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FC 서울
FC 서울.png
전체 이름 FC 서울
Football Club Seoul
창단 연도 1983년 12월 22일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창단[1]
연고지 서울특별시
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수용 인원 66,704명[2]
소유주 GS그룹
구단주 허창수
사장 장기주
단장 이재하
감독 황선홍
리그 K리그 클래식
2015 시즌 4위
웹사이트 fcseoul.com
원정
서드
우승
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 Korean FA Cup Trophy.pngKorean FA Cup Trophy.png
국내 리그 5 K리그 클래식
국내 대회 2 FA컵
2 리그컵
1 슈퍼컵
국제 대회
Soccerball current event.svg 현재 시즌

FC 서울(Football Club Seoul)은 대한민국수도 서울특별시연고지로 하는 K리그 클래식 소속 프로축구단이다. FC 서울 구단 CI 차원에서 사용하는 공식 한글 표기법은 띄어쓰기 없이 FC서울이며 구단 모토2007년 캐치프레이즈로 선정되었던 'Soul of Seoul, FC SEOUL'이 사용되고 있다.[3][4]

FC 서울은 K리그 클래식에서 5회 우승을 기록하며 성남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FA컵에서도 2회, 리그컵에서도 2회, 슈퍼컵에서 1회 우승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관중 면에서도 한 시즌 최다 총관중 및 최다 평균관중 기록, 한 경기 최다 관중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 스포츠조선에서 최초로 실시한 K리그 16개 구단 운영능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5] 같은 해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전 세계 축구 클럽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대한민국 프로축구 클럽 중 최고 순위인 62위를 기록하였다.[6] 2016년 1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이 발표한 '2015 클럽 세계 랭킹'에서는 대한민국 클럽 중 가장 높은 81위를 차지하였다.[7]

역사[편집]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응원하는 FC 서울 서포터즈

구단 창단과 초창기 (1983–1989)[편집]

FC 서울은 1983년 8월 18일 구단 공식 창단 발표 후[8]1983년 12월 22일 공식 창단식을 거행하고 [9]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대한민국의 프로축구단 가운데 다섯 번째로 정식 출범하였다. 창단 연고지는 충청도[10] 를 배정 받았으며 마스코트는 황소를 선정하였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프로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기획조정실이 주축이 되어 1982년부터 면밀한 준비 작업을 했으며[11][12]서울특별시를 창단 연고지로 하여 출범할 계획이었지만[13] 당시 대한축구협회 수퍼리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배정하였다.

창단 첫 시즌에는 리그 8개 구단 중 7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1985 시즌에는 타이 출신 피아퐁 등의 활약에 힘입어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정규리그 트로피를 얻게 되었다.

서울과 안양 시대 (1990–2003)[편집]

1988년 초부터 창단 당시 원했던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고,[14] 결국 1989년 10월 16일 프로축구 특별위원회에서 충청도에서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이 승인되었다. 1990년 도시지역연고제 시행과 함께 서울운동장 (현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해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특히 1990 시즌 우승은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의 우승으로 기록되었다. 1991년 모기업의 사명 변경과 함께 "LG 치타스"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며[15][16] 1992년 서울 연고지 정착을 위해 다양한 팬서비스와[17] 경품 제공,[18] 개략적인 구단 소식을 전해주는 책자인 '치타스 가족'이라는 구단 소식지 발간,[19] 당시 같은 서울 연고 구단이었던 일화·유공 구단들과 공동 마케팅,[20] 서울과 경기 지역 축구동호회들과의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여 LG치타스배 축구대회 개최[21] 등 많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22] 의해 불이행시 리그 참여 금지를 포함한[23]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24] 시행되었다.[25][26] 구단은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 중 마지막까지 서울 연고 고수를 위해 저항하였고[27] [28] 팬들 역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지만[29] 결국 서울 연고지에서 축출되어 1996년 4월 연고지를 서울의 위성 도시안양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구단 공식 명칭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했다.

그 후 2000 시즌 최용수 선수의 대활약으로 K리그에서 우승하여 구단 통산 세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조별 예선을 통과한 후 에스테글랄을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수원 삼성에 패하여 우승컵은 따내지 못했다.

2003년 2월 26일 창단 20주년 기념 행사의 의미로 숫자 '20'과 함께 역동적인 선수와 볼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한 창단 20주년 기념 엠블럼을 제작 발표했다.[30]

서울 시대의 재개막 (2004–2006)[편집]

1998년 11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한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공청회에서 프로스포츠 최대 빅마켓인 서울 연고지 활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31] 1999년 11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철폐하고 앞으로 서울 연고 구단을 다시 만들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하자 [32] 안양으로 연고를 옮긴지 4년만인 2000년부터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 복귀를 추진하기 시작한다.[33][34] 그 후 2002년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한 프로축구단 없이는 한국 프로축구 발전은 요원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2002년 FIFA 월드컵를 통한 축구붐을 등에 업고 서울 연고 구단 창단에 관심을 기울인 kt, 금호그룹, 한화그룹,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의 대기업을 유치하여 신규 서울 연고 구단을 만들기 위해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서울시는 ‘서울 연고 프로축구팀 창단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다각도로 창단 설득작업을 하였지만 끝끝내 모두 실패했다.[35]

이렇게 신규 대기업을 통한 신생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이 연이어 실패하자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활용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서울시에서도 축구계와 별도로 시 차원에서 다시 한번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을 희망하는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100억원 지원금이 포한된 모집 공고를 2004년 1월 15일 내고 28일까지 신청을 받으며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지만[36] 문의만 있었을 뿐 실제 의향서를 제출한 대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으며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37]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1월 29일 기존 구단 중에서 연고지 이전을 통하여 서울 연고 구단을 만들기로 방침을 변경하였고[38] 다시 기존 구단 중에서 연고지 이전으로 서울에 입성할 구단 공모에 나선다.[39] 이러한 서울시의 방침 변경 후 곧바로 안양 LG 치타스는 2004년 2월 2일 서울로 연고지 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으며[40] 축구인과 축구팬들의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41][42][43]

한편 축구계 역시 2004년 2월 6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서울 연고 구단을 신생 구단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에서 계속해서 무작정 서울을 비워둘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44] 그동안 고수해 온 '선 창단, 후 이전'의 원칙을 파기하고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허용하는 안이 승인되었다.[45] 이에 따라 안양 LG 치타스와 부산 아이콘스가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 의향서를 마감일인 25일 제출하였으며 3월 10일 부산 아이콘스가 연고지 이전 신청을 철회함에 따라 2004년 3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서울 입성이 만장일치로 승인되어[46] 과거 연고지였던 서울로 다시 복귀 하였다.[47]

그 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도 서울 연고 구단으로서의 이미지와 축구단 자립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구단명칭에서 기업명을 배제하기로 잠정 결정한 가운데[48] 3월 19일 공모를 통해 응모한 후보작 중에서 31%(1809명)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 "FC 서울"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며[49] 3월 29일에는 서울특별시와 연고지 협약을 체결하였다.[50]

2004년 LG그룹GS그룹 분리가 진행되면서 FC 서울을 운영하던 산하 계열사인 LG스포츠 또한 GS그룹으로 분리되어 6월 1일 스포츠 법인의 이름을 (주)GS스포츠로 변경, GS그룹이 운영하게 되었다.

