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텐블로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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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텐블로 칙령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 : 1685년 10월)은 프랑스의 루이14가 반포하였다. 낭트 칙령(1598)의 폐지로 잘 알려져있다.

배경[편집]

퐁텐블로 칙령의 목적은 개신교를 탄압 억압하기 위해 예수회가 기존의 낭트칙령을 무효화 시키기 위해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를 압박해 반포했다. 루이 14세예수회 고해 신부인 페르 라 쉐즈(Pere La Chaise)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고해실에서 자기 며느리와 잠자리를 나눈 루이 14세의 약점을 붙잡아 퐁텐블로 칙령의 서명을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국왕이 오랫동안 썩 내켜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그렇게 진척시키기 전에, 나는 많은 위협과 약속들을 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마침내 내가 그를 이겼다. 그가 자기 며느리와 잤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날 모든 이단들을 희생시킬 수 있도록, 그가 직접 서명날인한 증서를 내게 주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해서 나는 결코 그를 면죄해 주지 않을 것이었다.[1]

낭트 칙령은 개신교도인 위그노에게 광범위한 종교적 자유를 주었으며 개인의 종교적 믿음에 대하여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 첫 사례다. 앙리 4세는 위그노 전쟁을 끝내고 개신교와 가톨릭 교도간의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낭트칙령을 반포했었다.낭트 칙령은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이외에도 칼뱅주의 개신교인 위그노의 종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낭트칙령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예수회는 낭트칙령을 무효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루이 14세를 움직여 이 퐁텐블로 칙령을 반포하여 낭트칙령을 무효화 시킨다.

칙령의 내용[편집]

  • 프랑스 전역에 남아있던 프로테스탄트 모임처들의 파괴와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전면적인 금지
  • 신체와 재산 압류형에 처한다는 조건으로 개인적인 예배까지도 금지 시킴.
  • 15일내 프랑스로부터 모든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을 추방시킴
  • 모든 프로테스탄트 학교들의 폐교
  • 부모들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자녀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을 금지시킴
  • 각 사건마다 500리브르의 형에 처한다는 조건으로, 자녀들에게 성당 신부들에 의해 세례받고 로마 가톨릭 종교 아래서 양육받게 하도록 그들에게 명령함.
  • 4달 이내에 프랑스로 돌아오는데 실패한 모든 프로테스탄트 피난자들의 부동산과 동산을 몰수함.
  • 프랑스로부터 피난하고자 하는 행위가 발각된 모든 남자들에 대한 종신 갤리형과 모든 여자들에 대한 종신형 선고.[2]

칙령의 영향[편집]

이 칙령으로 인해 프랑스내 개신교인들 수십만명이 가톨릭 교회의 탄압을 피해 유럽 각국(스위스, 영국)등지로 탈출한다. 영국은 낭트 칙령의 폐지로 프랑스로부터 이주해오는 약 2만의 위그노를 받아들여 상공업을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프랑스 산업은 큰 타격을 입게된다. 가톨릭 교회는 낭트 칙령의 폐지를 환영하며 선대왕이 한세기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을 루이 14세가 해냈다며 찬사를 바쳤다. [3]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M.F.Cusack《The Black Pope》(London:Marshall,Russell & Co, 1896)P403
  2. Samuel Smiles《The Huguenots,(New York:Harper & Brothers Publishers,1868)》P153
  3. 정원철《17세기 망명 위그노의 삶의 궤적과 정체성》(고려대학교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