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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特別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ref>서울특별시가 대한민국 법률 상 수도인지는 이론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일부개정 1995.12.6 법률 5000호)에 따라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인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관습 헌법"에 따라 서울특별시가 수도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의견대로라면 결국 역사적으로 수도였던 서울은 강남을 제외한 강북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ref>이다. [[1394년]] [[조선 왕조]]의 정도(定都) 이래로 600년 이상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면적은 대한민국 전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한반도 인구의 약 1/7인 약 1,045만 명이 살고 있다. [[한강]]이 도시 중앙부를 지나며,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동서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간의 거리는 30.3km이며, 그 넓이는 605.27km²이다.<ref>[http://www.seoul.go.kr/v2009/seoul/review/general/present.html 일반현황], 서울특별시</ref>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된 국제적인 대도시이다.
'''서울특별시'''(—特別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ref>서울특별시가 대한민국 법률 상 수도인지는 이론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일부개정 1995.12.6 법률 5000호)에 따라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인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관습 헌법"에 따라 서울특별시가 수도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의견대로라면 결국 역사적으로 수도였던 서울은 강남을 제외한 강북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ref>이다. [[1394년]] [[조선 왕조]]의 정도(定都) 이래로 600년 이상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면적은 대한민국 전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한반도 인구의 약 1/7인 약 979만 명이 살고 있다. [[한강]]이 도시 중앙부를 지나며,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동서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간의 거리는 30.3km이며, 그 넓이는 605.27km²이다.<ref>[http://www.seoul.go.kr/v2009/seoul/review/general/present.html 일반현황], 서울특별시</ref>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된 국제적인 대도시이다.


== 지명 ==
== 지명 ==

2011년 6월 7일 (화) 09:48 판

틀:대한민국 대도시 정보

서울특별시(—特別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1]이다. 1394년 조선 왕조의 정도(定都) 이래로 600년 이상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면적은 대한민국 전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한반도 인구의 약 1/7인 약 979만 명이 살고 있다. 한강이 도시 중앙부를 지나며, 경기도인천광역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동서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간의 거리는 30.3km이며, 그 넓이는 605.27km²이다.[2] 1986년 아시안 게임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된 국제적인 대도시이다.

지명

"서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학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수도(首都)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였던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3]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이 원래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金城)으로도 표기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쇠[鐵]-벌[源]"의 뜻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합의된 바가 없으며, 그 발음을 알수 있게 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 후, "셔블"이라는 표기가 등장한 이후이다.

서울의 영어표기 Seoul은 본격적으로 18-19세기말 한반도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가 프랑스어로 표기한 Sé-oul(쎄울)에서 비롯되었다. 아,에,이,오,우 등 5가지 모음만 가진 프랑스어 구조상 '서'와 근접한 발음을 위해 'Se'로 표기하고 '울'은 oul로 하여 붙인 명칭이 'Seoul'이었기에 음절별로 엄밀히 구분하면 'Se-oul'이 되며 '서'를 'Seo'로 표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개정된 한글의 로마자표기법에서는 '어'를 'eo'로, '우'는 'u'로 표기하기로 하였기때문에 많은 이들은 서울의 영문표기를 음절별로 구분하면 'Seo-ul'인것으로 인식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스페인 출신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발표때 '쎄울' 이라고 외친바 있다.[4]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와 같은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의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공식 지정하여 현재 사용중이다. [5]

서울이라는 단어가 1920년 부터 발행된 동아일보 신문 위에 THE DONG-A DAILY, SEOUL 이라고 적혀있는것으로 봐선 이전에 서울이란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인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20~ 동아일보)

그밖에도 단단한 '쇠'와 울타리의 '울'이 합처진 '쇠울'이 변형되어 '서울'로 정착이 되었다는 설[6]이 있으나, 조선 초기 문헌에서 서울을 '셔블'로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현대 한국어의 발음에서 유추한 민간어원설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서울을 조선 시대의 명칭인 한성을 따라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청[*])으로 적어왔다. 최근, 2005년 1월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서우얼[*])을 서울의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개정[7]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해당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방송인 조선의 소리 방송의 중국어 프로그램에서는 2009년 현재까지도 '한청'으로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성(漢城) 이외에도 경부(京府), 경성(京城), 경도(京都)[8], 경사(京師) 등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볼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존재한다. 이는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서울"이 원래는 특정한 도시가 아닌, 나라의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19세기 후기에 접어들면서 대체적으로 경성(京城)이라는 표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6년까지 공식적인 표기로서 경성이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경성이란 표기는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서울의 비칭(卑稱), 혹은 멸칭(蔑稱)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기피되고 있으나, 일제가 서울이라는 말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경성이라는 표기를 강요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출처 필요]