2005 시즌부터는 제 6대 이장수 감독이 취임하였으며,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기대를 모아온 박주영이 서울에 입단하여 이른바 '박주영 신드롬'으로 불리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51] 한 시즌 최다 관중인 45만 8605명을 기록했다. 2006 시즌 FC 서울은 정규리그FA컵 우승은 하지 못하였으나 K리그의 리그컵 대회인 삼성 하우젠컵 2006에서 우승하여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얻었다. FC 서울은 2006 시즌에 통합순위 4위에 올라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어웨이 경기로 벌어진 성남과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해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귀네슈 시대 (2007–2009)[편집]

FC 서울은 2007 시즌을 앞두고 2년 동안 팀을 이끌어 온 이장수 감독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후임으로 한·일 월드컵에서 터키 대표팀을 3위에 올려 놓았고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터키 출신 셰놀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였다. 그리고 4월 8일, FC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K리그 25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관중 기록이자, 국내 프로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일 경기 사상 최다인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수립하였다.[52] 한편, 2007년 10월 14일에 벌어진 삼성하우젠 K리그 2007 최종 라운드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기만 해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대구 FC에게 0-1로 패하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 시즌에서는 기성용이청용 등 젊은 선수들의 도약에 힘입어 리그 후반기 1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는 등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다. 정규 리그를 리그 1위 수원 삼성과 동률인 54점으로 마감한 서울은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을 4-2로 대파하여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였다. 1,2차전 도합 90,000명 가까운 관중이 몰린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 1-1 무승부,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2-1 로 패하며 준우승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7년 만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9년 1월 7일 AFC 챔피언스리그 2009 조 추첨 결과, 일본감바 오사카, 중국의 산둥 루넝, 인도네시아스리위자야와 함께 F조에 속했다. 2009 시즌 개막전, 전남 드래곤즈와 벌인 원정 경기에서 6-1로 승리했으나, 2라운드 홈에서 신생 팀 강원 FC에게 1-2로 패하며 강원 FC의 돌풍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이기고 스리위자야가 최소한 산둥 루넝에게 무승부를 거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2-1로 승리를 거두고 스리위자야가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4골을 몰아넣으며 역전하여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선 J리그 디펜딩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여 8강전에 진출하였다. 이후 8강전에서 카타르 클럽 움 살랄과 대진하였지만 1차전에서 안태은의 골라인을 넘은 중거리슛이 골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불운 속에 결국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2009년 정규 리그 3위로 끝마쳤다. 플레이오프 6강 PO에서 패하고 최종 순위를 5위로 마감했으며 11월 24일 계약 기간이 종료된 귀네슈 감독이 팀을 떠났다. 귀네슈 감독은 FC 서울 홈페이지에 남긴 작별 편지를 통해 FC 서울팬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지지를 약속하였다.[53][54] 귀네슈 감독은 비록 팀에 우승컵을 안기지는 못했지만 패스에 중점을 둔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구사해 언론과 팬들로부터 신선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다.[55][56]

빙가다 시대 (2010)[편집]

귀네슈 감독이 사임한 후, 2009년 12월 14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포르투갈 국적의 넬루 빙가다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였다.[57] 이후 김승용, 이상협, 김치곤, 심우연, 팀의 공수를 조율하던 기성용셀틱으로 이적시키고 현영민, 방승환, 최효진, 이현승, 이규로, 하대성, 김용대 등을 영입하며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착수하였다. 개막전이었던 2010 K리그 1라운드 대전과의 경기에서 5-2로 승리하여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개막전을 대승으로 장식하였다. 2010년 3월, 호주 국가대표팀 수비수 사이먼 콜로시모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이적 시장 마감 기한이 지나면서 영입이 무산되었다. 2010년 5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남 일화 천마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경기에서 꿈의 6만 관중을 돌파하며 2007년에 역시 FC 서울이 작성한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3년 만에 경신함과 동시에 60,747명이라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역시 다시 경신하였다.[58] 한편 포스코컵 2010 조별 예선 B조를 1위로 통과한 후 대구수원을 각각 8강전과 4강전에서 물리치고 진출한 결승전에서 전북에 3-0 대승을 거두며 빙가다 감독 부임 후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규리그를 20승 2무 6패 승점 62점으로 마치며 팀별 홈 앤드 어웨이 2라운드 체제로 개편된 이후 역대 정규리그 사상 가장 높은 승점을 기록하였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60,747명), 단일 시즌(정규리그, 챔피언십, 리그컵) 최다 총 관중 신기록(546,397명), 단일 정규리그 (리그, 챔피언십) 최다 총관중 신기록(488,641명), 단일 정규리그(리그, 챔피언십)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32,576명), 단일 리그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30,849명) 등 많은 역대 관중 관련 기록들을 경신하며 각종 언론으로부터 성적과 인기 면에서 K리그 최고의 구단으로 등극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59] [60]

2010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1승 1무로 이기고 10년 만에 K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시즌 총관중 50만명을 돌파하여 겹경사를 누렸다.[61][62] 한편, 12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는 56,759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K리그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다 관중 신기록 및 K리그 역대 단일경기 최다 관중 2위의 기록을 수립하였다.

2010년 12월 13일 빙가다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이 연봉 조건 등의 의견 차이로 인해 최종 결렬되어 12월 14일 빙가다 감독이 포르투갈로 출국하면서 빙가다 시대는 불과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63]

최용수 시대 (2011–2016)[편집]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좌석의 서울 서포터들

2010년 12월 28일, 구단 웹사이트를 통해 넬로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황보관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였다.[64] 이후 우승의 주역이었던 정조국, 김진규 등이 이적하고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이 군 입대를 하여 전력 공백이 우려되었으나 몰리나, 김동진, 그리고 임대 영입을 했던 제파로프를 완전 영입하면서 전력 보강을 착실히 진행하였고 의욕적으로 2011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규리그 초반 1승 3무 3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한때 15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황보관 감독이 2011년 4월 26일 자진 사퇴하였다. 이후 클럽의 레전드 중 한 명인 최용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였다. 최용수 감독 대행은 데뷔전이 4월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을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빠르게 팀을 수습하였고 그 후 시즌 중에 구단 최다 연승인 7연승 신기록을 달성하였으며 리그를 3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 패하면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지 못하고 최종 순위 5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하지만 구단으로부터 감독 대행 기간 동안 팀을 정상화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준 것을 높게 평가받아 2011년 12월 9일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65]

정식 감독 첫해인 2012 시즌 선배인 박태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와 박희도 등을 영입하며 큰 전력 강화 없이 시즌을 준비하였다. 구단 내부에서는 시즌 목표를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보권인 3위로 잡았고[66] 시즌 전 네이버 스포츠가 실시한 축구 전문가 및 축구전문기자의 시즌 예상에서 역시 서울을 우승 후보로 단독 지목한 전문가는 1명 밖에 없었다.[67] 시즌 개막 초 최용수 감독과 데얀과의 불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좋지 않게 시즌 초반을 보냈으나 이를 원만히 해결하고[68] 이후 시즌 내내 기복없는 전력을 발휘하며 압도적인 승점차로 리그 종료 3경기를 앞두고 조기 우승을 확정하여 구단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이번 우승으로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역사에서 최초로 한 클럽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축구인이 되었다.[69] 또한 2012 시즌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데얀K리그 최우수선수상 및 최다 관중을 기록한 클럽에게 주는 풀 스타디움상 등 개인·구단 등 각종 부문에서 13개의 상을 휩쓸었다.[70]

2013 시즌 지난 시즌 우승의 후유증으로 리그 전반기 부진을 겪었지만 여름부터 구단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인 리그 7연승을 기록하여 다시 선두권에 복귀 하였고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결승전에 진출했던 것에 이어 11년 만인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며 다시 한 번 구단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정상 등극을 노렸지다.[71] 결승전에서 광저우 헝다와 1,2차전 모두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접전을 벌였으나 원정팀 다득점 규칙으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 시즌을 앞두고 아디가 은퇴함과 동시에 데얀, 하대성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이적시켰다. 몰리나 역시 이적을 추진하였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결렬되어 최종적으론 잔류하게 되었다.[72] 떠난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하파엘, 이웅희, 오스마르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여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들어갔다. 전반기에는 하파엘 등 새로 영입된 선수들의 부진으로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름 이적 시장 전후로 몰리나가 부상에서 돌아오고 에벨톤 등이 합류하는 등 호재가 나타나 성적이 반등하기 시작하였다.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는 제주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극적으로 3위를 차지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 플레이오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한편 2014년 7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바이엘 04 레버쿠젠과의 친선 경기에 앞서 창단 3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FC 서울의 역대 추억의 올드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의 예체능팀과 축구 맞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다.[73]

