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되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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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되니츠
Karl Dönitz
카를 되니츠
카를 되니츠
독일 독일제4대 대통령
임기 1934년 8월 2일 ~ 1945년 4월 30일
전임: 아돌프 히틀러(제3대)
후임: 테오도어 호이스(제5대)

출생일 1891년 9월 16일
출생지 독일 제국 독일 제국 베를린 근처 그뤼나우
사망일 1980년 12월 24일
사망지 독일 독일 함부르크 근처 아우뮈흘레
정당 나치당
종교 개신교

카를 되니츠(독일어: Karl Dönitz, 1891년 9월 16일 ~ 1980년 12월 24일)는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해군 제독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대 사령관, 독일 해군 총사령관 및 히틀러 사후 나치 독일 대통령을 지냈다.

생애[편집]

카를 되니츠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유보트(U-Boat: 잠수함) 함장으로 참전하여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종전 후에도 계속 해군에 남은 되니츠는 한동안 순양함 함장 등을 지내며 군 생활을 했고, 1935년 재군비 선언 이후 대령 계급으로 잠수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잠수함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유보트 건조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과 당시 잠수함 건조 기술의 한계를 감안한 늑대떼 전술을 창안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에도 잠수함대 사령관으로서 영국 해군과 대서양 호송선단 전투를 결사적으로 벌였다. 윈스턴 처칠은 훗날 유보트를 가장 무서웠던 존재로 꼽았다. 에리히 레더 제독이 히틀러와 수상함대 문제로 갈등을 빚은 후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해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히틀러의 자살 후에는 히틀러의 정치적 유언에 의해 대통령(독일어: Reichspräsidenten)이 되었다. 히틀러괴벨스를 총리로 임명하였지만 그는 자살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되니츠의 1인 정부가 되었다. 동프로이센 및 동부지역 민간인과 군병력이 엘베 강 서안으로 탈출해서 미군에 항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항복 협상을 지연시키기 원했으나[2], 연합군은 즉각적인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였으며, 《10년 20일》(독일어: Zehn Jahre und Zwanzig Tage)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1980년 12월 24일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베를린의 한 여인》
  2. 1941년 이후 독-소전에서 나치독일은 대규모 민간인 학살, 도시 황폐화, 무조건적인 포로 대량 처형 등의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소련군은 독일인에 대해 원초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련군의 적개심을 잘알고 있던 독일군 장군들은 최대한 많은 수의 민간인과 군병력을 신사적인 대우를 해주는 미군에게 항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련군 병사들은 장교들의 묵인하에 독일 영토 침공 이후 똑같은 보복 행위를 저질렀다. 마지막 베를린 점령 과정에서 방화, 약탈, 강간 등 학대 행위가 수도 없이 보고되었다. 강간의 경우 베를린에서만 10만 건 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독일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1]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