또한, 근대에 존재했던 서울의 한자 음차 표기로서,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사용한 표기인 徐蔚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서 해당 표기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것이 일반적인 표기였다고 보기는 힘들다.[출처 필요]

서구의 고지도에서 서울은 보통 중국측에서 한성을 부르던 발음에 따라 Hantsing, Hanxing 등으로 표기되다가, 18세기 후반 이후 현지의 발음을 따라 Séul, Seoul 등의 표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출처 필요] 그리고 이 표기가 오늘에 이른다.

또 하나의 가설은 서울이 산으로 둘러쌓여 눈이 오자 눈이 울타리의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설울이라고 불리다가 다시 서울로 바뀌었다는 가설인데, 민속적으로 내려오는 설화와 같은,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역사

수선전도 - 서울의 옛 지도

고생대 때는 서울이 바다였으나 중생대 때부터 육지가 되었다. 서울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있다. 삼국시대에는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백제의 수도였으며 삼국의 주도권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1067년 (고려 문종 21) 때 3경(三京)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되면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조선 태조1392년 개경(개성)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한양(漢陽)으로 천도했다. 당시 서울로 도읍을 정한데에는 풍수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에는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四大門) 안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하여 도성 밖 10리(약 4km)까지가 해당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창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 및 이용성이 매우 심각하게 왜곡·훼손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다시 서울로 고쳐지고 1946년 9월 28일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9] 이후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으나 9월 28일에 다시 수복을 하였고 1.4 후퇴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지만, 1951년 3월 14일에 두번째로 서울을 수복하고 재건과 경제 발전을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의 범위는 20세기 초까지 종로구, 중구, 용산구 정도로 현재 흔히 말하는 한강 이북의 강북 일부에 불과했으나 1936년, 1949년, 1963년, 1973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인접한 경기도 지역 일부를 편입하는 형식으로 현재와 같은 규모로 성장하였고, 1995년 3월 1일 광명시의 일부분이 금천구에 편입된 것[10]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울 인근에 위치한 위성도시들의 성장으로 수도권을 형성, 거대한 도시 구조가 되었다.

지리

서울(한성부) 18세기 무렵 지도
한강양화대교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
파일:Seoul-Yeouido.at.dawn-01.jpg
여의도 야경

북위 37° 33′,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 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km²이다. 한강이 도시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흐르며, 도시의 중심에는 남산, 외곽은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우면산 등이 경기도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형

도심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1]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1]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1]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1]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의 접촉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관악산(629m)이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아차산이 있다.[11]

임야

서울의 임야면적은 157.35km²(2008년 기준)이다.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km², 관악구에 17.53km², 강남구에 16.11km²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12]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13]

한강과 하천

강북과 강남 사이에는 남산 남쪽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 하류가 지나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와 잠실은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이 섬은 제방을 쌓아 신흥 아파트 단지가 되어 새로운 주택지로서 발달되었다.한강물은 광장·뚝섬·노량진, 멀리는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서울의 음료수·공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11]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부리도의 남쪽 물길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14]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2030년 완성을 목표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계획이 수립되어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5]

한강 파노라마. 좌측에 마포대교, 우측으로 원효대교가 보인다.