2015 시즌 첫 경기로 열린 2015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는 하노이 T&T를 7대0으로 대파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후 본선 조별 예선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전에서 오심으로 골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74] 최종 라운드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꺾으며 죽음의 조에서 탈출하여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였다. 2015년 3월 10일 알샤바브에서 뛰던 박주영이 2008년 이후 7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FA컵 결승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대1로 제압하고 17년만의 FA컵 우승을 차지하였다.[75] 32강전부터 90분 이내 5전 전승의 완벽한 우승이었으며 주장인 차두리 선수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팀의 부주장인 오스마르는 K리그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전 경기(38경기)를 소화하였으며 이 기록으로 연말 리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2016 시즌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하였던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복귀하며 과거 최용수, 김동진, 정조국, 박주영 등 팀에서 스타로 성장하여 해외 진출 후 다시 친정팀으로 복귀하는 클럽 전통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였다.[76]

2016년 6월 22일 작년부터 장쑤 쑤닝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아온 최용수 감독은 장쑤의 끈질긴 구애에 안산 무궁화와의 2016년 FA컵 16강전에서 고별 경기를 가진 후 공식적으로 감독직을 내려놓고 장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황선홍 시대 (2016–현재)[편집]

2016년 6월 21일 FC 서울은 최용수 감독의 후임 감독이자 구단의 11대 감독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하였으며, 27일 공식 취임식을 가지고 FC 서울 감독으로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클럽 문화[편집]

서포터스[편집]

FC 서울의 메인 서포터스 그룹은 2004년 3월에 만들어진 수호신이며 2009년 지지자연대 모임으로 변경되었으며 웨스트스토리, 극락조 마르스, 서울아빠, SEM, GruppoTHANATOS, 레이피어, 혼자왔니, 서울사람들, 황족, ADELANTE , FRIS, sTyLe, BP365, Diablos Nómados(외국인 서포터 모임) 같은 많은 소모임들이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럭키금성 황소 시절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 LG 치타스의 동대문운동장 시절과 그 후 안양 LG 치타스 시절까지 다양한 올드팬층이 존재하며 디시인사이드 FC서울 갤러리 등등 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 역시 활발하다. 한편 디시인사이드의 FC 서울 갤러리는 디시인사이드에 개설된 최초의 국내 프로축구단 갤러리이다.[77]

V걸스와 V맨[편집]

과거 1990년대 후반 서포터스 응원문화가 들어오면서 사라졌던 치어리더 응원이 2010년 3월 FC 서울 구단 주도하에 V걸스와 V맨으로 다시 탄생하여 일반석에서 응원을 주도하고 있다.[78]

마스코트[편집]

FC 서울의 현재 마스코트는 씨드(SSID)이며 Seoul & Sun In Dream의 약자이다. 생년월일은 2004년 4월 3일이고, 탄생지는 대한민국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FC 서울의 홈 경기 때마다 경기장에 나와 경기 중 익살스러운 행동과 적극적인 응원 유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까지 길게 찢어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0년부터 커다란 눈을 갖게 되었다. 과거 마스코트는 황소와 치타이며 이 마스코트들을 형상화한 깃발을 흔드는 팬들이 존재한다.

경기장[편집]

FC 서울은 과거 홈구장으로 대전공설운동장, 동대문운동장, 안양종합운동장을 사용하였으며 2004년부터는 66,806명의 아시아 최대의 축구전용구장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1988년 12월 천연잔디구장(3면)을 포함한 훈련장 시설을 완공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사계절 잔디구장을 포함한 천연잔디구장(3면), 인조잔디구장(1면) 그리고 웨이트트레이닝룸, 미팅룸, 물리치료실들을 갖춘 관리동으로 구성된 GS챔피언스파크를 조성해 클럽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월 2회 팬들에게 훈련장을 공개하고 선수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역대 유니폼[편집]

FC 서울은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주 유니폼의 경우 대부분 노란색 유니폼을 입었으며 1995년부터 2004년까지는 빨간색을 주 색깔로 하여 디자인된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그 후 2005년부터 전통의 빨간색검은색을 조합한 레드 & 블랙 줄무늬로 디자인된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홈 및 원정 유니폼[편집]

대한민국 반도패션 / LG패션 (1984–1996)
Football kit
1984
(H)
Football kit
1984
(A)
Football kit
1985
(H)
Football kit
1985
(A)
Football kit
1986
(H)
Football kit
1986
(A)
Football kit
1987(1)
(H)
Football kit
1987(1)
(A)
Football kit
1988
(H)
Football kit
1988
(A)
Football kit
1989–1990
(H)
Football kit
1989
(A)
Football kit
1990
(A)
Football kit
1991–93
(H)
Football kit
1991
(A)
Football kit
1992
(A)
Football kit
1993
(A)
Football kit
1994
(H)
Football kit
1994
(A)
Football kit
1995–96(2)
(H)
Football kit
1995–96(2)
(A)
영국 리복 (1997)
Football kit
1997(3)
(H)
Football kit
1997(3)
(A)
독일 아디다스 (1998–2011)
Football kit
1998–99.07(3)(H)
Football kit
1998–99.07(3)
(A)
Football kit
1999.07–2001
(H)
Football kit
1999.07–2001
(A)
Football kit
2002(4)
(H)
Football kit
2003(4)
(H)
Football kit
2002–03
(A)
Football kit
2004
(H)
Football kit
2004
(A)
Football kit
2005–06
(H)
Football kit
2005–06
(A)
Football kit
2007–08
(H)
Football kit
2007–08
(A)
Football kit
2009(5)
(H)
Football kit
2009(5)
(A)
Football kit
2010–11
(H)
Football kit
2010–11
(A)
프랑스 르꼬끄 스포르티브 (2012–현재)
Football kit
2012–13
(H)
The Present
Football kit
2012–13
(A)
The Present
Football kit
2014–15(6)
(H)
The S
Football kit
2014
(A)
The S
Football kit
2015–16
(A)
The S White
Football kit
2016–17
(H)
Double Pride

서드 및 스페셜 유니폼[편집]

대한민국 반도패션
Football kit
1984
Football kit
1985
프랑스 르꼬끄 스포르티브
Football kit
2016(7)
(H)
Double Pride
참고사항

(1) 광역지역연고제가 도입되어 처음으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시행된 1987시즌에는 프로야구처럼 프로축구 모든 팀들이 홈에서 하얀색 유니폼을 착용하였고 원정에서는 팀 고유의 색상이 들어간 유니폼을 착용하였으며 1988시즌에 다시 홈팀이 고유 색상의 유니폼, 원정팀들이 하얀색 유니폼 착용으로 재변경되었다.[79]
(2) 디자인은 동일하나 용품 스폰서 로고가 1995시즌 반도패션에서 CI 변경으로 1996시즌 LG패션으로 변경되었다.
(3) 디자인은 동일하나 용품 스폰서가 1997시즌 리복에서 1998시즌 아디다스로 변경되었다.
(4) 2002시즌과 2003시즌의 홈 유니폼은 디자인은 동일하나 아디다스 로고와 어깨 부분의 3선 색상이 감색에서 하얀색으로 변경되었다.
(4) 2009시즌 유니폼은 역대 유니폼 사상 최초로 'Soul'이란 별도의 유니폼 이름이 부여되었다. K리그와 아시아에 서울의 혼을 드높인다는 의미이다.[80]
(6) 2014시즌 홈 유니폼에는 원래 하얀색 양말을 착용하였으나 3월 19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을 마지막으로 다음 경기인 부산전부터 빨간색 양말로 변경되었다. 또한 2015시즌 홈 유니폼은 2014시즌과 동일하나 백넘버와 선수 이름 프린팅 폰트가 변경되었다.
(7) 2016시즌 ACL 유니폼은 리그에서 착용하는 홈 유니폼과 별개로 AFC 챔피언스리그 대회 전용 유니폼이다.

