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의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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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스페인어: Catalina de Aragón, 1485년 12월 16일 ~ 1536년 1월 7일)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사녀이자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이다. 또한 잉글랜드의 메리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편집] 생애
1501년 캐서린은 헨리 7세의 맏아들 아서와 정략결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혼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심한 병에 걸렸다. 캐서린은 가까스로 회복했으나 아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교황 율리오 2세는 캐서린이 아직 처녀임을 인정해 이전의 혼인을 무효화시켰고, 캐서린은 헨리 7세의 둘째 아들인 헨리와 다시 결혼했다.
비록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으나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금슬은 좋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캐서린이 1516년 메리 공주를 낳고 나서 유산을 거듭하다 폐경기를 맞자 헨리 8세는 왕위 후계자, 즉 아들이 없음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캐서린의 시녀 앤 볼린과 사랑에 빠진 헨리 8세는 결국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캐서린이 자신의 형과 혼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 결혼이었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캐서린의 조카인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던 교황은 이를 거절했다. 헨리 8세는 교황과의 첨예한 대립 끝에 성공회를 건립하고 스스로 성공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31년 헨리 8세는 캐서린과 별거에 들어갔다. 1533년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캐서린은 딸 메리와 헤어져 변경으로 내쫓겼다. 신실하고 위엄있는 왕비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그녀는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153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캐서린은 이 일방적인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앤 볼린이 대관식을 치르고 나서도 문서나 편지에도 왕비 캐서린(Catherine the Queen)이라고 서명했다. 말년에 앤 볼린과 헨리 8세의 사이가 급속도로 틀어지자 캐서린은 왕이 자신을 다시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던 캐서린은 딸 메리 1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편집] 바깥 고리
| 전 임 요크의 앨리자베스 |
제36(41)대 영국의 왕비 1509년 - 1533년 |
후 임 앤 볼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