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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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약 155년~약 230년) 또는 터툴리안(Tertulian)은 기독교교부이자, 평신도 신학자이다.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라틴어 문체는 중세교회 라틴어의 표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생애[편집]

터툴리안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총독관저의 백부장이었다.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그는 195년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터툴리안은 교회사 최초로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삼위일체(Trinity)를 비롯한 982개의 라틴어 신학 용어를 만들어냈다. 아프리카의 제1의 신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신학자[1]인 그는 치프리아누스(키프리안) 주교의 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2]

신학과 이단 배척[편집]

터툴리안은 기독교를 변증한 기독교 변증가로서,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무죄를 변증한다." 등의 문장으로 박해가 교회를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도덕성이 민감했던 그는 로마제국들을 조각하는 교우들에게 '군신 마르스를 조각할 수 있다면, 찬장도 만들 수 있다'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충고했고, 재혼 및 박해를 피한 도피, 배교, 살인, 간음을 죄로 규정했다. 또한 예수십자가에서의 수난을 십자가의 수치라고 말하는 마르키온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수치는 기독교 신앙에 필수적이다. 네가 하느님에게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는 유익하다.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할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하느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다. 묻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확실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의 인성을 부정[3]하는 이단종파인 마르키온주의에 저항하였다. 터툴리안의 도덕적인 민감성은 그를 보편교회(Catholic church)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카르타고 교회가 배교자들을 받아들이고, 신자 수에 비해 도덕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교회성령의 교회이지, 죄인들의 공동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실례로 교회사학자중에는 터툴리안이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고 성격이 강한 신학자였다면, 키프리안은 신학적으로 깊지 않은 대신, 온화한 신학자였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4] 하지만 터툴리안은 가정적인 사람이어서 부부는 고난과 기쁨을 같이 하며, 시편과 성가를 같이 부르며, 경쟁하다시피 하느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보았다.

같이 보기[편집]

저서[편집]

  • 《그리스도의 육신론》
  • 《우상숭배론》
  • 《호교서》
  • 《이단자 규정》
  • 《부인에게》

각주[편집]

  1. 《기독교사상》2005년 2월호,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훼손시키는 부'-카르타고의 시프리안, 이은혜, 대한기독교서회.
  2. 《내가 사랑하는 교부》/이원오 외 공저/분도출판사.
  3. 마르키온은 예수가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일 뿐이라는 가현설을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는 마르키온에 대항,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지음/작은 행복.
  4. 《기독교사상》2005년 2월호,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훼손시키는 부'-카르타고의 시프리안, 이은혜, 대한기독교서회.

출처[편집]

이 문서는 《기독교 사상2005년 2월호,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훼손시키는 부'-카르타고의 시프리안, 이은혜, 대한기독교서회와 《내가 사랑하는 교부》/이원오 외 공저/분도출판사를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