아래 링크들은 FC 서울의 유니폼에 관한 자료들이다.

스폰서십[편집]

용품 스폰서는 창단 이래 당시 모기업인 럭키금성그룹 계열사인 반도패션 (현 LG패션)이 맡아왔고 1997년 리복으로 변경되었다가 1998년 아디다스와 연간 현금 8천만원과 용품 1억원어치 계약을 체결하며[81] 본격적인 용품 스폰서십 시대를 열었다.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30억원의 연장 계약 체결 후[82][83] 2008년 4년간 당시 K리그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계속해서 계약 기간을 연장해가며, 아디다스와의 계약을 14년간 지속하였다.[84] 그러나 2011년 12월 르꼬끄 스포르티브로 용품 스폰서를 교체하면서 4년간 80억원이라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였다.[85]

용품 스폰서와 유니폼 광고 스폰서[편집]

기간 용품 스폰서 유니폼 광고 스폰서 유니폼 프린팅 비고
1984–1986 대한민국 반도패션 대한민국 럭키금성
럭키금성
1985시즌 프로스펙스에서 제작한 유니폼도 공동 사용한것으로 추정[86]
1987–1994 대한민국 금성사
금성VTR 외 다수
* 1993–1996시즌 동안 축구스타킹은 프로스펙스에서 지급 받음
* 1995년 9월 반도패션에서 LG패션으로 CI 변경
* 국제대회와 해외 전지훈련 등의 외국팀과의 경기에서는
0 영어 GoldStar 프린팅 사용


GoldStar
1995–1996 대한민국 LG패션 대한민국 LG전자
LG하이비디오 외 다수
1997 영국 리복 대한민국 LG정보통신
프리웨이 외 다수
1998 독일 아디다스 대한민국 LG전자
LG 싸이언 외 다수
1999
디지털 LG / DIGITAL LG
2000 대한민국 LG텔레콤
카이 / X
2001–2002 대한민국 LG전자
싸이언 / CYON
2003
엑스캔버스 / XCANVAS
2004
싸이언 / CYON
2005–2011 대한민국 GS건설
자이 / Xi
* 아디다스와 2005시즌부터 3년간 30억원 규모 계약
* 아디다스와 2008시즌부터 4년간 당시 K리그 사상 최대 규모 계약
0 (타구단과의 관계 고려 금액 미공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Hi Seoul
Soul of Asia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시 한시적 사용
2012–13 프랑스 르꼬끄 스포르티브 대한민국 GS건설
자이 / Xi
* 르꼬끄 스포르티브와 2012시즌부터 4년간 80억원
0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계약
* 르꼬끄 스포르티브와 2016시즌부터 4년간 재계약
2014–19 대한민국 GS SHOP
GS SHOP

우승 기록[편집]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통계 원칙에 의거 FC 서울은 전신 구단의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고 있다.[87]

국내 대회[편집]

리그[편집]

[편집]

국제 대회[편집]

더블 우승[편집]

역대 시즌 통계[편집]

시즌별 전 대회 기록[편집]

K리그 챔피언십 경기 결과를 포함하지 않은 순수 정규리그 승무패 승점과 골득실이다.
1993, 1998 1999, 2000 시즌은 무승부시 승부차기가 시행되었으며 승부차기를 무승부로 처리하는
00통산 기록 규정에 근거한 승무패를 별도로 아래에 표기하였다.
2004, 2005, 2006 시즌의 리그순위는 전후기리그 통합승점 순위표의 순위이다.
※ 아-아디다스컵, 프-프로스펙스컵, 필-필립모리스코리아컵, 대-대한화재컵, 삼-삼성 하우젠컵, 피-피스컵 코리아, 포-포스코컵를 의미한다.

시즌 리그
팀수
K리그 경기수 승점 리그컵 FA컵 슈퍼컵 ACL 감독
1984 8 7위 28 8 6 14 38 45 -7 33 대한민국 박세학
1985 8 우승 21 10 7 4 35 19 +16 27 대한민국 박세학
1986 6 준우승 20 10 7 3 28 17 +11 27 5위 (프로)[1] 진출 실패 대한민국 박세학
1987 5 5위 32 7 7 18 26 55 -29 21 미개최 대회 기권 대한민국 박세학
1988 5 4위 24 6 11 7 22 29 -7 23 우승 (전국)[2]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
1989 6 준우승 40 15 17 8 53 40 +13 47 4강 (전국)[2] 대한민국 고재욱
1990 6 우승 30 14 11 5 40 25 +15 39 대한민국 고재욱
1991 6 6위 40 9 15 16 44 53 -9 33 대한민국 고재욱
1992 6 4위 30 8 13 9 30 35 -5 29 준우승 () 대회 불참 대한민국 고재욱
1993 6 준우승 30 18
10
0
11
12
9
28 29 -1 59 4위 ()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1994 7 5위 30 12 7 11 53 50 +3 43 준우승 () 대한민국 조영증
1995 8 8위 28 5 10 13 29 43 -14 25 6위 () 대한민국 조영증
1996 9 9위 32 8 8 16 44 56 -12 32 8위 () 16강 대한민국 조영증
1997 10 9위 18 1 8 9 15 27 -12 11 10위 ()
A조 3위 ()
4강 대한민국 박병주
1998 10 8위 18 9
8
0
2
9
8
28 28 0 23 4위 ()
3위 ()
우승 대한민국 박병주
1999 10 9위 27 10
8
0
4
17
15
38 52 -14 24 준우승 ()
B조 4위 ()
4강 준우승 대한민국 조광래
2000 10 우승 27 19
17
0
5
8
5
46 25 +21 53 4위 ()
A조 5위 ()
8강 진출 실패 8강[3] 대한민국 조광래
2001 10 준우승 27 11 10 6 30 23 +7 43 A조 4위 () 8강 우승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2 10 4위 27 11 7 9 37 30 +7 40 4위 () 32강 진출 실패 준우승[4] 대한민국 조광래
2003 12 8위 44 14 14 16 69 68 +1 56 미개최 32강 미개최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4 13 5위 24 7 12 5 20 17 +3 33 12위 () 16강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5 13 7위 24 8 8 8 37 32 +5 32 5위 () 16강 대한민국 이장수
2006 14 4위 26 9 12 5 31 22 +9 39 우승 () 8강 대한민국 이장수
2007 14 7위 26 8 13 5 23 16 +7 37 준우승 () 8강 대회 중단 터키 귀네슈
2008 14 준우승 26 15 9 2 44 25 +19 54 A조 3위 () 32강 터키 귀네슈
2009 15 5위 28 16 5 7 47 27 +20 53 4강 () 16강 8강 터키 귀네슈
2010 15 우승 28 20 2 6 58 26 +32 62 우승 () 16강 진출 실패 포르투갈 빙가다
2011 16 5위 30 16 7 7 56 38 +18 55 8강 () 8강 8강 대한민국 황보관
대한민국 최용수 ()
2012 16 우승 44 29 9 6 76 42 +34 96 대회 중단 16강 진출 실패 대한민국 최용수
2013 14 4위 38 17 11 10 59 46 +13 62 8강 준우승 대한민국 최용수
2014 12 3위 38 15 13 10 42 28 +14 58 준우승 4강 대한민국 최용수
2015 12 4위 38 17 11 10 52 44 +8 62 우승 16강 대한민국 최용수

[1]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정규리그 이외 별도로 실시된 최초의 대회로 리그컵의 시초이다.
[2]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2001년 FA컵대회로 통합되었다.
[3]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1999-2000 아시안 컵 위너스컵으로 아시안 컵 위너스컵은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에 통합되었다.
[4]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으로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로 대회명칭을 개명하고 확대 재출범하였다.

