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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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The Crucifixion, 1622년, 제노바에서의 시몽 부에 그림.

예수의 십자가형과 잇따르는 죽음은 기원 후 1세기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복음서마다 예수가 처형된 날과 십자가에서 한 말에서 차이가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보도한다. 기독교인들이 성자, 메시아(그리스도)로 여기는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친 후 성전의 경비병들에게 체포되어 유대인들의 자치적 종교기구인 산헤드린 의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로마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채찍질로 고난을 받았으며,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처형되었다. 이러한 수난에서 십자가형으로 인한 예수의 고통과 죽음은 신학적으로는 구원론속죄와 더불어 그리스도론의 중대한 면모를 보여 주며, 역사적으로는 예수가 로마제국과 종교권력의 결탁에 의해 위험인물로 여겨져 처형된 이야기이다.[1] 기독교의 공통된 성사(성례전)인 성만찬은 이러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성만찬에 임재한 예수와 연합하는 성사이다.

과정[편집]

이스가리옷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예수의 신변을 넘겼고 그 댓가로 은화 30전을 받았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이 끝난 이후 이스가리옷 유다는 로마군 병력들과 같이 예수의 앞에 나타났다. 이스가리옷 유다와 같이 예수에게 찾아온 로마군 병력들은 예수를 체포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압송했다.

그 이후 예수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단지 떠벌이기 좋아하는 인간으로만 판단했을 뿐이라서 예수에게 십자가형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으나 이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하라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압박을 가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예수와 당시 유대인으로 구성된 반로마 반란군 지도자인 바라바를 배심원들의 면전에 불러놓고 둘 중에 누구를 석방할 것인지를 배심원들에게 물었다. 본디오 빌라도는 바라바의 악명이 엄청나게 높은 것을 이용하여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는 것만은 모면하게 해주고 싶었으나 배심원들의 판단은 바라바를 석방시키는 것이였다. 결국 본디오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반란군 지도자인 바라바를 석방시키고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형 집행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되었다. 본디 십자가형을 받게 되면 형을 집행하는 장소까지 해당 범죄자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과정에서 형을 집행하는 로마군 병사들에게 채찍으로 40대 이상 맞은 상태였으므로 중간에 쓰러졌다. 그래서 카르타고 출신의 시몬이 예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다. 매를 많이 맞은 예수는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같이 보기[편집]

사진첩[편집]

각주[편집]

  1. 《기독교사상》 2005년 2월호, 신약성서의 향기, 양권석, 기독교서회.[쪽 번호 필요]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