지질

서울의 지반은 주로 중생대 말기에 형성된 담홍색의 화강암고생대 이전에 이루어진 화강편마암의 두 종류로 되어 있다. 화강암은 서울의 동북부와 관악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화강편마암은 주로 남서부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경계선은 대체로 북아현동에서 서소문, 남산 서쪽을 돌아 한남동과 행당동을 지나고 있다.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16]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16]

기후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8](쾨펜의 기후 구분 Dwa)[19]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다만 예전 평년 기준인 1961년부터 1990년의 통계에 따른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3.4도였으나, 평년 기준이 1971년부터 2000년으로 바뀌면서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예전에 비해 0.9도 오른 영하 2.5도가 되었고 일부 기상학자들은 이 통계를 반영해 서울의 기후를 온대 하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wa)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0][21][22][23] 서울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에서 온대 하우 기후로 변화하였다고 주장하는 집단은 도시화의 급격한 진행이 기후 변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24]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비교적 큰 대륙성 기후이다.

서울 (1971-2000)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출처: [17]

계절

창덕궁가을 풍경

전체적으로 여름겨울이 길고, 가을이 짧다. 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0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계속된다. 겨울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계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기온

최근 30년(1971년~200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2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5.4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2.5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7.9 °C로 비교적 크기 때문에 겨울은 몹시 춥고 여름은 무더운 대륙성 기후이기도 하다.[21]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도심부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4.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16]

강수량

최근 30년(1971년 ~ 200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44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09.2mm, 겨울철에 70.1mm로 여름철 강수량이 연 강수량의 60.2%를 차지할 정도로 여름철에 강수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21]

바람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환경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16]

인구

천도한 후인 태종때 인구는 10만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명 선을 유지하였다.[25]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서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²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²,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²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²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²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²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²으로, 1949년에는 136.05km²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km²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²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²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²,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²,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²,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²,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²이 되었다.

이렇게 끝도 없이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²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만들어진 분당·일산·평촌·중동·교하신도시·판교신도시 등 신도시 이주에 의한 것이다.[26]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²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총 인구는 10,464,051명, 총 세대수는 4,116,660가구, 인구밀도는 17,289명/km²으로 대한민국 도시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27]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서울 인구의 1/4이 학생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고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 [28]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인구밀도(명/km²) 세대당 인구(명)
1949년 1,418,025 272,314 - 5.21
1955년 1,574,868 259,660 - 6.07
1960년 2,445,402 446,874 - 5.47
1970년 5,433,198 1,096,871 - 4.95
1980년 8,364,379 1,849,324 13,774 4.52
1990년 10,612,577 2,820,292 17,532 3.76
1995년 10,595,943 3,448,124 17,491 3.06
2000년 10,373,234 3,540,492 17,132 2.91
2005년 10,297,004 3,871,024 17,009 2.63
2009년 10,464,051 4,116,660 17,289 2.48
자료:서울시 통계연보[29]

행정 구역

서울특별시에는 2009년 12월 31일 현재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이 있다.[30] 서울특별시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2009년 1월 17일 현재 48개 지역구로 나뉘어져 있으며 거주 인구만을 기준으로 하면 상한 31만 2천명, 하한 10만 4천명 으로 1개의 지역구를 나누었다.

자치구
파일:Seoul District Map.png
서울특별시의 자치구

주요 기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정부중앙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경제

삼성, LG, 현대, SK 그룹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2007년[31] 국내총생산
(10억원)
사업체 수
(개소)
은행예금
(10억원)
내국세
(10억원)
의료기관
(개소)
자동차수
(천대)
대학교
(개소)
전국 581,516 3,131,963 512,419 82,226 44,029 13,949 180
서울 127,175 735,258 259,355 35,436 12,396 2,691 42
집중도(%) 21.87 23.48 50.61 43.1 28.15 19.29 23.33

서울에 본사를 둔 주요기업 소개

  • 삼성 - 전자, 중화학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서초구 서초동 1320-10)
  • LG - 1947년 창업한 한국의 전자 / 화학 분야 개척 기업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20, LG 트윈 타워)
  • 현대자동차 - 세계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231)
  • SK
  • 롯데
  • 포스코

공업

서울의 공업은 1919년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2]

상업

서울의 상업은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 [33]