K리그 챔피언십 기록[편집]

시즌 진출
팀수
순위 경기수 승부차기 감독
1986 2 준우승 2 0 1 1 1 2 -1 N/A 대한민국 박세학
2000 4 우승 2 1 1 0 5 2 +1 4-2 승
(챔피언결정전 2차전)
대한민국 조광래
2006 4 4위 (4강 PO) 1 0 0 1 0 1 -1 N/A 대한민국 이장수
2008 6 준우승 2 1 1 1 6 5 +1 N/A 터키 셰놀 귀네슈
2009 6 5위 (6강 PO) 1 0 1 0 1 1 0 2-3 패
(6강 PO)
터키 셰놀 귀네슈
2010 6 우승 2 1 1 0 4 3 +1 N/A 포르투갈 넬루 빙가다
2011 6 5위 (6강 PO) 1 0 0 1 1 3 -2 N/A 대한민국 최용수 (대행)

역대 통산 전적[편집]

※ 2014 시즌 종료 시점 기준
리그컵 기록은 K리그 기록에 합산되었다.
※ 기권승과 부전승 모두 전적에 포함된다.
※ 승부차기 결과는 무승부로 계산된다.
K리그 1986 시즌 챔피언결정전 2경기 (1무 1패, 1득점 2실점)과 1992년 리그컵 결승전 2경기 (1무 1패, 2득점 4실점) 전적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당시 규정에 의해 번외로 처리되어 합산되지 않았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통합되기 전 1999-2000 아시안 컵 위너스 컵과 전신 대회인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대회 기간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률 비고
K리그 클래식 1984–2014 1112 428 342 342 1495 1321 +174 38.49%
FA컵 1996–2014 46 23 8 15 91 60 +31 50.00%
슈퍼컵 1999, 2001 2 1 0 1 3 6 -3 50.0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988, 1989 7 6 0 1 13 5 +8 85.71%
AFC 챔피언스리그 1986–2014 55 22 21 12 86 56 +30 40.00%
합계 1222 480 371 371 1688 1448 +240 39.28%

관중 기록[편집]

FC서울 보유 관중 신기록[편집]

기록 일자 / 시즌 경기수 관중수 비고
프로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2010-05-05 1 60,747명
K리그 챔피언십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2010-12-05 1 56,759명
K리그 단일 정규리그 최다 평균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4 30,849명 리그 14경기
K리그 사상 최초 리그 3만 평균관중 신기록 수립
K리그 단일 정규시즌 최다 평균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5 32,576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단일 정규리그 최다 총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5 488,641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단일 시즌 최다 총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9 546,397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리그컵 4경기
K리그 사상 최초 시즌 50만 총관중 신기록 수립

총관중과 평균관중 기록[편집]

※ 시즌 총관중수는 K리그 정규리그 (챔피언십 포함), 리그컵, FA컵, AFC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홈경기 관중수의 총계이며 친선 경기 관중수는 포함하지 않는다.
※ K리그 시즌 총관중수는 K리그 정규리그 (챔피언십 포함), 리그컵의 공식 홈경기 관중수의 총계이다.
※ 객단가와 입장수입 자료는 K리그 홈경기만을 대상으로 산출되었다.

시즌 시즌
총관중
K리그
총관중
정규리그
평균관중
리그컵
평균관중
FA컵
총관중 / 평균관중
ACL
총관중 / 평균관중
친선경기
관중
관중
순위
비고
1984–2003
공식 관중수 신뢰성 불확실로 미기재
2004 223,529 223,529 15,363 6,529 홈경기 미개최 N/A N/A
2005 458,605 458,605 22,010 32,415 홈경기 미개최 N/A 17,211
(vs 보카 주니어스)[88]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2위
2006 357,231 315,698 18,782 11,921 41,533 / 13,844 N/A 61,235
(vs FC 도쿄)[89]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FA컵 8강 수원 삼성전 38,533명
역대 FA컵 최다 관중 기록[90]
FC 도쿄 친선경기 무료 관중
2007 411,362 379,903 21,515 14,315 31,459 / 31,459 N/A 약 65,000
(vs 맨체스터 UTD)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2008 398,757 398,757 22,417 12,499 홈경기 미개최 N/A 약 34,000
(vs LA 갤럭시)[91]
약 41,500
(vs FC 도쿄)[92]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K리그 챔피언십 2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09 319,250 270,624 16,535 11,300 1,315 / 1,315 47,311 / 11,828 약 65,000
(vs 맨체스터 UTD)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0 547,592 546,397 32,576 14,439 1,195 / 1,195 N/A N/A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1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1 520,138 448,027 28,002 N/A 3,733 / 3,733 68,378 / 13,676 N/A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1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2 467,649 451,045 20,502 N/A 16,604 / 8,302 N/A N/A K리그 총관 1위
K리그 평관 1위
2013 451,845 315,540 16,607 N/A 11,945 / 3,982 124,360 / 17,766 N/A K리그 총관 2위
K리그 평관 2위
객단가 1위(6,452원)[93]
유료관중 비율 79%[94]
2014 424,405 323,244 17,013 N/A 36,901 / 12,300 64,260 / 10,710 46,722
(vs 바이어 04 레버쿠젠)
K리그 총관 2위
K리그 평관 2위
객단가 1위(6,322원)[95]
입장수입 1위(약 20억)
유료관중 비율 87%[96]
2015 406,820 326,269 17,172 N/A 34,634 / 11,545 45,917 / 9,183 K리그 총관 2위
K리그 평관 2위
객단가 1위(9,485원)[97]
입장수입(약 31억) 1위[98]
유료관중 비율 86.5%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 TOP 10[편집]

순위 대회 일자 홈팀 결과 원정팀 경기장 관중수 비고
1위 2010 K리그 2010-05-05 FC 서울 4–0 대한민국 성남 일화 천마 서울월드컵경기장 60,747명 공휴일 (어린이날)
2위 2010 K리그 2010-12-05 FC 서울 2–1 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서울월드컵경기장 56,759명 주말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 2차전
3위 AFC 챔피언스리그 2013 2013-10-26 FC 서울 2–2 중국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55,501명 주말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4위 2007 K리그 2007-04-08 FC 서울 0–1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5,397명 주말
5위 2011 K리그 2011-03-06 FC 서울 0–2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1,606명 주말
2011시즌 홈 개막전
6위 2012 K리그 2012-08-18 FC 서울 0–2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0,787명 주말
7위 2010 K리그 2010-04-04 FC 서울 3–1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48,558명 주말
8위 2005 K리그 2005-07-10 FC 서울 4–1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48,375명 주말
9위 2004 K리그 2004-04-03 FC 서울 1–1 대한민국 부산 아이파크 서울월드컵경기장 47,928명 주말
10위 2016 K리그 클래식 2016-06-18 FC 서울 1–1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47,899명 주말

선수단[편집]

현재 소속 선수[편집]

2016년 7월 28일 기준[99]

임대 및 병역 복무 중인 선수[편집]

현재 시즌 이적 현황[편집]

역대 선수[편집]

역대 해외 진출 선수[편집]

역대 주장[편집]

시즌 주장 부주장 비고
1984
대한민국 한문배
1985
대한민국 김광훈
1986
대한민국 박항서 –1986/09/??
1986–1988
대한민국 정해성 1986/09/??–
1989–1990
대한민국 최진한
1991–1992
대한민국 이영진
1993
대한민국 구상범
1994
대한민국 최영준
1995
대한민국 윤상철 –1995/08/04
1995–1996
대한민국 이영익 1995/08/05–
1997
대한민국 조병영
1998
대한민국 김봉수
1999
대한민국 강준호 –1999/07/??
1999–2000 대한민국 최용수 1999/07/??–2000/05/09
2000
대한민국 김귀화 대한민국 이영표 2000/05/10–
2001
대한민국 이상헌 –2001/05/??
2001
대한민국 손현준 2001/05/??–
2002
대한민국 최윤열
2003–2004 대한민국 김성재
2005–2006 대한민국 이민성
2007–2008 대한민국 이을용 대한민국 김치곤
2009
대한민국 김치곤 대한민국 김진규
2010
대한민국 박용호 대한민국 김진규
2011
대한민국 박용호 대한민국 현영민
2012–2013 대한민국 하대성 대한민국 김진규
2014
대한민국 김진규 대한민국 고명진
2015
대한민국 고명진 스페인 오스마르 –2015/04/30
대한민국 차두리 2015/05/01–[100]
2016
스페인 오스마르 대한민국 유현 구단 사상 최초 외국인 주장

