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니케아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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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caenum Primum)는 325년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터키의 이스탄불) 근교의 고대 그리스의 작은 식민도시 니케아(Nicaea)에서 열린 공의회이다. 니케아 공회의, 제1회 세계회의 또는 제1회 니케아 공회의라고도 한다.
니케아 공회의는 기독교 최초의 세계적 회의(동서 양교회의 총회의)이라고도 하는 시각이 있으나[1],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첫 공의회또한 최초의 기독교 전체의 회의로 볼 수 있다.
목차 |
동기 [편집]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국가통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의 세력을 이용하려 했으나 당시의 교회 내부에는 많은 교리의 대립이 있어 수습이 곤란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전 교회의 사교(司敎)·사제(司祭) 약 300명을 니케아에 소집하여 대회의를 열었다.[1]
공의회의 쟁점과 교파 [편집]
회의 내용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 즉 아버지인 하느님과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의사내용(議事內容)은 아리우스파, 알렉산드로스파, 중간파(오리게네스 주의파)의 3파로 나뉘어 논의되었는데, 난항을 거듭한 결과 아버지와 아들을 동질(호모우시오스)로 보는 니케아 신조(오늘날의 니케아 신조와는 다소 다름)가 채택되어 아버지와 아들을 이질로 보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삼아 일단 결말을 보았다.[1]
공의회 결과 [편집]
그러나 이 회의로 교리논쟁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후에 더욱 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회의에 있어서 황제의 권력이 교회내 의 문제에 개입하는 악례(惡例)를 남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1]
주석 [편집]
참고 자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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