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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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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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가톨릭교회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교회의 시작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으로 발현된다. 고대교회는 2세기 이후, 교회의 체제가 조직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27권의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형성되었고 유대교로부터 계승한 구약성서(舊約聖書)을 포함하여 66권의 신·구약성경이 이단과 이교의 혼탁한 상황에 맞서 기독교의 유일한 정경으로 채택된다. 이 시기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종교개혁이 일어 났으며 개혁을 거부한 당시 서방교회의 중심인 로마대교구와 개혁을 위장한 교회 내에서의 '가톨릭 개혁운동'의 영향은 지금의 로마 가톨릭교회로 고착화 되었다.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와 엄격히 구분하여 고(古) 가톨릭교회 또는 가톨릭교회라고 부른다.[1].

과정[편집]

교회에 명확한 개념과 교회 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카르타고 교회의 감독 키프리아누스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만 이론의 여지는 각 교파마다 달리한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통일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교회[2]는 구원을 위해 지상에 세워진 유일한 기관이며, 교회의 감독(주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권위를 부여받았으며 그리스도는 하나요 진리가 하나인 것처럼 교회도 오직 하나임을 주장했다.

내용[편집]

그가 사용한‘가톨릭’이라는 용어는 헬라어의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한다. 어원적으로는 '전체적’‘보편적’‘공적(公的)’이라는 뜻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우주적 보편 교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역사적으로 기독교회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어 왔으나, 종교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엄격히 구분하며 '가톨릭 교회’를 지칭하기도 한다. 고 가톨릭 교회는 교회 조직과 제도의 확립과 함께 이단을 배척하며 정통신학의 확립에 기여해 왔다. 이후,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역사적 정통 개혁교회로 계승된다. [3].

역사적 고 가톨릭교회는 이교, 이단의 침투로 키프리아누스 외에 유스티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오리겐) 등의 교부(敎父) 신학자들의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정립해 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강조하며 성경에 내포된 하나님의 3위격(三位)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일체(一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삼위일체 신학이 확립된다. 또한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신격(神格)을 가졌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밝혀낸다.[4].

그러나 3세기 이후, 황제숭배의 강요와 교회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해감에 따라 기독교는 로마제국과 빈번히 충돌하게 된다. 충돌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황제숭배 문제였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로마의 부흥을 도모한 황제는 황제숭배를 강요했지만 기독교인들이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로마 전체가 기독교를 더욱 박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53∼260)는 교회를 없애 버리기 위해 대규모의 박해를 감행하여 순교를 강요했지만, 기독교인들은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단결하여 믿음의 본질과 교회 공동체를 지켰냈다. 그리하여 무수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보고 로마 제국는 회유책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313년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틴) 1세(재위 306∼337)는 밀라노칙령(勅令)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한다. 이후 데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는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선포했다. 이와 같이 고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훼손하는 일체의 사상과 이교적 침투에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생명력을 지켜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모든 교파가 고 가톨릭 교회의 역사성을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5].

주석[편집]

  1. 하승무,《기독교 역사의 이해》 (한국장로회신학교: 부산, 2012) pp 1.
  2. 키프리아누스가 말하는 '교회'의 의미는 조직이나 기구가 아니라 본질상 불가시적 교회를 말하며 불가시적 교회는 나누거나 분립할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보편적 교회 즉 우주적인 교회로 진술한 것이다. 하승무,《기독교 역사의 이해》,한국장로회신학교.2012
  3. 하승무,《기독교 역사의 이해》 (한국장로회신학교: 부산, 2012) pp 1~3.
  4. 하승무,《고대교회사》 (한국장로회신학교: 부산, 2012) pp 11.
  5. 하승무,《고대교회사》 (한국장로회신학교: 부산, 2012) pp 25.

참고 문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