코칭 및 지원스태프[편집]

코칭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황선홍
수석 코치 대한민국 강철
1군 코치 대한민국 김동영
브라질 아디
1군 골키퍼 코치 브라질 레안드로
2군 코치 대한민국 정상남
2군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백민철
피지컬 코치 크로아티아 쟈스민
U-18팀 감독 대한민국 김상문
U-18팀 코치 대한민국 이정열
U-18팀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원종덕
U-15팀 감독 대한민국 김영진
U-15팀 코치 대한민국 박혁순
U-15팀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조준호
U-15팀 피지컬 코치 대한민국 박성준
U-12팀 감독 대한민국 김병채
U-12팀 코치 대한민국 서기만
U-12팀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이지훈
스카우트팀 팀장 대한민국 김현태
스카우트 대한민국 이원준
대한민국 정재윤
대한민국 서민우

지원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구단 주치의 대한민국 조윤상
트레이너 대한민국 박성률, 황보현, 최규정
전력 분석관 대한민국 김정훈, 신준용
장비 담당관 대한민국 이천길
통역관 대한민국 김현수

역대 감독[편집]

※ 선임일자는 최초로 공식 영입을 발표한 일자를 의미한다.
※ 취임일자는 취임식을 가지고 공식 업무를 시작한 일자를 의미하며 공식 취임식이 없을 경우 선임일자를 기재한다.
※ 사임일자는 최초로 공식 사임을 발표한 일자를 의미한다.

순번 이름 선임일자 취임일자 사임일자 재임시즌 비고
1대 대한민국 박세학 1983-08-12 1983-12-22 1987-11-19 1984–1987 구단 초대 감독
대행 대한민국 고재욱 1987-12-01 1987-12-01 1988-12-26 1988 1988시즌 감독 대행 수행 후 1989시즌부터
정식 감독으로 승격
2대 1988-12-27 1988-12-27 1993-12-31 1989–1993
3대 대한민국 조영증 1993-11-23 1994-01-01 1996-11-05 1994–1996 구단 최초 FC 서울 선수 출신 감독
4대 대한민국 박병주 1996-12-10 1996-12-20 1998-11-25 1997–1998 구단 최초 FA컵 우승 감독
5대 대한민국 조광래 1998-10-22 1998-12-01 2004-12-15 1999–2004 구단 역대 최장수 감독 (6시즌)
6대 대한민국 이장수 2004-12-30 2005-01-10 2006-12-02 2005–2006 구단 최초 리그컵 우승 감독
7대 터키 셰놀 귀네슈 2006-12-08 2007-01-08 2009-11-25 2007–2009 구단 최초 외국인 감독
8대 포르투갈 넬루 빙가다 2009-12-14 2010-01-03 2010-12-13 2010 구단 최초 정규리그와 리그컵 더블 우승 달성
9대 대한민국 황보관 2010-12-28 2011-01-05 2011-04-26 2011 구단 최초 시즌 도중 자진사퇴한 감독
대행 대한민국 최용수 2011-04-26 2011-04-27 2011-12-08 2011 2011시즌 감독 대행 수행 후 2012시즌부터
정식 감독으로 승격
구단 최초 선수, 코치 시절 우승에 이어
감독으로도 우승 달성
10대 2011-12-09 2011-12-09 2016-06-22 2012–2016
대행 대한민국 김성재 2016-06-23 2016-06-23 2016-06-26 2016
11대 대한민국 황선홍 2016-06-21 2016-06-27 2016–현재

경영진[편집]

현재 경영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구단주 대한민국 허창수
사장 대한민국 장기주
단장 대한민국 이재하

역대 구단주[편집]

순번 이름 취임 사임 기간 비고
1대
대한민국 구자경
1983-08-12
1990-12-31
1983–1990
초대 구단주
2대
대한민국 구본무
1991-01-01
1997-12-31
1991–1997
3대
대한민국 허창수
1998-03-01
1998–현재

오너십[편집]

기간 소유주 비고
1983/11–1991/02 대한민국 럭키금성그룹
(주) 럭키금성스포츠
국내 최초 종합스포츠 주식회사 설립 (1983-11-09)[101]
1991/02–2004/05 대한민국 LG그룹
(주) LG스포츠
(주) 럭키금성스포츠에서 (주) LG스포츠로 사명 변경 (1991-02-27)[102]
2004/06–현재 대한민국 GS그룹
(주) GS스포츠
지주회사 분할에 따라 기존 (주) LG스포츠에서 (주) GS스포츠로
사명(社名)을 변경하고 독립법인으로 출범 (2004-06-01)[103]

대중문화 속의 FC 서울[편집]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이란 명성과 방송사가 많은 수도 서울을 연고지로 하며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전용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가지고 있는 이점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 등등에서 축구를 소재로 하는 장면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104]

마케팅 활동[편집]

2006년 FC 서울은 서울특별시에서의 지역 연고 정착을 공고히 하고 구단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약 1억원을 들여 일본 J리그 컨설팅 회사인 하쿠호도에 의뢰하여 ‘FC서울 2035 비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세웠다. 즉 2035년까지 ‘진정한 NO.1’구단을 지향한다는 프로젝트의 기본 이념에 따라 지역 밀착을 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미래의 잠재 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106] 또한 2006년 한국 최초로 경기장에 LED 광고를 도입하며 관중증대와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 노력하였다.[107]

2007시즌부터 FC 서울은 ‘Soul of Seoul, FC SEOUL’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유소년 축구클럽 ‘Future of FC서울’, 어린이 무료 축구교실 ‘두근두근 축구클리닉’과 ‘FC서울-맥도날드 어린이 축구교실’, 중학생 축구대회 ‘FC서울 주니어 챔피언십’소시오 ‘어린이 회원권 제도’등 다양한 축구 저변 확대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2009년 5월 16일서울도시철도공사와 공동 마케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108] 공동 마케팅의 일환으로[109] FC서울의 간판 스타인 기성용 선수와 이청용 선수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고 월드컵 경기장내에 도시철도공사 홍보 광고물을 부착하고 전광판에 홍보 동영상을 방영하였다. 또한 공사 측에서는 월드컵경기장역 벽면에 FC서울 선수들의 랩핑사진을 부착하여 월드컵경기장역을 FC서울 테마역으로 지정하였고[110] 역사 내에 FC서울의 홈 경기 홍보포스터 부착하여 상호 홍보하였다.[111]

2010 시즌을 시작하며 그동안 응원 문화는 서포터스에 의한 응원 문화만 존재하던 축구장에 V걸스와 마스코트 씨드 등을 도입하여 새로운 축구 응원 문화를 개척하였으며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축구 도서 '볼수록 만만한 축구'를 출간하였으며[112] 2011시즌에는 FC 서울 티켓북을 출간하였다.[113]

2014 시즌에는 FAN기반 마케팅 활동을 기획, 매 홈경기마다 테마를 정해 팬과 소통하고 팬이 만드는 경기를 구현하는 'FAN이 일으키는 Sensation'인 FANsation을 마케팅 컨셉으로 수립하여 팬이 경기 운영에 참여하도록 하고, 팬 중심의 이벤트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114]

