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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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오토 아이히만
1906년 3월 19일 ~ 1962년 5월 31일
태어난 곳 독일 제국 슐레지엔
죽은 곳 이스라엘 라믈라
복무 나치 독일 나치 독일
최종 계급 SS-Obersturmbannführer.svg 친위대 중령
근무 Flag Schutzstaffel.svg 친위대 제국보안본부
주요 참전 홀로코스트
서훈 내역 1등 전공십자장,
2등 전공십자장
기타 이력 모사드에게 납치되어 처형당함.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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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오토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5월 31일)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독일의 SS중령(최종계급)으로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국제 전범으로 수배 중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을 바꾸고 15년 동안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 후에 1962년 5월 31일에 처형되었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후에 사회학한나 아렌트는 실험을 통해 부당한 명령이라도 해도 한 번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그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즉 세상에 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문제로 이스라엘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빚었다. 엄연히, 모사드의 아이히만 납치는 국제법과 관례에 어긋나 아르헨티나 정부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에 관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