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되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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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되니츠 독일어: Karl Dönit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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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9월 16일 ~ 1980년 12월 24일 | |
| 태어난 곳 | |
| 죽은 곳 | |
| 복무 | |
| 복무 기간 | 1911년 ~ 1945년 |
| 최종 계급 | 해군 원수 |
| 지휘 | 독일 잠수함대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 기타 이력 | 나치 독일 2대 대통령 회고록 《10년 20일》출간 |
카를 되니츠(독일어: Karl Dönitz, 1891년 9월 16일 ~ 1980년 12월 24일)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해군 제독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대 사령관, 독일 해군 총사령관 및 히틀러 사후 독일 총통을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보트(U-Boot) (잠수함) 함장으로 참전하여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종전 후에도 계속 해군에 남은 되니츠는 한동안 순양함 함장 등을 지내며 군 생활을 했고, 1935년 재군비 선언 이후 대령 계급으로 잠수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잠수함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유보트 건조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과 당시 잠수함 건조 기술의 한계를 감안한 이리떼 전술을 창안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에도 잠수함대 사령관으로서 영국 해군과 대서양 호송선단 전투를 결사적으로 벌였다. 윈스턴 처칠은 훗날 유보트를 가장 무서웠던 존재로 꼽았다. 에리히 레더 제독이 히틀러와 수상함대 문제로 갈등을 빚은 후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해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히틀러의 자살 후에는 히틀러의 정치적 유언에 의해 독일을 대표하는 총통이 되었다.
동프로이센 및 동부지역 민간인과 군병력이 엘베강 서안으로 탈출해서 미군에 항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항복협상을 질질 끌기 원했으나, 연합군은 즉각적인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이를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1941년 이후 독-소전에서 나치독일은 대규모 민간인학살, 도시황폐화, 무조건적인 포로대량처형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로인해 소련군은 독일인에 대해 원초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련군의 적개심을 잘알고 있던 독일군 장성들은 최대한 많은 수의 민간인과 군병력을 신사적인 대우를 해주는 미군에게 항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련군 병사들은 장교들의 묵인하에 독일영토 침공 이후 똑같은 보복행위를 저질렀다. 실제로 마지막 베를린점령 과정에서 방화,약탈,강간 등 민간인 학대행위가 수도 없이 보고되었다.)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였으며, 《10년 20일(Zehn Jahre und Zwanzig Tage》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198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전 임 아돌프 히틀러 |
제4대 독일의 대통령 1945년 4월 30일 ~ 1945년 5월 23일 |
후 임 디오도르 호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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