GS&Point 카드에도 FC 서울 멤버십 카드를 추가하여 더 큰 포인트 적립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2016 시즌에는 상설 구단 상품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FC서울 팬파크가 오픈되었고 '걱정 말아요 그대'를 전 관중이 하프타임에 부르는 이른바 하프타임 플래시 파티 그리고 FC서울 스카이 펍, 야외 푸드 파크 등 경기장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요소들을 찾아 FC 서울 만의 응원 문화를 특성화하고 있다.[115][116]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K리그 클럽 소개
  2.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식 웹사이트 에 따르면 총 관중석은 66,806석이며 귀빈석 816석, 보도석 754석, 스카이박스 75실 (1실당 12-29석)이 총 관중석에 포함되어 있다. 2014년 2월 테이블석을 설치하면서 기존 66,806석에서 102석이 줄어들어 66,704석이 되었다.
  3. “<프로축구소식> FC 서울, 2007 캐치프레이즈 확정”. 연합뉴스. 2007년 1월 21일. 
  4. “2007 캐치프레이즈 Soul of Seoul, FC SEOUL”. FC서울 공식웹사이트 뉴스. 2007년 1월 22일. 
  5. “FC서울 구단운영평가에서 압도적 1위 차지!”. FC서울 공식웹사이트 뉴스. 2012년 6월 1일. 
  6. “FC서울 전 세계 클럽 브랜드 평가 62위, K리그 최고”. 스포츠조선. 2012년 6월 1일. 
  7. “CLUB WORLD RANKING 2015”.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2016년 1월 5일. 
  8. “11월말까지 선수단 구성 럭키 프로축구팀 창단 공식발표”. 매일경제. 1983년 8월 18일. 
  9. “프로축구 금성 오늘 창단식 심벌마크는 황소”. 매일경제신문. 1983년 12월 12일. 
  10. 충청도는 충청남도, 충청북도, 현재의 대전광역시를 모두 포함하는 행정구역으로 1989년 충청남도 소속인 대전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독립하였다.
  11. “스포츠팀총괄 법인체설립 럭키금성 프로축구팀 고경환 단장”. 매일경제신문. 1983년 8월 19일. 
  12. 김덕기 (2013년 1월 26일). “럭키금성, 그룹 명에 걸고 프로대열에”. 스포탈코리아. 
  13. “연고지 서울희망 럭키금성 축구 창단 발표”. 경향신문. 1983년 8월 19일. 
  14. “88대표 프로무대서 비실비실”. 경향신문. 1988년 4월 14일. 
  15. “스포츠 단신”. 동아일보. 1991년 2월 27일. 
  16. “럭키금성축구단 이름바꿔 '럭금 LG 치타스'로”. 한겨레. 1991년 2월 27일. 
  17. “프로축구 LG치타스, 각종 팬서비스 실시”. 연합뉴스. 1992년 5월 29일. 
  18. “프로축구단신-LG,팬 2천명에 무선호출기 지급”. 연합뉴스. 1995년 9월 25일. 
  19. '치타스 가족' 창간호 발간”. 한겨레. 1992년 7월 12일. 
  20. “프로축구 서울 3구단 팬확보 공동홍보 합의”. 동아일보. 1992년 3월 10일. 
  21. LG 치타스 94년도 자매결연 사업 추진 포스터 - 월간축구 (현 베스트 일레븐) 1993년 12월호
  22. “일화 유공 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월간축구 (현 베스트일레븐). 1995년 12월호. 
  23. “프로축구 지역연고 먼길인가”. 한겨레. 1995년 11월 9일. 
  24. “서울 연고 이랜드 프로축구단 출범…FC서울과 '투톱'. 한국경제. 2014년 5월 1일. 
  25. “서울 한지붕 세가족 일화, LG, 유공 내년엔 모두 서울 떠난다”.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26. 위원석 (2009년 9월 8일). “위원석의 하프타임-K리그서 '서울 더비'를 보고 싶다.”. 스포츠서울. 
  27. “프로축구 LG 안양에 "새둥지". 동아일보. 1996년 4월 27일. 
  28. “일화, LG, 유공 서울 포기 못해”. 한겨레. 1995년 12월 13일. 
  29. “K리그 서울 연고의 어제와 오늘”. 스포츠조선. 2014년 4월 9일. 
  30. “<프로축구소식> 안양, 20주년 엠블럼 제작 안양, 20주년 엠블럼 제작”. 연합뉴스. 2003년 2월 26일. 
  31. “플레이오프 제도는 성공적, 최대시장 서울을 공략하라!”. 《베스트일레븐 1998년 12월호》: 64페이지. 1999. 
  32. “서울 연고 프로팀 조만간 결정”. 《베스트일레븐 1999년 12월호》: 64페이지. 1999. 
  33. “이재하 국장 "서울 연고지 가치 평가 설명회" 참관”. 《베스트일레븐 2000년 5월호》: 111페이지. 2000. 
  34. “K리그 핫이슈 - 이달의 초대석 - 안양 LG 이재하 단장”. 《베스트일레븐 2000년 6월호》: 92페이지. 2000. 
  35. “서울 프로축구팀 창단 새 국면”. 한국일보. 2004년 1월 26일. 
  36. ““서울축구단 공모합니다”…시,1월말까지 시한…100억 지원”. 국민일보. 2004년 1월 14일. 
  37. “서울 연고 신생구단 공모 불발”. YTN. 2004년 1월 28일. 
  38. “서울연고프로팀, 기존 팀 이전으로 추진”. MBC 스포츠플러스. 2004년 1월 29일. 
  39. “서울시 연고지 이전 프로축구단 공모”. 한겨레신문. 2004년 1월 29일. 
  40. 김창금 (2004년 2월 2일). “안양 엘지 ‘서울 복귀’ 선언”. 한겨레. 
  41. “프로단장들, 기존팀 서울연고 이전 반대 않는다”. 스포츠서울. 2004년 2월 3일. 
  42. “서울시축구협회, 안양 LG 연고 이전 환영”. 경기신문. 2004년 2월 3일. 
  43. “K리그 핫이슈 - 서울 구단 탄생 어제, 오늘 그리고...”. 《베스트일레븐 2004년 3월호》: 91페이지. 2004. 
  44. “서울 프로축구단 출범 '초읽기'. 스포츠한국. 2004년 2월 5일. 
  45. “프로축구연맹 "서울 연고지 이전 가능". 스포츠한국. 2004년 2월 6일. 
  46. “프로축구연맹, LG 서울 입성 승인”. 연합뉴스. 2004년 3월 11일. 
  47. “안양LG, 서울 연고지 이전 최종 확정”. YTN. 2004년 3월 19일. 
  48. “안양 LG, 팀이름 "서울 FC" 검토”. 뉴시스. 2004년 2월 27일. 
  49. “LG 새이름 "FC 서울". 일간스포츠. 2004년 3월 19일. 
  50. “서울시 - FC서울” 프로축구 서울 연고지 협약 체결”. 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2004년 3월 29일. 
  51. “아듀 2005 - ⑥ 박주영 신드롬”. 한국일보. 2005년 12월 27일. 
  52. “K리그 '5만 관중'시대 열다!”. KBS 뉴스. 2007년 4월 9일. 
  53. “귀네슈 감독의 작별 인사, “서울 팬들 영원히 잊지 못할 것””. 매일경제. 2009년 11월 24일. 
  54. '귀향' 귀네슈, "서울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지지하겠다". 오센. 2009년 11월 25일. 
  55. “굿바이 귀네슈, 귀네슈 3년 한국 축구에 남긴 메시지”. 스포탈코리아. 2009년 11월 27일. 
  56. “FC 서울과 귀네슈 감독의 3년을 추억하다”. FC 서울 웹진 12월호. 2009년 12월 8일. 