업무 중심 지구

교육

국립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를 비롯한 국·공립 대학과,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등 다수의 명문 사립 대학들이 소재하고 있다.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대원외고, 경기고, 서울고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 명문고등학교도 다수 위치하고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일부를 가리키는 '서울 8학군'이라는 명칭은 한국의 열성적인 사교육문화를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대학 41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 1개교, 산업대 1개교, 전문대 12개교 등이 있다. [34]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보육 시설이 더 많이 요청되고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보육 포털을 운영하여 보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학교 · 학생 · 교직원 현황 (2008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일반계)
고등학교
(전문계)
전문대학 교육대학 대학교 대학원 기타학교 합계
883개교 578개교 369개교 225개교 77개교 10개교 1개교 37개교 344개교 60개교 2,584개교
82,144명 633,486명 365,579명 297,663명 64,279명 65,940명 2,345명 440,846명 131,707명 357,697명 2,441,686명
6,630명 31,674명 26,520명 18,757명 5,657명 1,526명 163명 21,285명 2,305명 3,901명 112,418명
자료 : 서울교육통계연보[35]

교통

승용차와 대중교통인 지하철, 버스, 택시가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서울역서울고속버스터미널,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주변, 강남역·잠실역·영등포역·신촌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그 외 자가용이 26.3%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도로 교통

동부간선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제1·제2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버스

서울의 버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 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주고 있다.

택시

서울의 택시

서울에서 택시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36],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37], 1992년에는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차례로 선을 보였다[38]. 택시는 도로 교통의 발달과 같이 성장하였으며, 원하는 곳에서 타고 내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다른 대중교통에 비해서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택시기본요금은 2400원이다.

철도 교통

서울역.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역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역에서는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도시 철도

서울 지하철 2호선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현재 코레일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일부 노선은 코레일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수상 교통

과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항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한강 유람선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39][40]

수상 택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도로 교통에 비해 빠른 소요시간과 정시성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상수요의 0.1%도 안되는 이용률 때문에 큰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39][40]

항공 교통

김포국제공항

일본, 중국의 일부 국제선을 제외하고,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도심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문화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서울에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 종합 운동장, 목동에 목동 운동장, 성산동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있다. [34]

박물관, 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도서관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그 외에도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 [34]

공연 시설

파일:Seoul-Sejong.Art.Center-01.jpg
세종문화회관

방송사

  • 한국방송공사 (KBS) - 국가가 출자한 공영 방송사 (여의도)
  • 문화방송 (MBC) - 특수 공공법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공영방송사 (여의도, 경기 일산)
  • 한국교육방송공사 (EBS) - 교육 목적의 공영 방송사 (강남구 도곡동)
  • SBS - 주식회사 형태의 지역 민영 방송사 (양천구 목동)
  • YTN - 정부출자기업 형태의 보도 전문 방송사 (중구 남대문로 5가)

신문사

서울의 도심 지역에는 대형 종합 신문사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중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 종로구에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마포구에는 한겨레가 위치하고 있다.

  • 조선일보 -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일간지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 동아일보 - 1920년 민족 자본으로 창간된 일간지 (종로구 세종로 139)
  • 세계일보 ㅡ 1989년 2월 1일, 통일신령협회(통일교)에서 창간한 신문이다. (금천구 가산동 550-15)
  • 서울신문 - 1904. 7. 18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를 근간으로 하는 신문사이다. ( 중구 세종대로 124 )
  • 중앙일보 -
  • 한겨레
  • 경향신문
  • 한국일보
  • 국민일보 - 기독교 계통의 신문사이다.
  • 문화일보 - 유일한 석간신문이다.

유적지

  • 서대문 형무소 -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서울에 세운 형무소이다.
  • 암사동 선사유적지 - 선사 시대의 주거 유적지이다.
  • 풍납토성 -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유적이다.
  • 서울 성곽 - 조선 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이다.
  • 동관왕묘(동묘) -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 사직단 -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 환구단 -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 터이다.
  • 종묘 - 조선 시대 왕가의 신위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고궁

  • 경복궁 -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며, 조선의 정궁이다.
  • 창덕궁 -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창경궁 -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창덕궁과 붙어 있다.
  • 경희궁 - 조선 시대의 궁궐 중 하나이다. 내부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 덕수궁 -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고종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이 열렸던 곳이다.

