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시아의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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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Fra Angelico 031.jpg
아빠스
출생 480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사망 547년,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교파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시성 1220년
축일 서방 교회: 7월 11일
동방 교회: 3월 14일
상징 종, 깨진 컵, 지팡이, 빵을 입에 문 까마귀, 베네딕토회 수도복
수호 농부, 이탈리아인 건축가, 화학자, 기술자, 동굴학자, 누르시아, 유럽, 수도사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라틴어: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480년 - 543년 3월 21일)는 중세 기독교의 수도원장이자 서방 교회의 수도제도를 창설한 사람으로 ‘서유럽 수도회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분도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성 베네딕토라 불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성공회성인으로 축일은 7월 11일이며, 베네딕토는 ‘좋게 말한’ 또는 ‘축복된’이란 뜻을 갖고 있다. 흔히 검은 로브에 하얀 두건을 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에 대수도원을 만들어 530년경 수도 회칙을 정하고, 공동 수도 생활을 실시했다. 그의 계율에 따르는 수도회를 베네딕토회라고 부른다. 상징물은 종·깨진 컵·베네딕토회 수도복·지팡이·부리에 빵을 물고 있는 까마귀이며, 농부·이탈리아인 건축가·화학자·기술자·동굴학자의 수호 성인이다.

행적[편집]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누르시아의 한 부유한 고대 로마 제국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의하면 쌍둥이 여동생인 스콜라스티카가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로마의 행정관으로서 필요한 교양을 몸에 익히기 위한 목적으로 유모와 함께 로마로 유학을 간 베네딕토는 그 곳에서 살며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당시 환락과 퇴폐가 만연했던 로마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곧 퇴학하고 귀족의 신분까지 버려 로마를 떠나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엔피데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갔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고독한 삶을 살기 위해 그 곳의 깊은 산 속에 있는 수비아코 계곡의 천연 동굴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거룩한 동굴)에 은거하여 3년간 홀로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기도로 기적이 일어나 그 때부터 세간에 그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면서 그를 따르기 위해 점차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베네딕토는 인근의 수도 공동체 비코바로(Vicovaro)의 원장이 되어달라는 청탁을 받아, 마지못해 수락하고 규율이 문란하고 퇴폐에 찌든 수도생활의 개혁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수도자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모셔온 사람을 공공연하게 배척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베네딕토를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며 점심식사 때 포도주에 독약을 섞어서 그에게 권했다. 베네딕토는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전례대로 성호를 그었는데 그러자 즉각 그 잔이 깨져버렸다. 이에 베네딕토는 그들의 음모를 눈치채고 탄식하면서 그 날로 그 수도원을 떠나 다시 수비아코 계곡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를 따르는 12명의 제자들로 구성된 12개의 작은 수도원을 설립하여 그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

그 후 인근 본당 신부 플로렌시오의 시기를 받으면서 또 한번 곤경에 처하게 되자 베네딕토는 525년경에 수비아코를 떠나 몬테카시노로 갔다. 당시 몬테카시노 인근의 주민들은 이교를 신봉하고 그 산 위에 아폴론 우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베네딕토는 아폴론에게 바쳐진 이교 신전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그 곳 산정에서 모든 베네딕토 수도원의 모체가 된 수도원과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몬테카시노 수도 공동체를 위한 규칙서인 《베네딕토 규칙(Regula Benedicti)》을 저술하여 올바른 금욕생활과 기도, 공부, 육체 노동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공동체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규칙은 점차 서방 교회의 모든 수도원의 법전이 되었고 다른 수도규칙의 모범이 되었으며 교회 영성과 서유럽 문화 진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세운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본부가 되고 있다.

베네딕토의 명성을 듣고 고트족 토틸라가 그를 방문하기 위해 일부러 리트고라는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먼저 그를 만나보게 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토틸라와 한번도 대면한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리트고를 보자마자 그가 진짜 토틸라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그 뒤에 온 진짜 토틸라가 오자 그에게 전쟁을 중지할 것을 훈계하면서 앞으로 그가 9년 동안은 건강하게 살다가 10년째 되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에 토틸라는 베네딕토를 만나고 난 후 자기의 소행을 삼갔으며 베네딕토의 예언대로 10년째 되던 해에 죽었다고 한다.

이후 베네딕토는 교황의 고문 역을 담당했으며, 토틸라의 침공으로 폐허화된 롬바르디아를 재건하는데 앞장서던 도중 543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제대 앞에 서서 신발을 신은 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다가 죽었다. 8세기 말부터 전국 각지에서 그를 공경하기 시작했으며,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가 베네딕토를 유럽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공회에서도 성 베네딕트를 수호성인으로 하는 성공회 교회가 있을 정도로 성 베네딕트를 성인으로 존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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