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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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카라치가 그린 연옥

연옥(燃獄, 라틴어: Purgatorium)은 기독교의 내세관 중의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일시적인 정화를 거치는 상태를 말한다.[1]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세상을 떠났으나, 세상에서 지은 경죄나 용서받은 사죄(死罪)에 대한 잠벌을 미처 보속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지옥에 가지 않고 연옥에 가서 일정기간 동안 단련을 받는다. 그리고 연옥에서의 단련 기간을 채우고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지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신학적 개념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초기 기독교 문학에서도 입증되었다. 하지만 지리학적으로 존재하는 장소로서의 연옥에 대한 시적 개념은 대체로 중세 기독교인들의 경건함과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2]

연옥이라는 개념은 특히 라틴 전례 가톨릭교회에서 특히 받아들이고 있으며(동방 가톨릭교회에서는 연옥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마지막 정화라고 부른다), 앵글로 가톨릭 전통의 성공회 고교회파와 루터교 고교회파에서도 대체로 이를 수용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성찬예배 봉헌을 통해 죽은 이들의 영혼의 처지가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정교회 신자들, 특히 수도자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다.[3] 유대교 역시 사후 정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이를 게헨나라고 표현하는데, 게헨나에 대해 설명할 때 연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4]

역사[편집]

연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160년과 1180년 사이이지만[5], 장소의 개념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관습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습이었으며, 심지어 유대교에서도 이와 같은 관습이 전해지고 있다.[6] 초기 기독교에서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면 그 영혼이 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습이 있는데, 가령 중세 중국의 불교도들은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제물을 바치고 고행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2] 연옥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믿음은 과거 유대교가 바쳤던 위령 기도 관습에서 기원한다.[7] 유대교에서는 죽은 이를 위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며 그들의 종착지로 들어갈 때 도움을 받게 된다고 믿고 있다.[2] 또한 가톨릭교회의 연옥에 대한 믿음 성경성전의 여러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저질렀던 모든 행실에 맞게 내세에서 일시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믿음은 그리스어로 쓰인 초기 기독교 문헌에도 나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하데스에 대한 그리스인과의 대화》이다. 이 문헌은 과거에는 요세푸스(37 – c. 100)가 쓴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히폴리토(170–235)가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잉글랜드 학자 존 헨리 뉴먼은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하기 전에,[8] 연옥 교리의 근거는 고대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교리의 일관된 핵심은 본래 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9] 가톨릭교회는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유래한 신앙의 한 부문으로 여긴다. 초기 교부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리게네스는 “구원받게 되는 사람은 불로써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불은 죄와 속된 것이라는 불순물을 모두 불태우고 순금만 남게 한다고 덧붙였다.[10] 성 암브로시오는 일종의 불의 세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세례는 천국의 입구에 있으며 세상 끝날 때 모든 사람이 통과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11] 성 대 그레고리오는 연옥에 대한 믿음은 진실로 확인된 것으로 규정했으며, 따라서 마땅히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연옥의 불은 대죄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소죄만 정화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12] 다시 말하면 가벼운 죄에 해당하는 소죄를 지은 사람은 연옥에 가서 불로써 정화되겠지만, 대죄를 지은 사람은 연옥이 아니라 영원히 지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세기에 걸쳐 가톨릭 신학자들은 연옥에 대한 교리를 발전시켜 왔으며, 결국 제1차 리옹 공의회(1245)와 제2차 리옹 공의회(1274), 피렌체 공의회(1438–1445),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등에서 공식 교리로 규정짓게 되었다.[2][13]

기독교[편집]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와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성향을 띈 일부 기독교파들은 연옥 교리를 인정하는 반면에 대다수 개신교파와 동방 정교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연옥 교리의 주요 근거인 마카베오기 하권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에서는 오직 성경 교리에 입각하여 연옥을 인정하지 않다. 나중에 동방 정교회에서는 연옥을 반드시 필수적인 교리가 아니라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편집]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이들이 필수적으로 거치는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고 있다.[14] 이따금씩 연옥을 정화 과정이라기 보다는 장소로서의 개념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시간과 더불어 물리적 장소로서의 연옥에 대한 개념은 가톨릭 교리에 속하지는 않는다.[15]

천국와 지옥[편집]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각 사람은 죽자마자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대가를 치르는 개별 심판(사심판)으로 그 불멸의 영혼 안에서 영원한 갚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대가는 정화를 거치거나, 곧바로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 곧바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이다.[16]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영원한 행복의 낙원으로 그려지는 천국에서 지복 직관으로 하느님과 얼굴을 있는 그대로 맞대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유의지에 따라 하느님에게 반항하여 죽을 죄를 짓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고집한 사람들은 죽은 후에 지옥이라 불리는 상태에 도달하는데, 이는 하느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의미하며 종종 영원한 불 속에서 고통받는 장소로 그려진다. 여기서 묘사된 불은 종종 은유적 표현으로 여겨지곤 한다.[17]

역할[편집]

가톨릭교회의 내세관은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며, 이 외에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의 제3의 상태를 인정하고 있다. 어떤 영혼들은 천국이라는 상태로 곧바로 들어갈 만큼 완전히 정화된 상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옥에 갈 정도로 죄를 많이 지었거나 대죄를 지은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하느님과 일치하기로 예정된 영혼들은 먼저 연옥이라는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옥에서 영혼들은 지복 직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성화를 위해 이승에서 미처 다 기워갚지 못한 보속을 마저 치른다. 모든 범죄에는 이에 상응한 벌이 다르게 마련이며 그 벌은 현세에서나 내세의 연옥 혹은 지옥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다.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원죄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자신이 지은 죄와 그에 따른 벌까지 사(赦)함을 받지만, 세례성사 이후에 지은 죄는 (하느님과의 화해 또는 하느님에게 고백한다고 표현되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을 뿐 그 벌은 용서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이처럼 죄를 지은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의 행위로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악의 길에서 벗어나 진실로 성화될 수 있도록 기도나 자선, 극기, 희생 등의 보속을 함으로써 벌을 갚도록 한다.