서울시티투어버스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명소

파일:Seoul-Namsan-N.Seoul.Tower-01.jpg
N서울타워 야경
  • 남대문 시장 - 서울의 대표적 종합 재래 시장이다.
  • 남산 한옥마을 - 한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대학로 - 문화 예술의 거리로 음악, 연극 등의 공연 문화가 활발한 곳이다.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 롯데월드 - 잠실에 있는 테마파크이다. 석촌 호수와 닿아 있다.
  • 명동 - 서울의 중심 번화가이다. 쇼핑, 패션의 거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삼청동 - 전통 한옥과 카페, 갤러리가 있는 거리이다.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다.
  • COEX(컨벤션 센터) - 무역센터와 인접한 종합 전시관이다. 근처에 대한민국 최대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본사가 있다.
  • N서울타워 - 남산의 정상 부근에 있으며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YTN 언론이 소유중이다.
  • 63빌딩 - 여의도에 있는 고층 빌딩으로 전망대, 영화관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이태원 -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거리로 외국의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식당들로 유명하다.
  • 인사동 - 서울의 전통 문화 거리이다. 화랑(갤러리), 전통 상품 상점, 전통 음식점 등으로 유명하다.
  • 강남역 사거리 - 한강 이남 지역의 최대 번화가이다. 주점과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 디지털미디어시티 - 서울 서북권에 위치한 미디어&엔테테인먼트 관련 업무지구이다. 주요 방송사가 입주할 예정이며, 창의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이 있다. 줄여서 DMC(Digital Media City)로 불리며, 120층이 넘는 버즈 칼리파에 이은 세계 2위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 타임스퀘어 - 30만 m²(축구장 40개 넓이)의 국내 최대 복합 쇼핑공간이다. 타임스퀘어 내 CGV영화관은 세계 최대크기의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이 있다.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 442)

공원

스포츠 시설

종교 시설

주요 의료 기관

  • 서울대학교병원 - 대한민국 의학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온 기관이다. (규모:1626병상)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 1885년 미국 선교의사 알렌(Dr. H. N. Allen)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료기관인 광혜원을 모태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 의료기관이다. (규모:2062병상)
  • 서울아산병원 (울산대 의과대학 교육병원) - 대한민국에서 단일병원으로는 가장 큰 의료시설이다. (규모:2708병상)
  • 삼성서울병원 (성균관대 의과대학 교육병원) - (규모:1951병상)
  •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 (규모:1200병상)

기타

축제

디자인

건설 및 산업중심에서 디자인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하려 노력하고 있다. 2008년 서울 디자인 올림픽 개최, 서울색 지정 및 서울서체 배포,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국제도시조명연맹 구축, 남산 르네상스 기본계획 수립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및 계획을 수립, 진행중이다.[41] 서울시가 디자인 관련 사업에 지출한 총 비용은 2009년 11월 기준 총 1,012억원으로[42], 홍보 및 전시성 사업에 예산이 과다지출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43]

위성도시

서울은 수도권의 다른 몇몇 도시들과 시가지가 맞붙어 있는 연담도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는 도시기능상으로 볼 때, 여러 개의 위성도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위성도시는 안양,부천,의정부,구리, 광명시, 과천, 하남, 김포, 성남, 고양, 군포 등이다. 서울과 위성도시들이 이루고 있는 '수도권'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구밀도가 높고 혼잡한 지역중의 하나로 꼽힌다.

스포츠

주요 국제 대회

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막전과 4강전을 비롯한 총 3경기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축구

남자
단계 리그 구단 홈구장
1부 K리그 FC 서울 서울 월드컵 경기장
2부 내셔널 리그 없음 없음
3부 K3리그 서울 유나이티드 마들 스타디움
서울 마르티스 FC 강북구민운동장
여자
단계 리그 구단 홈구장
1부 WK-리그 서울시청 여자축구단 없음

야구

구단 홈구장
LG 트윈스 잠실 야구장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목동 야구장

농구

구단 홈구장
서울 삼성 썬더스 잠실체육관
서울 SK 나이츠 잠실학생체육관

배구

성별 구단 홈구장
남자 서울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장충체육관
여자 GS칼텍스 서울 KIXX

역대 시장

자매 도시

2010년 10월 현재(23개 도시), 서울특별시의 자매 · 우호 도시 현황은 다음과 같다. [44]

