여 경제장관이 되고, 샤흐트는 무임소장관이 되었다.
  • 1937년 12월 - 오토 마이스너(Otto Meissner)가 사무국 장관(Minister of State and Head of the Chancellery)으로 입각.
  • 1938년 1월 - 발터 풍크(Walter Funk)가 괴링을 대신하여 경제장관이 됨
  • 1938년 2월 -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가 노이라트를 대신하여 외무장관이 됨. 노이라트는 무임소장관이 되었다. 블롬베르크가 전쟁성 장관직에서 사임하고 전쟁성은 폐지되었다. 그가 맡았던 역할은 OKW 참모장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장군이 대신하게 되었다. 육군 총사령관 프리치가 물러나고, 발터 폰 브라우히치(Walther von Brauchitsch)가 새로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1939년 3월 -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Arthur Seyss-Inquart)가 무임소장관으로 입각했다.
  • 1940년 3월 - 프리츠 토트(Fritz Todt)가 군수성장관이 되었다.
  • 1941년 1월 - 프란츠 슐레겔베르거(Franz Schlegelberger)가 귀르트너를 대신하여 법무장관이 됨
  • 1941년 5월 - 루돌프 헤스(Rudolf Hess)가 내각에서 업무 중지됨. 헤스가 단신으로 영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었다.
  • 1941년 12월 - 교회부 장관 한스 케를이 사망했고, 그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았다. 히틀러 자신이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 1942년 2월 -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가 토트를 대신하여 군수성장관이 되었다.
  • 1942년 5월 - 헤르베르트 바케(Herbert Backe)가 다레를 대신하여 식량장관이 되었다.
  • 1942년 8월 - 오토 게오르크 티라크(Otto Georg Thierack)가 슐레겔베르거를 대신하여 법무장관이 됨
  • 1943년 1월 - 카를 되니츠(Karl Dönitz)가 사임한 레더의 해군 총사령관직을 계승
  • 1943년 8월 -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가 내무장관직을 계승.
  • 1944년 7월 - 샤흐트가 내각에서 물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