그런데 보속을 정성껏 하지 않거나 모자라게 한다면 죽어서 그 벌이 남게 되는데 그 벌을 잠벌(暫罰)이라고 부른다. 이 잠벌은 연옥에서 마저 기워 갚아야만 비로소 천국에 갈 수 있다. 한편 지옥에서 당하는 벌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영벌이라고 하지만, 현세나 연옥에서 받는 벌은 유한하며 지옥의 영원한 벌에 비기면 ‘잠시의’ 벌에 지나지 않으므로 잠벌이라고 표현한다.

[편집]

가톨릭교회는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죄를 원죄, 인간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를 본죄라고 부른다. 그리고 본죄는 그 경중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18] 대죄(죽을죄)는 ‘중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완전히 의식하면서, 고의로 저지른 죄’로서,[19]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 지위의 상실을 초래한다. 만일 대죄가 뉘우침과 하느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20] 이러한 근거는 성경성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죄(용서받을 죄)는 사랑을 약화시키고, 세상 재물에 대하여 지나친 애착을 보이며, 윤리적 선의 실천과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며, 잠벌을 받게 한다. 고의로 짓고도 뉘우치지 않은 소죄는 점점 대죄를 지을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소죄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지는 않는다. 소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적으로 속죄할 수 있다. 소죄는 성화 은총,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사랑과 영원한 행복을 박탈하지는 않는다.[21]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세례성사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22] 또한 세례받은 이후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는다.[23]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른다.[24]

고통과 불[편집]

연옥에서의 보속은 잠시 동안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 것으로 치르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지옥의 영벌처럼 불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25] 교리적으로 연옥의 고통이 지복직관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인 실고(失苦) 외에도 감각적 고통인 각고(覺苦)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압도적으로 각고 역시 연옥의 고통에 포함된다는데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몇몇 교부들은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3장 10-15절을 가벼운 죄의 찌꺼기까지 모두 불타 없애 영혼을 정화시키는 중간 상태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25]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대사[편집]

물리적 장소로서의 개념[편집]

가톨릭교회의 입장[편집]

주석[편집]

  1.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항
  2. Encyclopædia Britannica: Purgatory in world religions: "The idea of purification or temporary punishment after death has ancient roots and is well-attested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The conception of purgatory as a geographically situated place is largely the achievement of medieval Christian piety and imagination."
  3. Olivier Clément, L'Église orthodoxe. Presses Universitaries de France, 2006, Section 3, IV
  4. Gehinnom
  5. Megan McLaughlin, Consorting with Saints: Prayer for the Dead in Early Medieval France (Cornell University Press 1994 ISBN 978-0-8014-2648-3), p. 18
  6. 마카베오기 하권 12,42-44 참조.
  7.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2항
  8. Newman was working on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since 1842 (Encyclopædia Britannica 1911, i.e. Encyclopaedia Britannica Eleventh Edition, and sent it to the printer in September 1845 (Ian Turnbull Kern, Newman the Theologian -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90 ISBN 9780268014698, p. 149). He was received into the Catholic Church on 9 October of the same year.
  9. John Henry Newman,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chapter 2, section 3, paragraph 2.
  10. John Henry Newman,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chapter 2, section 3, paragraph 2.
  11. Sermons on Ps. 117(116), Sermon 3, 14-15. See http://www.documentacatholicaomnia.eu/02m/0339-0397,_Ambrosius,_In_Psalmum_David_CXVIII_Expositio,_MLT.pdf#page=16
  12. Dialogues, Book 4, Ch. 39. See http://www.documentacatholicaomnia.eu/01p/0590-0604,_SS_Gregorius_I_Magnus,_Dialogorum_Libri_IV-De_Vita_et_Miraculis_...,_LT.pdf#page=159
  13. Denzinger, The Sources of Catholic Dogma (Enchiridion Symbolorum), 456, 464, 693, 840, 983, 998.
  14.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1031항
  15. 1999년 8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일반 알현 설교
  16. 가톨릭교회 교리서 1021-1022항
  17. Cf. David L. Schindler, Love Alone Is Credible (Eerdmans 2008 ISBN 978-0-8028-6247-1), p. 222
  18. 가톨릭교회 교리서 1854항
  19. 가톨릭교회 교리서 1857항
  20. 가톨릭교회 교리서 1861항
  21. 가톨릭교회 교리서 1863항
  22. 가톨릭교회 교리서 1263항
  23. 가톨릭교회 교리서 1469
  24.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1031항
  25. Catholic Encyclopedia on Purga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