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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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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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hristianity.svg 기독교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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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基督敎神學, 영어: theology)은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2-3세기에 서서히 학문으로서 틀을 갖추기 시작하여 성서해석을 포함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련된 일체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격별 분류[편집]

기독교 신학은 유대교(헤브라이즘)에서 유래한 유일신 신앙이, 나사렛 예수를 믿는 이들에 의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신앙으로 발전하고, 사도 바울이 그 신앙을 체계화 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는 바울이다. 그 후 성서전통보다는 인간의 종교적 감정과 경험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 이전까지 기독교 신학은 교리를 제정하고, 그에 관해 논쟁하는 교의학 즉 오늘날의 조직신학를 의미했다.

오늘날에는 크게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서본문을 연구하는 성서신학, 성서의 주제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과거 교의학에 뿌리를 둔 조직신학 같은 "이론 신학"이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타학문과의 결합이나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의 신념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시킬 것인지를 논하는 "실천신학"이 있다. "실천신학"에는 기독교 신앙/신학과 교육학이 결합한 기독교교육학, 심리학과 결합한 목회상담학, 조직신학에 갈라져 나온 기독교윤리학이 있으며, 교회의 현실적 과제를 다루는 설교학, 선교학, 예전학 등등이 있다.[1]

신학이란 학문의 정의[편집]

신학은 신을 뜻하는 "theo-"와 학문을 뜻하는 "-logy"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모든 연구이며, 좁은 의미로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2]를 통하여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느님의 구속사에 대한 찬양이다.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신학자의 관점을 다 가지고 있다. 세계와 우주, 자연과 질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보고 느끼고 관찰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신학적 행위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존재로서 그 마음에 종교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3] 인간의 행위가 종교와 연결이 안되는 것이 없다. 인간 모두는 하느님을 직접적으로(성서), 간접적(일반계시)으로 배우는 존재이다. 실제로 성공회 신학자인 존 스토트 신부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와 그분의 창조세계인 자연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말한다.[4]

신학의 본질[편집]

기독교 신학은 철학이 아니며, 종교학도 아니며, 윤리학이나 심리학도 아니다. 신학의 참된 본질은 성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위로자이신 하느님을 바르게 알며, 그 분의 은혜를 찬양하며 그의 목적에 맞는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반틸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을 중심해야 하므로 신학도 하느님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신학의 목적[편집]

기독교 신학은 책상에서의 사색적 활동도, 추상적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의도 아니다. 신학은 기독교인의 삶에서의 투쟁에서 얻어진다.고대교회신학자사도인 성 바울의 신학은 그가 성도의 사귐(사도신조 참조)을 나누던 교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 로마제국이 제국의 유지를 위해 민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도 로마의 평화로마제국황제를 신격화하는 제국신학으로 은폐하는 문제라는 현실속의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석과 저항이었다.[5][6]즉,신학의 목적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상들과 지배질서를 기독교 사상으로 해석하고 극복하려는 것에 있다.

신학의 의의[편집]

신학은 진실로 학문의 가치에 있어서 어떤 학문보다도 더 소중하고 우리 인간에 참된 소망의 학문이다. 신학은 창조와 구속의 하느님을 배우고 그를 증거하기에 귀중한 의미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신학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는 크나큰 기쁨을 누리는 학문이다. 이 감격으로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제자의 삶을 살 가치를 갖게 된다. 마태 28:19-20 “ 죄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신학의 의의는 죄인이 변화되어 창조주를 만나 그 분의 의지에 맞게 창조 세계에서 인류가 하느님의 기쁘신 목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인류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길로 바르게 이끄는 인도자와 구원자의 역할을 주는 것이다.

신학방법(신학을 어떻게 세워가나)[편집]

성서에서의 유추(analogia scripturae)[편집]

신학은 과학적 연구의 학문이 아니며, 신비적인 세계를 서술하는 것도 아니다. 신학은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신 계시로 믿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기초로 그 학문의 타당성을 가지며 성서의 방법에 따라 신학의 본질과 목적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서는 신학의 유일한 원천(fons or principium unicum)이라고 한다.[7] 그러나 구미에 맞는 것만 선택하는 the cafeteria style[8]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그리스도 신앙의 원천은 성서이지 교회가 아니라는 뜻에서 주장한 sola scriptura(오직 성서)는 신학하기의 전제이며, 해석의 시작이다. 바로 성경의 유추는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는 성서해석의 중요한 원리이다.[모호한 표현]