  57. “FC서울 사우디 요르단 지휘 빙가다 감독 영입”. FC서울 공식웹사이트 뉴스. 2009년 12월 14일. 
  58. “6만 747명 상암벌, 서울 K리그 역사를 쓰다”. 스포츠동아. 2010년 5월 5일. 
  59. “FC서울, 성적도 인기도‘모두 No.1’K리그 최고 구단 우뚝”. FC서울 공식웹이트 뉴스. 2010년 11월 7일. 
  60. “FC서울, 성적+팬심 둘 다 잡고 진정한 NO.1 됐다”. 세계일보. 2010년 11월 7일. 
  61. “챔피언결정전 - '아디 역전골' 서울, 제주 누르고 10년 만에 K리그 제패”. 스포탈코리아. 2010년 12월 5일. 
  62. “서울, '우승-50만 관중' 모두 잡다…완벽한 승리”. 스포탈코리아. 2010년 12월 5일. 
  63. “빙가다 감독 '굿바이 코리아', 14일 한국 떠나”. 스포츠조선. 2010년 12월 14일. 
  64. “FC서울,‘공부하는 지도자’황보관 감독 선임”. FC서울 공식웹사이트 뉴스. 2010년 12월 28일. 
  65. “최용수 감독 대행 꼬리표 뗐다, 정식 감독 선임”. 스포츠조선. 2011년 12월 9일. 
  66. “<프로축구> 위기도 없었다..우승까지 순항한 FC서울”. 연합뉴스. 2012년 11월 21일. 
  67. “K리그 개막 특집 ① - 올 시즌 K리그 통합 우승 팀 & 8강팀은?”. 네이버 스포츠. 2012년 3월 1일. 
  68. “최용수 감독-데얀, 불화 및 태업설 일축 ‘되찾은 훈훈함’”. 파이낸셜뉴스. 2012년 3월 8일. 
  69. “최용수, K리그 최초 한 팀서 ‘선수-코치-감독’ 우승”. 인터풋볼. 2012년 11월 21일. 
  70. “2012년은 서울 천하…13관왕 '싹쓸이'. 아시아경제. 2012년 12월 3일. 
  71. “서른살 서울에 최초의 역사 새길 '레전드' 최용수의 도전”. 스포츠서울. 2013년 11월 7일. 
  72. “몰리나의 눈물과 재기, 사라진 7개월 드라마를 들춰내다”. 스포츠조선. 2014년 7월 16일. 
  73. “FC서울 올드스타, KBS 우리동네 예체능과 맞대결!”. 스포탈코리아. 2014년 7월 28일. 
  74. “2015 못다한 이야기 - 아무도 보지 못한 'ACL 사진 한 장'. 일간스포츠. 2015년 12월 12일. 
  75. “숫자로 본 서울의 2015 FA컵 우승 스토리”. 스포탈코리아. 2015년 11월 3일. 
  76. '황금 공격진' FC서울, '무공해 축구' 퍼즐 완성할까”. 더팩트. 2016년 1월 8일. 
  77. 디시인사이드 FC서울 갤러리
  78. FC서울 공식 웹사이트 V걸스 소개 메뉴
  79. “프로축구 소식-원정팀 흰 유니폼 입어 : 올 시즌 프로축구에는 원정팀이 흰 유니폼, 홈팀이 고유의 유니폼을 입게된다. 프로축구위원회는 지난 해까지 홈팀이 무조건 흰색 유니폼을 입었으나 홈팀의 특성을 위해 유니폼을 바꾸기로 했다. 따라서 어웨이 경기에 나서는 팀은 선수 전원이 흰색, GK는 초록색 유니폼 착용을 의무화하였다.”. 《월간축구 (현 베스트일레븐) 1988년 4월호》: 50페이지. 1988. 
  80. . 연합뉴스. 2009년 2월 3일 [프로축구 FC서울, 새 유니폼 'Soul' 발표 프로축구 FC서울, 새 유니폼 'Soul' 발표] |url=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제목=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81. '아디다스' 프로축구 용품지원”. 동아일보. 1998년 2월 10일. 
  82. “FC 서울-아디다스,3년간 30억원에 사상 최고스폰서십”. 조이뉴스24. 2005년 1월 26일. 
  83. “FC서울, 2007년 New 유니폼 입고 뛴다!”. FC서울 공식 웹사이트 뉴스. 2007년 1월 5일. 
  84. “FC서울, 아디다스 코리아와 K리그 최대 규모 후원 계약”. 뉴시스. 2008년 2월 20일. 
  85. “FC서울 대박 계약으로 본 K리그 스폰서 세계”. 스포츠조선. 2011년 12월 21일. 
  86. 피아퐁 선슈 유니폼 사진
  87. “한국프로축구연감”. 한국프로축구연맹 편집부. 
  88. “FC서울, 보카 친선전 1-2 석패”. OSEN. 2005년 7월 26일. 
  89. “서울, 연이은 빅매치...프로축구 흥행몰이 나선다”. 스포츠서울. 2006년 8월 7일. 
  90. “역대 FA컵 8강전… 스프링클러에서 최다 관중까지”. 스포츠서울. 2009년 7월 15일. 
  91. “LA갤럭시 투어 서울, LA갤럭시에 승부차기 승”. 대한축구협회 뉴스. 2008년 3월 1일. 
  92. “FC서울, FC도쿄와 사이 좋은 1대1 무승부”. FC서울 공식 웹사이트. 2008년 6월 15일. 
  93. “2013년 K리그, 관중 수원-객단가 서울 ‘으뜸’”. MK스포츠. 2014년 1월 20일. 
  94. “K리그 티켓 객단가 공개될까?”. 스포츠동아. 2014년 1월 20일. 
  95. “전 프로구단 객단과 자료 입수 초라한 성적표”. 스포츠조선. 2015년 1월 20일. 
  96. “2014 K리그, 평균관중 수원-객단가 FC서울 ‘최고’”. 뉴스1. 2015년 1월 20일. 
  97. “FC서울, K리그 최초, '객단가 9,000원' 의 벽 넘다”. 일간스포츠. 2015년 12월 23일. 
  98. “객단가 1만원이 K리그에 던진 희망”. 서호정 칼럼. 2015년 12월 26일. 
  99. FC 서울 공식 웹사이트 선수단 명단
  100. “‘뉴 캡틴’ 차두리, “서울을 부탁해””. 베스트일레븐. 2015년 5월 2일. 
  101. “경제단신”. 동아일보. 1983년 11월 8일. 
  102. “스포츠단신”. 동아일보. 1991년 2월 27일. 
  103. “GS홀딩스스포츠단 축구 배구 독립출범”. 스포츠서울. 2004년 5월 16일. 
  104. “FC서울의 스크린 이력서”. FC서울 명예기자 공식 블로그. 2011년 8월 3일. 
  105. "세바퀴" 폴 카버, "아내 속이고 축구 경기봐" K리그 사랑”. 파이낸셜 뉴스. 2014년 6월 22일. 
  106. “FC 서울, 구단 프런트 절반이 마케팅 담당...자생력 키우기”. 이데일리. 2008년 5월 30일. 
  107. “FC 서울, 한국 최초 LED 광고 개시”. FC 서울 공식 웹사이트 뉴스. 2006년 2월 8일. 
  108. “서울도시철도와 FC서울, 광고 마케팅 협약 체결!”. 서울도시철도 홍보블로그. 2009년 6월 1일. 
  109. “도시철도公-FC서울 윈윈 마케팅”. 헤럴드경제. 2009년 4월 21일. 
  110.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FC 서울역으로 변신”. 스포탈코리아. 2009년 5월 15일. 
  111. “기성용과 이동국의 맞대결! FC서울이 마련한 어린이 무료입장 이벤트”. 서울도시철도 홍보블로그. 2009년 9월 4일. 
  112. “FC서울과 함께 만화로 배우는 축구 ‘ 볼수록 만만한 축구’”. FC서울 공식 웹사이트 뉴스. 2010년 7월 1일. 
  113. “위시쿠폰, 소셜커머스 최초 프로축구 ‘FC서울 티켓북’ 판매”. 경제투데이. 2011년 2월 26일. 
  114. “서울, 새로운 마케팅 컨셉‘FANsation’”. 인터풋볼. 2014년 2월 25일. 
  115. “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 'Veni, Vidi, Vici'… 문화가 일궈낸 '축구 쇼크'. 스포츠월드. 2016년 6월 21일. 
  116. “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 'Culture'에 손대니 '톡'하고 터진 유료관중 1위”. 스포츠월드. 2016년 7월 14일. 

바깥 고리[편집]