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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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복음(福音, 고대 그리스어: 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 라틴어: evangelium 에우앙겔리움[*])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을 한자어로 풀이한 것으로서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 예수의 십자가 죽음부활로 인한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신자들 위에 성령의 강림이나 예수의 재림에 대한 예고를 포함하기도 한다.

좋은 소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복음서에서 전하는 예수의 일생에 대한 기술, 그리고 신약성서의 서신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서 비롯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찾아오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화해가 핵심적인 교훈이다.

기독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을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 예언되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창세기 인간의 타락부터 전해지는데 이를 원시복음이라고 한다.

신약성서[편집]

예수는 '복음'이라는 용어를 제2 이사야서의 예언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신성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의 전달자였으며(루가 4:14-19, 7:22, 마태 11:5), 그가 선포한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복음이었다(마태 1:14-15, 4:23, 9:35, 24:14). 그러나 사도들에게 있어 ‘복음’은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그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위해 성취한 신성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다(사도 5:42, 14:6 · 20, 15:20). ‘복음’의 이러한 사용은 특히 바울로의 저술에 많이 나타나는데, 그는 ‘복음’이라는 명사를 60여 차례(로마 1:1, 9:15-16), ‘복음화 하다’라는 동사를 20여 차례나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그의 메시지를 ‘하느님의 복음’이라고 불렀는데(로마 1:1, 15:16, 2고린 11:7) 그 이유는 그의 복음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그리스도의 복음’이며(로마 15:19, 1고린 9:12, 2고린 2:12, 9:13)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원사업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나의 복음’이라는 말도 썼는데 이는 바울로의 구원의 복음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도들의 복음과 다름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갈라 1:6-9) 그가 복음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이며(갈라 1:11-12, 1고린 15:3) 예수는 그를 뛰어난 ‘복음의 교역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골로 1:23).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주로 구원의 신비에 관한 것이지만, 그 밖에 사도들이 알고 있는 예수의 지상생활과 그의 가르침 역시 복음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사도 10:34-43). 이는 마르코의 복음서 첫 귀절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에 사용된 ‘복음’의 의미이며 ‘기쁜 소식’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신약성서에 씌어진 ‘복음’이란 용어는 '기록된 복음'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2세기에 이 용어를 책의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나(Justin, Apol. 1:66, Dial 10:2) 초대 교회는 항상 오직 하나의 복음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신약성서에도 ‘복음’을 복수로 쓰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4복음서는 한 복음을 4가지 관점에서 쓴 데 지나지 않는 것이며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등으로 이들 복음서의 자기 다른 성격만을 구별해주고 있다.

전례 중에서[편집]

성찬 의식 전에 복음서에서 발췌한 인용 귀절을 봉독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교 의식 전례의 일부를 차지하며 이러한 의식의 중요성은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13세기에는 로마식 미사에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해 미사 끝에 소위 '최후의 복음(Last Gospel)'이라고 하는 요한복음 1:1-14을 읽는 관습이 있었으며, 후에 4복음서에서 발췌해 낸 다른 인용 귀절들이 '최후의 복음'으로서 요한복음 1:1-14을 대체하게 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출처[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