이 외에도 교류각서 등을 체결한 15개 도시가 있다. ① 오타와(캐나다, 97.1.10), ② 베를린(독일, 97.4.23), ③ 암스테르담(네델란드, 99.3.15), ④ 부다페스트(헝가리, 05.7.14), ⑤ 이스탄불(터키, 05.8.24), ⑥ 로스엔젤레스(미국, 06.10.16), ⑦ 밀라노(이탈리아, 07.2.1), ⑧ 민스크(벨로루시,08.7.8) ⑨ 산동성(중국,08.7.19), ⑩ 강소성(중국, ‘08.7.21), ⑪ 광동성(중국, 08.7.22), ⑫절강성(중국,09.4.10), ⑬ 천진시(중국,09.4.12), ⑭ 아디스아바바(에디오피아,10.9.29), ⑮ 홋카이도(일본,10,10.15)

같이 보기

참고

  • 해방이후 한국을 통치하던 미군정청의 문서에서, 서울특별시의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적 관점에 따라 "특별시"(en: special city)로 번역한 것이 굳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45]

주석

  1. 서울특별시가 대한민국 법률 상 수도인지는 이론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일부개정 1995.12.6 법률 5000호)에 따라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인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관습 헌법"에 따라 서울특별시가 수도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의견대로라면 결국 역사적으로 수도였던 서울은 강남을 제외한 강북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2. 일반현황, 서울특별시
  3. Seoul History | History of Seoul - Yahoo! Travel Guide UK
  4. http://ehistory.korea.kr/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0338&mediadtl=22711&gbn=DH&quality=W
  5. http://www.seoul.go.kr/v2007/seoul/symbol/brand.html
  6. “서울구경(舊景) 1”. 뉴스코리아. 
  7. “서울, 중국어표기 '首尔'. 한국일보. 
  8. 정상기, 동국전도(18세기)
  9. 군정법률 제106호 서울특별시의설치 (1946년 9월 18일)
  10. “뿌리 깊은 역사 - 광명시 어린이 홈페이지”. 광명시. 2010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1.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지형
  12. 산림청 통계자료방, 대한민국 산림청
  13.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임야
  14. 한강의 시대별 역사 -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
  15. 한강르네상스 개요 -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
  16.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자연
  17. 기후자료 - 서울의 1971년 ~ 2000년 평년값 자료. 대한민국 기상청.
  18. 크리스티안 디트리히 쇤비제, 김종규 역, 기후학, 시그마프레스, 2006, 314쪽, ISBN 89-5832-203-9
  19. World Map of the Köppen-Geiger climate classification updated
  20. 대표적인 예로 2009년부터 대한민국 기상청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서울의 기후를 온대 하우 기후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1. 기후변화 이해하기 III - 서울의 기후변화》,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 2009년
  22. 서울의 기후가 온대 하우 기후로 변화하였다는 대한민국 기상청의 주장에 대해서는 2쪽에, 평년의 기준과 그에 따른 변화는 14쪽에 설명되어 있다.
  23. 한국지리지-수도권편, 국토포털(대한민국 정부)
  24. 기후변화 이해하기 II, 기후변화정보센터, 5쪽
  25. 신도시 한양, 종로엔 다있다, 서울시 종로구
  26.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서울의 인구
  27.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1권》. 인물과사상사. 51쪽. 
  28. 시민을 위한 서울역사 2000년 312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년
  29. 서울시 통계연보
  30. 2009년 일반현황, 서울특별시
  31.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자료
  32.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공업
  33.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상업
  34.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사회·문화
  35. 서울통계 > 교육 > 학교총괄
  36. “콜택시 20日부터 運行”. 동아일보. 
  37. “中型택시 운행”. 경향신문. 
  38. “모범택시, 오늘 서울에서 첫 선”. MBC 뉴스데스크. 
  39. 오세훈 시장의 '서해주운관'을 비판한다 - 오마이뉴스, 2009년 4월 22일.
  40. [수도권] 도마에 오른 吳시장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 조선일보, 2010년 9월 29일.
  41. 서울특별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홈페이지
  4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 발표한 관련자료
  43. '21조 서울시 예산에는 사람이 안보인다. _ 오마이뉴스 기사'
  44.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International Cooperation: Sister Cities”. 
  45. '서울특별시' 명칭 유래는연합뉴스, 2009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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