믿음의 유추(analogia fidei)[편집]

신학은 믿음의 학문이다. 물론 기독교는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인 것을 배제하지 않는 종교이지만, 전능하시며 초월하신 분인 하느님을 우리의 이성적 논리로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하느님을 성육신하신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공현(Epiphany)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만나며, 점차적으로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 성서는 믿음을 인간에게 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 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로마서 10:17,표준새번역)

성령의 내적조명(testimonium spirtus sancti internum- John Calvin)[편집]

성령의 조명은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와 교통해 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이다. 인간의 이성과 학문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서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9]

기도(prex)[편집]

기도란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을 이용해서 욕심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다.[10], 지속적으로 겸손하게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훈련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그리고 겸손 마지막으로 기도로서 신학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 신학은 경건한 용어로 말하면 기도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그 분에게 감사와 찬양과 고백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편집]

성서는 그리스도 자신의 신학적인 방법을 보여 준 곳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성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이야기 형식으로 말하는 책이다. R. C. Raymond는 누가복음서 4:16-21, 24:27, 요한복음서 5:46을 근거로 모든 신학적 활동이 최종적으로 그 분에게 이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교의(신조, 신앙고백서)[편집]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교의를 몰라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복음주의 신학자들인 개혁교회마이클 호튼 목사성공회 존 스토트 신부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니케아신조, 사도신조등의 전통적인 교의들은 기독교인성서와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기준과 안내가 된다고 보았다.즉 기독교인이 가톨릭 교인이던, 정교회 교인이던, 개신교 교인이던 교단구분없이 기독교의 교의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성서와 전통에서 일탈되지 않도록 해주는 안전장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11][12]

교의학 재료를 분류하는 방법들의 한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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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콥이 제시한 아래 4가지 틀 가운데 한 가지만 주장하여 신학을 전개한다면 좋지 못하다고 한다.

삼위일체적 방법
사도신경에서 인출, 약점으로 인간론과 구원론이 미흡하다.
분석적 방법
Calixtus-신학의 궁극적 목적인이라고 생각하는 축복에서 시작하는데, 하느님의 영광보다 축복이 더 신학의 목적이 된다.
언약론적 방법
Coccejus, 하느님과 인간의 언약 관계를 중심 강조만 한다. 신론과 인간론 중심
기독론적 방법
계시의 중심이 되지만 신학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왕국개념에 기초된 방법
신인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세우기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종합적 방법
벌콥이 주장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논리적으로 신론에서 종말론까지 통일성을 산출하는 방법이다.
신학방법의 기초
하느님은 존재의 원리(principium essendi)이시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지식의 원천이요 근원이시다.[13] 지식의 외적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externum)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신학자는 자기의 신학적 지식을 인출해야 한다. 지식의 내적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internum)는 신앙이다.

교파 내지는 사상별 분류[편집]

기독교는 성상파괴령을 둘러 싼 대립에서 시작되어 동서 교회가 분열되어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었고, 16세기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로마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로 교단이 구분되었다. 그 후 각 교파별로 서로 다른 교리를 신봉하면서 그에 관한 신학 사상을 정립해 나가게 되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과학의 발달을 비롯한 근현대 사상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신학 사상이 태동하였다. 또한 각 지역별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기독교 신앙/신학을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교파별 신학[편집]

신학사조[편집]

지역별(제3세계) 신학[편집]

읽어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이 성격별 분류는 미국의 상황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경우, 라인홀트 니부어의 활약으로 기독교윤리학이 별도의 학문 영역으로 정립되었다. 또한 목회자가 국민의 정신 건강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의 지원 덕분에 목회상담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2. 요한복음서 1:1
  3. 장 깔뱅[출처 필요]
  4. 존 스토트. 《우리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 브니엘, 207쪽
  5. 《영원한 인류의 고전-신약성서》/정승우 지음/아이세움 刊
  6. 《바울의 첫 번째 복음》/존 도미니크 크로산, 마커스 보그 같이 씀/김준우 옮김/한국 기독교 연구소
  7. 벌코프. 《조직신학》
  8. 서양식 식당인 cafeteria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는 서양사람들의 식습관에서 따온 용어
  9. 모든 성경은 하나 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 디모데후서 3:16, 표준새번역
  10. 《주의 기도》. 한국신학연구소
  11.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김재영 역,나침반
  12. Anglican Journal
  13. 마 11:27, 고전 2:10 이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